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조은비 기자] 방위사업청이 2026년 내 최종 사업자를 선정하는 1조4000억원 규모의 '초소형 합성개구레이더(SAR) 위성' 수주전이 국내 우주 방산 지형도의 재편을 예고하고 있다. 이번 수주전은 한화시스템의 '기술 수직계열화'와 KAI의 '글로벌 플랫폼 확장'이라는 상이한 경영 전략이 맞붙는 지점이어서 업계의 이목이 쏠린다.
정부는 올해 말부터 2030년까지 150㎏ 미만 초소형 SAR 위성 40기를 순차적으로 전력화해 한반도 관측 빈도를 20~30분 수준으로 단축한다. 이번 사업의 핵심은 단순한 위성 숫자의 증대를 넘어, 우리 군의 '눈'이 적의 움직임을 놓치는 사각지대를 완전히 메우는 데 있다.
현재 우리 군의 주력 정찰 수단인 '425사업' 위성은 우수한 해상도를 자랑하지만, 위성이 한반도 상공을 다시 통과하기까지 약 2시간의 '재방문 주기(공백기)'가 발생한다는 약점이 있었다. 이는 북한이 이동식 발사대(TEL)를 터널 밖으로 꺼내 미사일을 쏘고 다시 숨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하지만 초소형 SAR 위성 40기가 군집 형태로 배치되면 관측 주기가 20~30분 수준으로 단축되면서 전역을 '실시간'에 가깝게 들여다볼 수 있게 된다. 특히 주간이나 맑은 날씨에만 제한적으로 작동하는 일반 광학 위성과 달리, SAR 위성은 전파를 쏘아 되돌아오는 신호를 합성하는 방식을 사용한다. 밤이나 자욱한 구름, 안개 속에서도 지상의 움직임을 대낮처럼 포착해내는 '전천후 감시'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이 같은 촘촘한 감시망은 우리 군 선제 타격 체계인 '킬체인'의 핵심 고리가 될 전망이다. 미세한 징후를 즉시 포착해 정밀 타격 좌표를 확보함으로써, 적의 도발이 시작되기 전 이를 무력화하는 '압도적 대응 역량'을 갖추게 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주 정찰의 패러다임이 '단일 위성의 고성능'에서 '군집 위성의 물량 공세'로 전환되면서, 승부의 추는 누가 더 안정적인 제조 인프라를 갖췄느냐로 기울고 있다. 특히 초소형 위성은 2~3년의 짧은 수명을 전제로 반복 제작과 발사가 이뤄져야 하기에, 동일한 품질을 유지하며 빠르게 찍어낼 수 있는 '양산형 공급망' 확보가 이번 수주전의 최대 변수로 떠올랐다.
이러한 정책적 기류 속에서 한화시스템과 KAI는 각각 '기술 수직계열화'와 '글로벌 플랫폼'이라는 서로 다른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한화시스템은 압도적인 연구개발(R&D) 투자를 바탕으로 '기술 내실화'에 사활을 걸고 있다. 2025년 3분기 보고서에 따르면 한화시스템의 R&D 비용은 3765억9700만원으로, 매출액 대비 16.62%에 달한다. 또 방산 부문 연구 인력의 약 42%가 석·박사급으로 구성된 '브레인 집단'을 통해 기술 주권을 쥐겠다는 전략이다.
특히 한화시스템은 이번 사업의 본질이 과거의 중대형 위성과는 설계 철학부터 궤를 달리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한화시스템 관계자는 "기존 중대형 SAR 위성이 단 한 기에 모든 성능을 집약한 '주문제작형 예술품'이라면, 초소형 SAR 위성은 고성능을 유지하면서도 극도의 경량화와 양산성을 동시에 달성해야 하는 완전히 새로운 영역"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중대형 위성 제작 경험이 반드시 초소형 위성의 경쟁력으로 직결되지는 않는다는 부분을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화시스템이 내세운 승부수는 '부품 단계부터 마진을 내재화하는 수직계열화'에 있다. 위성의 심장부인 송수신모듈(T/R 모듈) 등 핵심 부품을 브로던, 키프코우주항공 등 국내 소부장 라인을 통해 직접 조달하며 기술적 독립성을 확보했다.
한화시스템측은 "핵심 부품의 내재화는 외부 조달보다 리드타임(조달 기간)을 단축해 공정 관리 면에서 압도적 우위를 점하게 한다"며, "제주우주센터의 연 100기 양산 체제를 통해 군집 위성 시대에 최적화된 적시 공급 능력을 증명할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KAI는 별도 매출의 절반에 육박하는(약 49%) 완제기 수출망과 26조2000억원이라는 압도적인 수주 잔고를 무기로 '외연 확장형 플랫폼' 전략을 구사한다. 이는 단순한 위성 제조를 넘어, 전 세계에 뻗어 있는 FA-50 등 국산 항공기 네트워크에 위성 데이터 서비스를 결합하는 '우주·항공 패키지' 전략이다.
KAI는 위성을 지속적인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것으로 정의한다. 위성을 구매한 국가에 고화질 영상 분석 서비스를 제공해 끊임없는 수익을 창출하고, 고객을 자사 생태계에 묶어두는 이른바 '구독형 모델'을 도입하겠다는 구상이다. 이를 위해 최근 위성통신 전문기업 (주)제노코를 전격 인수하며, 발사체부터 위성 서비스까지 아우르는 거대 밸류체인을 완성했다.
양산 역량에서도 KAI는 '체급의 차이'를 강조한다. 수백 대의 전투기를 뽑아낸 항공기 라인 생산 노하우와 시험 자동화 설비를 위성 공정에 그대로 이식했다. 위성을 하나하나 제작하는 수공업 단계에서 탈피해, 스마트폰처럼 규격화된 제품을 균일한 품질로 쏟아내는 '스마트 팩토리'형 양산 체제를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KAI 관계자는 "초소형 SAR 위성은 과거 1~2기 제작에 그쳤던 중대형 위성과 달리, 2~3년 주기로 교체해야 하는 '최초의 양산 개념'이 도입된 사업"이라며 "KAI는 이미 2020년에 초소형부터 중대형 위성까지 모두 소화 가능한 전용 인프라를 구축하고 정부의 고난도 위성 사업을 총괄해온 만큼, 양산성과 신뢰도 면에서 독보적인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고 강조했다.
업계에서는 핵심 부품 기술을 독점하며 내실을 기하는 한화의 전략과, 글로벌 수출망에 위성을 태워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려는 KAI의 전략 중 어느 쪽이 정부의 '예산 효율성'과 '공급망 안정'이라는 숙제를 더 잘 풀어나갈지 주목하고 있다.
한 방산업계 관계자는 "과거의 위성 사업이 '누가 더 고성능을 만드느냐'의 싸움이었다면 이제는 '누가 더 오차 없이 똑같은 품질로 찍어내느냐'는 양산형 거버넌스 싸움"이라며, "한화의 내실 경영과 KAI의 규모 경제 중 정부가 어느 쪽의 손을 들어주느냐에 따라 우주 산업의 공급망 주도권이 완전히 재편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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