[딜사이트 이세연 기자] SK하이닉스가 10나노급 6세대(1c) D램을 기반으로 한 7세대 그래픽 D램(GDDR7) 생산에 착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로서 예상 고객사는 테슬라, 엔비디아 등 기존 거래처가 될 가능성이 높다. SK하이닉스는 이들의 신제품 출시 시점에 맞춰 당장 내년부터 1c GDDR7 램프업에 나설 계획이다.
사안에 정통한 관계자는 "현재 회사에서 GDDR7에 1c 나노 공정을 적용하려 한다"며 "올해 말부터 이천 M16 팹에서 양산을 시작해 내년부터 물량을 본격적으로 늘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M16은 SK하이닉스가 M14와 함께 1c D램 전환 투자를 추진하는 생산 거점으로 꼽힌다.
GDDR은 그래픽 카드에 사용되는 고성능 D램으로, 3-5-5X-6-7 순으로 세대가 교체될 때마다 속도와 전력 효율성이 향상된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3월 10나노급 5세대(1b) D램 기반 16Gb GDDR7 개발에 성공해 하반기 양산에 들어간 바 있다. 불과 1년 만에 1c 나노 선단 공정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는 것이다. 현재 GDDR7 시장에서 독점적 위치를 점하고 있는 삼성전자조차 1b 나노 기반 제품 공급에 주력하는 가운데, 한발 나아가 선단 공정을 적용하려는 과감한 시도로 해석된다.
SK하이닉스가 범용 D램 영역을 확장하려는 배경에는 HBM4의 원가 인상이 자리잡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HBM4의 '베이스 다이' 제작을 TSMC에 맡기면서 비용 부담이 더욱 가중된 상황이다. 앞선 관계자는 "SK하이닉스의 베이스 다이 가격만 놓고 비교하면, 자체 생산하는 것보다 TSMC에 외주를 맡길 때 5~6배가량 비싸진다"며 "이 때문에 HBM3E에서 HBM4로 넘어가면 원가가 30% 정도 오르게 된다"고 말했다.
나날이 커지는 GDDR7 수요에 일부 대응하려는 의도도 있다. 엔비디아가 최근 공개한 차세대 추론용 GPU '루빈 CPX'에는 HBM 대신 128Gb GDDR7 메모리가 탑재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수출용 AI 가속기 'B40'에도 GDDR7 적용이 예상된다. 통상 GDDR7은 HBM보다 전력 효율은 낮지만 데이터 처리 속도가 빠르고 가격이 저렴하다는 특성이 있다. 엔비디아 입장에서는 HBM에 집중된 미국 정부의 '대중국 제재'를 피해 칩 성능을 규제 한도 이하로 맞추는 데도 유리하다.
동시에 1c D램 공정 활용 사례를 늘릴 수 있다. SK하이닉스는 당장 내년 메인 라인업 역시 1b D램으로 채울 전망이다. 하지만 중장기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1c 공정 전환이 불가피다는 판단 아래, 안정성이 검증된 1b D램은 HBM4 등 핵심 제품군에 집중시키고 범용 제품군에는 1c D램을 적용해 활용 사례를 늘리는 전략을 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SK하이닉스는 지난해 8월 업계 최초로 1c 기반 16Gb DDR5를 선보인 데 이어, 올 상반기에는 1c 24Gb LPDDR5X까지 개발하며 선단 공정 포트폴리오를 확장하고 있다.
SK하이닉스의 1c GDDR7 예상 고객사 후보로는 테슬라와 엔비디아 등이 거론된다. 두 회사 모두 SK하이닉스가 GDDR7을 공급해온 주요 거래처다. 특히 테슬라는 최근 들어 SK하이닉스 물량 비중을 늘리는 추세인 것으로 전해졌다. 테슬라의 자율주행 칩은 전력 효율과 비용 경쟁력이 중요한 LPDDR·GDDR 계열 메모리를 채택해왔다. 현재 AI4 칩에는 16Gb GDDR6가 탑재돼 있는데, 자율주행 레벨이 L2에서 L3로 올라가려면 GDDR7 적용이 필요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또 향후 출시될 AI5, AI6 칩에도 GDDR7이 탑재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반도체 업계 다른 관계자는 "테슬라 GDDR7은 그동안 삼성전자가 대부분을 공급해왔다"며 "그런데 엔비디아 쪽 물량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삼성전자 역시 캐파 대응 여력이 부족해졌다"고 말했다. 그는 "이에 테슬라는 최근 SK하이닉스에 잦은 거래 의사를 밝히고 있고, 실제로도 많이 구매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엔비디아는 최근 삼성전자에 GDDR7 공급량을 2배가량 확대해 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HBM에서는 SK하이닉스의 캐파 부족으로 빅테크들이 삼성전자에 납품을 문의하는 경우가 많았다면, GDDR7에서는 이 구도가 반전되는 셈이다.
다만 엔비디아의 경우 유의미한 물량을 확보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그간 삼성전자가 엔비디아 GDDR7 공급망에서 사실상 독점적인 지위를 유지해왔고, 앞으로도 대부분의 물량을 가져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 제한된 1b D램 캐파를 HBM 위주로 배정하면서 자연스럽게 삼성전자의 시장 점유율이 확대되는 구도가 형성됐다.
이 때문에 SK하이닉스는 내년 말 양산 예정인 엔비디아 '루빈 CPX'를 주요 목표로 삼고 있으나, 물량 확보에는 한계가 있을 전망이다. 반도체 업계 다른 관계자는 "SK하이닉스는 루빈 CPX 양산 시점에 맞춰 내년 상반기부터 1c GDDR7 램프업(생산량 확대)에 나설 예정이지만, 점유율이 높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수출용 AI 칩인 'B40' 역시 삼성전자의 GDDR7이 단독 탑재될 가능성이 커, 업계에서는 SK하이닉스가 올해 말 출시될 예정인 'B30A'를 겨냥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SK하이닉스 내부적으로도 GDDR7을 통한 매출 증대 효과에 큰 기대를 걸지 않는 분위기다. 또 한정된 캐파의 상당 부분을 HBM에 우선 배정해야 하는 만큼, 내년부터 램프업을 한다고 해도 비중 자체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실제로 회사의 전체 D램 캐파 내 GDDR 시리즈가 차지하는 비중은 한자릿수 중후반대에 불과한 것으로 파악된다.
최근에는 HBM4 경쟁 구도에서 가장 뒤쳐지고 있는 마이크론의 GDDR7 점유율 확대 가능성까지 위협 요인으로 거론된다. 마이크론은 D램 공정 기반의 베이스 다이를 자체 생산하는 전략을 고수하고 있는데, 전력 효율성에 집중한 나머지 엔비디아의 속도 상향 조건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앞선 관계자는 "마이크론이 현재 HBM4 경쟁력 강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 캐파의 상당수를 GDDR7·DDR5와 같은 범용 D램에 배정한다는 이야기가 있다"고 말했다. 그간 HBM 중심으로 캐파를 운영해온 마이크론도 GDDR7 비중을 늘리며 입지를 넓힐 수 있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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