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딜사이트 이세정 기자] 화승그룹의 스포츠패션 ODM(제조업자개발생산) 업체인 화승인더스트리가 주주행동주의 타깃이 됐다. 최근 출범한 소액주주연대 'HSIS'가 첫 타자로 화승인더스트리를 지목했기 때문이다. 단순하게는 배당을 확대하고 자사주를 매입·소각해 주가를 부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중장기적으로는 화승인더스트리가 자회사 화승엔터프라이즈와 합병해 중복상장 문제를 해소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 전직 증권사 임원 모여 HSIS 설립…화승인더로 1차 주주서한
7일 투자은행(IB)과 금융업계 등에 따르면 HSIS는 지난달 26일 화승인더스트리 경영진과 이사회를 상대로 1차 주주서한을 발송했다. HSIS는 전직 대형 증권사 임원 출신들이 의기투합해 설립한 특수목적법인(SPC)이다. 소액주주들의 의결권을 모아 단일 대주주로서 지위를 확보하고, 소액주주 권리 보호를 위한 의결권 행사를 전문으로 한다.
지난해 11월 설립된 HSIS는 김영수·오승환 공동 대표이사 체제를 구축했다. 김 대표는 대우증권과 동부증권, 삼성자산운용, 맥쿼리자산운용 등에서 근무했으며, 오 대표는 레인메이커자산운용과 브이아이피자산운용 등에서 경력을 쌓았다. 두 명의 공동 대표 외 주요 주주로는 손동식 미래에셋자산운용 고문이 있다.
HSIS가 화승인더스트리에 요구하는 사항은 ▲실적 증가에 따른 배당 확대 ▲기존 자사주 보유 물량 전량 소각 ▲2027년까지 매년 최소 5%, 최대 10%의 자사주 매입 및 소각 ▲화승엔터프라이즈 합병 ▲전환사채(CB) 물량의 50%를 콜옵션을 사용해 소각 ▲2028년 화승엔터프라이즈 자회사에서 받은 배당금으로 자사주 최대 10% 매입 뒤 소각 크게 6가지다.
화승인더스트리가 주주행동 대상에 오른 주된 요인으로는 후진적인 지배구조와 주주가치 훼손이 꼽힌다. HSIS는 화승인더스트리가 2018년 7월 공시한 기업지배구조 헌장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고 꼬집었다. 해당 헌장에는 화승인더스트리가 건전한 지배구조와 투명한 가치 경영을 실현하고, 회사와 주주에게 최선의 이익을 제공하겠다고 적혀 있다.
◆ 단순 의결권 위임과 차이…'주식 임치'로 단일 대주주 등극 가능
화승인더스트리는 현재 화승그룹 오너 3세 차남인 현석호 부회장이 견고한 지배력을 구축하고 있다. 현재 이 회사 지배구조를 살펴보면 현 부회장이 지분율 27.26%를 확보한 최대주주다. 지난해 형인 현지호 총괄부회장과 모친인 이상희 여사로부터 각각 0.24%, 0.73%의 주식을 증여받은 결과다. 이보다 앞선 2020년 5월에는 부친인 현승훈 회장으로부터 6.47%를 증여받기도 했다.
또 현 총괄부회장이 거느리고 있으며 화승그룹 내 지배구조 정점에 위치함 화승코퍼레이션이 화승인더스트리 주식 6.33%를 보유 중이다. 통상 시장에서는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자 지분율이 30% 이상일 때 안정적인 경영권을 행사하고 있다고 판단한다. 현 부회장과 화승코퍼레이션의 지분율 총합은 33.59%다.
