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신지하 기자] DB그룹의 총수인 김준기 창업회장과 그의 장남인 김남호 회장이 주요 계열사 DB하이텍에서 최근 4년간 238억원에 달하는 보수를 받은 사실이 도마에 올랐다. DB하이텍 소액주주들은 미등기임원 신분인 총수 일가가 명확한 역할 없이 과도한 보수를 챙겼다며 법적 대응에 나섰다. '받을 자격이 있었는지, 그 결정은 정당했는가'라는 물음이 이번 소송의 핵심 쟁점이다.
업계에 따르면 경제개혁연대를 비롯한 DB하이텍 소액주주 130명은 지난달 26일 인천지법 부천지원에 김준기 DB그룹 창업회장과 김남호 DB그룹 회장, 조기석 DB하이텍 대표이사, 양승주 DB하이텍 부사장 등 4명을 상대로 238억2900만원 규모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청구액은 김준기·김남호 두 사람이 2021년부터 지난해까지 미등기임원 신분으로 DB하이텍에서 수령한 보수 전액이다.
소액주주들은 김준기·김남호 부자가 경영에 공식적으로 관여하지 않으면서도 법적 책임이 없는 미등기임원 신분으로 수년간 과도한 보수를 챙겼다고 주장한다. 이들이 최근 4년간 받은 보수는 같은 기간 DB하이텍의 사내이사들에게 지급된 총보수(73억6100만원)보다 3.2배 많다. 주주들에게 돌아간 배당금과 비교해도 지나치다는 지적이다. 두 사람에게 지급된 보수는 전체 배당금(1508억4300만원)의 16%, 지배주주를 제외한 일반주주 몫(1205억9300만원) 기준으로는 20%에 달한다.
이번 소송의 핵심 쟁점은 크게 두 가지다. 김준기·김남호 부자가 보수를 받을 자격이 있었는지와 해당 보수가 어떤 절차를 거쳐 산정됐는지다.
DB하이텍의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김남호 회장은 2020년 7월, 김준기 창업회장은 2021년 4월 각각 미등기임원으로 선임돼 지금까지 해당 신분을 유지하고 있다. 이들의 담당 업무는 김준기 창업회장이 '경영자문', 김남호 회장이 '총괄'로 표기돼 있으나 구체적으로 어떤 경영 활동을 수행했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 소액주주들은 두 사람이 명확한 책임이나 성과 없이 사내이사보다 더 많은 보수를 받아간 것은 보상의 객관성과 합리성이 결여된 사례로 지적하고 있다. 연도별로 살펴보면 김준기·김남호 부자가 회사에서 받은 연간 보수는 같은 해 DB하이텍 사내이사 1인당 평균 보수보다 적게는 1.39배, 많게는 6.14배 높았다.
김준기·김남호 부자에게 지급된 보수가 어떤 절차를 거쳐 결정됐는지도 논란이다. DB하이텍은 지난해 3월 보수 책정의 객관성과 투명성을 높이겠다며 이사회 산하에 보상위원회를 신설했다. 같은 해 5월 공시된 기업지배구조보고서에 따르면 보상위원회는 전원 사외이사로 구성돼 있으며, 등기 및 미등기임원의 보상체계와 연봉 조정안을 심의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 실제 보상위원회 운영규정 제10조에도 '등기 및 미등기임원 보상체계에 관한 사항'과 '등기 및 미등기 임원의 연봉 조정에 대한 사항'이 부의 안건으로 명시돼 있다.
그러나 김준기·김남호 부자에게 지급된 보수가 실제로 보상위원회의 심의를 거쳤는지, 어떤 기준과 평가 항목을 바탕으로 결정됐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사업보고서와 지배구조보고서 어디에도 관련 회의 내용이나 구체적인 산정 근거는 공개돼 있지 않다.
이를 두고 소액주주들은 "김준기·김남호와 같은 미등기임원의 보수는 주주 통제도 받지 않고, 사업보고서로는 총액만 확인될 뿐 구체적인 산정 기준이나 보수 정책은 전혀 알 수 없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사내이사보다 많은 보수를 지급받은 합리적인 설명도 없다"며 "이는 결국 자신들의 보수를 스스로 결정한 것이나 다름없는 것으로 사익편취의 또 다른 형태"라고 강조했다.
이번 소송은 단순히 과도한 보수를 문제 삼는 데 그치지 않는다. 총수 일가가 미등기임원 신분을 활용해 법적 책임은 피하면서도 실질적 보수만 챙기는 구조적 허점을 겨냥한다. 일각에서는 이번 소송전이 다른 기업으로 확전될 가능성도 점치는 분위기다. 미등기임원은 주주총회를 거치지 않고 선임된다. 임기나 법적 책임에서도 자유롭다. 특히 이들이 재직 중인 직위의 절반 이상이 사익편취 규제대상 회사에 속해 제도적 통제와 감시 강화의 필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이에 따라 공정거래위원회는 매년 총수 일가의 미등기임원 재직 현황을 집계해 공개하고 있다. 지난해 5월 기준 총수 일가가 미등기임원으로 재직 중인 회사는 163곳으로 전년보다 27곳 늘었다. DB그룹의 경우 전체 25개 계열사 가운데 5곳(20%)에서 총수 일가가 미등기임원으로 재직 중이며, 이는 71개 대기업집단 중 다섯 번째로 높은 수준이다. 특히 이 중 4곳은 DB하이텍을 비롯한 상장사로, 총수 일가가 법적 책임은 지지 않으면서 상장 계열사에 영향을 미치는 구조다.
이번 주주대표소송을 대리하는 법무법인 지암의 김선웅 변호사는 "김준기·김남호 부자는 사실상 자기 급여를 스스로 결정한 셈"이라며 "대표이사나 사내이사보다 많게는 10배 가까운 연봉을 받아가면서도 업무나 책임은 특정되지 않은 채 고문 같은 형식으로만 이름을 올려뒀다"고 말했다. 그는 "어떤 기준으로 보수를 결정했는지에 대한 공시도, 내용도 전혀 없었다"며 "이번 소송의 목적은 지배주주가 법적 책임 없이 미등기임원으로 재직하면서 보수 명목으로 과도한 이익을 챙기는 재벌 관행을 시정하는 데 있다"고 강조했다.
앞서 경제개혁연대를 포함한 DB하이텍 소액주주들은 지난해 12월27일 김준기·김남호 부자뿐 아니라 이들의 보수 지급에 책임이 있는 조 대표와 양 부사장을 상대로 회사가 직접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해줄 것을 요청하는 내요의 공문을 DB하이텍에 보냈다. 그러나 회사 측이 이를 거부하자 소액주주들은 이번 소송에 나섰다.
한편 김남호 회장의 누나인 김주원 부회장도 2022년 7월부터 DB하이텍의 미등기임원 신분을 유지하고 있지만 이번 소송 대상에서는 제외됐다. 이는 그가 2021년 DB하이텍 미주법인 사장을 지낸 데 이어 현재 그룹 내 해외법인 관련 업무를 담당하고 있으며, 김준기·김남호 부자와 비교해 보수 수준이 상대적으로 낮은 점이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김 부회장은 2021년과 2022년 5억원 이상 보수 수령자 명단에 포함되지 않았다. 2023년과 지난해에는 각각 5억2900만원, 5억4100만원을 받아 2년간 총 10억7000만원을 수령했다. 반면 김준기 창업회장과 김남호 회장은 2023~2024년 각각 68억5300만원, 55억5300만원을 보수로 받았다.
ⓒ새로운 눈으로 시장을 바라봅니다. 딜사이트 무단전재 배포금지
Hom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