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딜사이트 김주연 기자] 트럼프 2기 정부에서 가전제품의 철강 함유량에 따른 추과 관세를 부과하기로 결정하면서 삼성전자가 미국에서 판매하는 가전제품의 철강 공급처를 미국으로 전환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된다. 관세 부담으로 인해 미국 내 소비자 가격이 인상될 경우, 자칫 시장 점유율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회사 측에서는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반응이다.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현재 한국, 말레이시아, 중국 쑤저우, 폴란드, 멕시코,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뉴베리 등지에서 가전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이 가운데 미국으로 수출되는 제품은 주로 한국, 멕시코, 미국 현지 공장에서 제조된다.
멕시코 케레타로 공장에서는 냉장고, 세탁기, 건조기 등이 생산되며, 연간 400만대 규모다. 이 가운데 약 80%가 북미와 중남미 시장으로 수출된다. 뉴베리 공장은 세탁기를 주력으로 생산하며, 2018년 증설 이후 2022년까지 5년간 누적 생산량이 400만대를 넘었고, 현재는 연평균 약 100만대를 생산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 광주 공장에서는 주로 냉장고가 생산된다.
지난 3월 발표된 상호 관세 조치 이후, 삼성전자는 생산 기지 재편에도 나서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그동안 미국 수출 전진 기지 역할을 해온 멕시코 공장에서 생산하던 건조기 일부를 뉴베리 공장으로 이전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다만 미국 내 생산 확대만으로는 관세 리스크를 해소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철강 관세는 완제품에 포함된 철강 함량에 따라 부과되기 때문이다. 이에 삼성전자가 가전제품의 철강 원재료를 미국산으로 전환하는 시나리오도 거론된다. 관세를 부담하는 것보다 미국산 철강 조달 비용이 낮을 경우, 미국 철강을 활용하는 것이 가격 경쟁력을 유지하는 대안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삼성전자는 현재 가전제품에 활용하는 철강 원재료를 한국 기업 등을 중심으로 조달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이 회사는 2021년 가전제품 외장에 사용하는 철강 원자재 구입에 1조6671억원을 들였다. 당시 주요 매입처는 포스코와 동국제강으로 나타났다. 이후 철강 구매비용을 따로 명시하지 않아 구체적인 조달처와 매입 금액은 알기 어렵다. 다만 미국 생활가전 시장에서 삼성전자보다 점유율이 비슷한 LG전자가 지난해 가전제품 철판물 매입액으로 1조7033억원을 지출한 것을 봤을 때 이와 비슷하다고 추정할 수 있다.
문제는 미국산 철강의 단가가 더 높다는 점이다. 철강 금속 업계에 따르면 6월 첫째 주 기준 국내 열연강판 유통가는 톤당 83만원(608달러)인 반면, 미국산은 약 885달러(120만원)로 국산보다 45% 가량 비싸다.
업계 관계자는 "철강 함량에 따라 50%의 관세가 부과되는데, 미국산 철강의 단가가 관세를 부담하는 것보다 낮다면 이를 사용하는 것이 오히려 가격 경쟁력을 유지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가 미국 가전 시장에서 20% 정도의 점유율을 확보하고 있는 만큼 관세 여파로 가격을 올릴 경우 시장 점유율을 잃을 수 있다는 점도 부담이다. 이에 따라 미국산 철강 사용 여부가 중장기 전략으로 검토될 가능성이 있다.
업계에 따르면 월풀, GE 등 미국 가전업체들은 대부분 원자재를 자국 내에서 조달해왔다. 이에 해당 기업들 사이에서 철강을 포함한 원자재를 타국에서 들여와 가격을 낮출 수 있는 한국·중국·태국 등 기업들에 비해 원가 측면에서 불리해 점유율을 잃고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나오는 것으로 전해졌다. 철강 관세가 부과될 경우 삼성전자 등이 가격적인 측면에서 유리했던 점이 상쇄되면서 미국 기업과의 경쟁에서 불리해질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오는 이유다.
앞선 관계자는 "미국 업체들 사이에선 원자재 조달 비용이 더 들어 제품 단가에서 5~10% 가량 손해를 보고 있다는 불만이 있었다"며 "이번 관세 조치가 시행되면 이런 가격 차이가 상쇄되면서 미국 업체가 오히려 가격 면에서 10% 정도 유리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삼성전자 입장에선 미국 기업과의 경쟁에서 시장 점유율을 잃을 수 있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관세 부담에도 미국 시장 내 점유율을 유지하기 위해 가격을 유지하는 전략도 가능하다. 그러나 가전 산업 특성상 이익률이 낮은 만큼 삼성전자가 관세 부담으로 인한 비용을 온전히 떠안기도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증권업계에서도 삼성전자 가전부문의 올해 2분기 영업이익률을 다소 낮게 측정하고 있다. IBK증권의 경우 가전부문의 영업이익률을 -0.2%로, 유진투자증권은 0%로 전망했다.
업계 관계자는 "가전은 평균 영업 이익률이 4~5% 수준에 불과하다. 관세를 기업이 전적으로 부담하면 이익률이 0% 이하로 떨어질 수 있다. 이에 관세 부담을 제품 가격에 전가하지 않고 기업이 떠안기 어려운 구조"라고 지적했다.
이에 당분간 관세 시행에 따른 영향을 지켜보며 기존 재고로 버틸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23일부터 철강 관세가 적용되지만, 2~3개월은 기존 재고로 버틸 가능성이 높다"며 "다만 예전 같으면 재고를 많이 확보했겠지만 지금은 불확실성이 커 쉽게 행동하기도 어렵다. 관세가 철회될 수도 있는 만큼 관망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에 삼성전자 관계자는 "현재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고 일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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