국민연금도 화승인더스트리 주식을 일부 들고 있다. 지난해 12월 공시된 신규 보고에 따르면 국민연금의 이 회사 지분율은 5.03%다. 국민연금을 제외한 5% 이상 주주는 없다. 액면 상으로 소액주주와 기관 투자자 지분율이 61.38%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눈길을 끄는 부분은 HSIS가 단순히 의결권을 위임받는 수준을 넘어선다는 점이다. HSIS는 화승인더스트리 주주에게 주식을 임치받고 있다. 해당 주식에 대한 모든 권리는 소유자에게 귀속되지만, 계약 기간 동안 의결권과 관련된 권한은 HSIS가 행사한다.
특히 임치는 기존 소액주주연대나 일반적인 위임 형식과 달리, 단일 대주주의 권리를 갖는다는 특징이 있어 주주연대나 행동주의보다 강력하고 실질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다시 말해 HSIS로의 주식 임치가 28%만 이뤄지더라도 현 부회장을 누르고 단일 최대주주에 오르는 것이다.
◆ 자회사 엔터프라이즈 합병 요구, 중복상장 문제 해결…불응 시 강력 대응 시사
화승인더스트리는 예전부터 주주환원과는 다소 거리가 멀었다. 예컨대 화승인더스트리는 2020년 이전만 해도 주당 배당금은 25~45원 수준에 불과했으며, 배당성향(연결)도 5% 안팎을 오갔다. 현 부회장이 부친의 주식을 넘겨 받은 2020년부터 배당금은 주당 188원으로 늘었다. 배당성향 역시 26.8%로 급증했지만, 이 회사 배당금은 4년 연속 188원에 머물고 있다. 그나마 화승인더스트리가 1차 주주서한을 수령한 이후 지난해 결산실적에 대한 배당금을 종전 대비 6% 가량 인상한 200원으로 책정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HSIS는 화승인더스트리의 자사주 매각도 요구하고 있다. 현재 화승인더스트리의 자사주 비율은 10%를 초과한다. 이 회사는 2018년부터 주가 안정과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자사주를 매입하고 있지만, 별도의 매입 기준은 없다. 이렇다보니 기업가치 제고(밸류업)을 위한 자사주 정책을 명문화해야 한다는 게 HSIS의 입장이다.
가장 많은 이목이 집중된 사안은 화승인더스트리와 자회사 화승엔터프라이즈의 합병이다. 2015년 설립된 화승엔터프라이즈는 약 1년 뒤 유가증권(코스피)시장에 상장했다. 화승인더스트리가 70%에 육박하는 지분을 보유한 화승엔터프라이즈는 해외 위탁생산 법인을 관리하는 지주 성격을 띄고 있다. 사실상 모기업과 영위 사업이 겹치는 만큼 기업가치 더블카운팅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HSIS는 화승인더스트리의 비정상적인 이중 지배구조 때문에 이 회사 주주들이 주당 1만1950원의 손실을 보고 있다고 주장한다. HSIS 측은 "이러한 손실은 올해 주당 1만7000원으로 추정되고, 시간이 흐를수록 늘어날 것"이라며 "화승엔터프라이즈와의 합병은 건전한 지배구조를 만들겠다고 스스로 약속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시장의 관심은 화승인더스트리가 HSIS의 주주서한을 수용할지 여부에 쏠리고 있다. HSIS가 아직 꺼내지 않은 회심의 공격 카드가 존재하는 것으로 파악되는 만큼 화승인더스트리 입장에서 마냥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HSIS 관계자는 "화승인더스트리가 3월 주주총회 전까지 명확하고 대의명분이 있는 현명한 답변을 하길 바란다"며 "다음(2차) 주주서한이 발송되는 경우가 생기면 더욱 강력한 질문과 답변을 요구할 것이고, 2015년에 일어났던 일도 거론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소액주주들이 HSIS를 통해 주식을 모아 장외 블록딜 방식으로 사모펀드나 기업들에 화승인더스트리 주식을 매각해 적대적 M&A의 주체가 되도록 할 수 있다"며 "(반대로) 외부의 적대적 M&A세력으로부터 현 경영진을 보호할 수도 있다"고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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