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딜사이트 김주연 기자] 트럼프 2기 정부가 국가별 상호 관세에 이어 철강 관세 부과 범위를 가전제품까지 확대하면서 가전업계에 긴장감이 돌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LG전자는 현지 생산 확대 등 생산지 재편 전략을 통해 관세 여파에 대응하고 있다. 다만 철강 관세의 경우 원재료 자체에 관세가 부과되는 만큼, 이대로 강행할 경우 미국 내 소비자 가격 인상은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미국 상무부는 최근 철강과 알루미늄 파생 제품 가운데 관세 부과 대상에 가전제품을 포함시켰다. 앞서 3월부터는 철강으로 만든 파생 제품에 철강 함유율 등을 따져 최대 50%의 관세를 부과해 왔는데, 이번에 그 범위를 넓힌 것이다. 이에 따라 냉장고·세탁기·건조기·식기세척기·오븐·전자레인지·조리용 스토브 등에도 관세가 적용된다. 해당 관세는 오는 23일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가전업계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날벼락'이다. 트럼프 2기 정부가 한국에 25%의 상호 관세를 부과한 이후 불확실성이 더 커진 데다 철강 관세는 다음 주부터 바로 시행되기 때문이다. 상호 관세는 내달 8일까지 유예돼 있지만 시간이 많지 않다.
특히 이번 조치는 가전제품 자체가 아니라 제품 내 철강 함량 등을 평가해 관세를 부과하는 방식이어서 셈법이 더욱 복잡해졌다. 업계에 따르면 LG전자는 한국 등에서 철강을 조달해 가전제품을 생산하고 있으며 지난해 기준 철판물을 확보하는 데 1조7033억원을 투입했다. 이는 대부분 국내 기업인 포스코에서 매입한 것이다.
LG전자가 미국 가전 시장을 적극 공략해온 만큼 이번 조치의 영향도 클 것으로 보인다. 시장조사업체 트랙라인에 따르면 LG전자는 지난해 미국 주요 생활가전 시장에서 21.1%의 점유율로 1위를 차지했다. 미국 매출도 2023년 21조4949억원에서 지난해 22조8959억원으로 6.52% 증가했다.
이에 따라 LG전자는 글로벌 생산지를 재편해 관세 리스크를 최소화하려는 전략을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LG전자의 주요 해외 가전 생산기지는 베트남·멕시코·폴란드·인도·미국·브라질 등이다. 이중 베트남 하이퐁 캠퍼스는 핵심 생산기지로, LG전자의 연간 냉장고 생산량(1100만대) 중 약 160만대가 이곳에서 생산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미국이 베트남산 제품에 46%의 상호 관세를 부과하면서 LG전자는 하이퐁 공장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조치에 나서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LG전자는 하이퐁 캠퍼스 내 냉장고 생산설비 절반을 감축하고 해당 물량을 멕시코 몬테레이 공장에서 대체 생산 중이다. 멕시코는 상호 관세율이 25%지만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을 준수할 경우 관세를 면제 받을 수 있어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다.
또한 LG전자는 미국 현지 생산도 확대하고 있다. 테네시주 클락스빌 공장에서 세탁기와 건조기 생산라인 가동률을 높이고 있으며 김이권 LG전자 HS본부 전무는 "관세 리스크를 회피할 수 있는 멕시코와 미국 생산 거점을 최대한 활용하겠다"며 "테네시 공장의 세탁기·건조기 생산 증가분은 미국 매출의 약 10%를 커버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테네시 공장 확장 가능성도 제기된다. 실제로 LG전자는 지난 4월 11일 클락스빌 지역계획위원회(Clarksville Regional Planning Commission)에 기존 공장 인근 부지에 창고 시설 건설을 위한 인허가를 신청했다. 이번 프로젝트는 약 125만7000㎡ 부지에 건축 면적 5만5600㎡ 규모의 건물을 신축하는 계획을 담고 있다. LG전자는 창고를 우선 착공한 뒤 향후 다양한 가전제품을 생산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LG전자 측은 생산 라인 증설 계획과 관련해 "해당 창고 부지를 생산라인으로 전환하는 방안은 현재 고려하고 있지 않다"며 가능성을 일축했다.
업계 일각에서는 미국 내 생산을 늘리더라도 미국산 철강을 사용하지 않으면 관세 부과 대상이 되는 만큼 미국 내 소비자 가격 인상은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미국산 철강을 쓰더라도 수요 증가로 인해 원자재 가격 자체가 오를 가능성도 제기된다.
업계 관계자는 "제조업체들이 다양한 효율화 조치를 통해 관세 영향을 최소화하려고 노력하겠지만 제품 가격을 결정짓는 요소가 관세뿐 아니라 인건비, 물류비 등 다양하다"며 "다만 이번처럼 대부분의 업체가 동시에 영향을 받는 경우 미국 내 소비자 가격 상승 요인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앞서 조주완 LG전자 사장도 지난 4월 서울대학교에서 열린 CEO 특강 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가격 인상 가능성을 언급한 바 있다. 조 사장은 "관세 여파는 2분기부터 본격 반영될 것으로 보인다. LG전자가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면 가격 인상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며 "미국 공장 증설은 사실상 마지막 단계"라고 말했다.
철강 관세뿐만 아니라 상호 관세 등 복합적인 요인으로 불확실성이 커진 만큼 사안을 장기적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국가 간 협상이 진행 중이긴 하지만, 관세에 연동된 복합적인 요소가 많아 당분간은 긴 호흡으로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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