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오는 10월 취임 4주년을 맞는다. 현대차그룹은 정 회장 체제에서 수많은 변화를 겪고 있다. 2010년 후반만 해도 주주환원에 인색하다는 평가를 받던 현대차그룹이 대표적인 주주친화 기업으로 꼽히는 점도 정 회장 성과다. 투자자와 과실(果實)을 나누겠다는 정 회장의 의지는 현대차가 최근 발표한 밸류업(기업가치 제고) 프로그램으로 한층 명확해졌다. 현대차그룹은 미래 모빌리티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향후 10년간 120조원에 달하는 대규모 투자 집행을 예고하면서도, 동시에 중장기적인 주주환원을 극대화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에 현대차그룹의 밸류업 정책과 현황, 전망 등을 면밀하게 살펴본다. [편집자주]
[딜사이트 이세정 기자] 정의선 회장 체제에서 제2전성기를 달리고 있는 현대차그룹이 주주환원 새 기준점을 제시하면서 시장의 이목을 끌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국내 10대 그룹 가운데 가장 먼저 밸류업(기업가치 제고) 본 공시를 올렸을 뿐 아니라 투자자 신뢰를 강화하기 위한 총주주환원율(TSR) 개념을 처음 도입했다.
현대차그룹의 막강한 주주환원책은 정 회장의 선구안에서 기인했다. 뛰어난 통찰력으로 미래 모빌리티 시대를 준비해온 정 회장은 현대차그룹을 글로벌 완성차 판매 2위를 넘보는 '공룡'으로 성장시켰고, 고정비 부담이 큰 제조업 한계를 뛰어넘는 두 자릿수 이익률을 기록하며 환원 재원을 충분히 쌓았다.
◆ 현대차·기아, 코리아 밸류업 지수 편입…일관된 환원 의지
26일 업계에 따르면 한국거래소가 지난 24일 발표한 '코리아 밸류업 지수'에는 현대차그룹 쌍두마차인 현대차와 기아가 나란히 포함됐다. 기업가치 우수 기업에 대한 시장평가와 투자유도가 목적인 코리아 밸류업 지수는 한국 증시 저평가(디스카운트)를 해소하기 위한 정부 주도의 정책이다.
거래소는 ▲시가총액(400위 이내) ▲수익성(2년 연속 적자 또는 2년 합산 손익 적자 아닐 것) ▲주주환원(2년 연속 배당 또는 자사주 소각 실시) ▲시장평가(주가수익비율 순위 전체 또는 산업군 내 50% 이내) ▲자본효율성(산업군별 자기자본이익률 순위 비율 우수) 등 다양한 질적 요건을 종합적으로 평가했다. 특히 코리아 밸류업 지수 편입은 중장기적으로 주주가치 제고를 할 수 있다는 의미인 만큼 주가 상승 동력으로 작용하는 모습이다.
현대차가 지난 8월28일 발표한 3개년(2025~2027년) 밸류업 정책은 ▲TSR 35% 이상 ▲평균 자기자본이익률(ROE) 11~12% 지향 ▲주당 최소배당금 1만원 ▲총 4조원 규모 자사주 매입 등을 골자로 한다. 특히 TSR와 최소 배당금은 현대차의 진정성을 유추할 수 있는 대목이다. 자본적지출(CAPEX) 등 투자 집행과 수익성 규모와 무관하게 일관성 있는 배당 정책을 가져가겠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기아는 올 4분기 중 구체적인 밸류업 정책을 내놓기로 했지만, 우수한 재무성과에 힘입어 지수 편입에 성공했다. 실제로 기아는 40조원이 넘는 시가총액을 유지하며 코스피(유가증권) 10위권에 안착해 있다. 2022년과 2023년 영업이익은 각각 7조2331억원, 11조6079억원을 기록했으며 총 15회 연속 결산배당을 실시했다. 주가수익비율(PER)의 경우 4.34배로 업계 평균과 유사하며, 올 상반기 말 ROE는 20.49%로 상위권이다.
◆ 글로벌 판매 3위·영업이익률 10.7%…안정적 환원 재원 확보
현대차그룹이 주주환원 목표치를 과감하게 상향한 배경으로는 외형 확장과 내실화를 꼽을 수 있다. 글로벌 완성차 시장 내에서의 확대된 존재감으로 위상이 강화된 데다, 고부가가치 차종의 판매 확대에 힘입어 환원 재원이 쌓이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현대차·기아·제네시스는 지난해 말 기준 글로벌 시장에서 총 730만대를 판매하며 3위 입지를 굳건히 하고 있다. 이 기간 1위는 1123만대의 판매고를 올린 도요타그룹이며, 2위는 923만대의 폭스바겐그룹이 차지했다.
현대차그룹은 빠른 속도로 2위 업체를 추격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올 상반기까지 글로벌 완성차 시장에서 총 362만대를 판매하며 도요타그룹(516만대), 폭스바겐그룹(435만대)의 뒤를 잇고 있다. 현대차그룹과 폭스바겐그룹의 판매 격차는 약 73만대 수준인데, 올 하반기에도 비슷한 흐름이 유지된다고 가정하면 양사의 판매 격차는 193만대에서 150만대 수준으로 약 24% 좁혀지게 된다.
현대차그룹이 11%에 육박하는 영업이익률을 달성한 배경에도 정 회장의 선제적인 투자가 주효했다. 정 회장은 프리미엄 브랜드 제네시스를 글로벌 고급차 반열에 올렸을 뿐더러 하이브리드(HEV)와 전기차(EV) 등 친환경차 개발에 아낌없는 비용을 투입하면서 전동화 시대를 리딩하고 있다.
그 결과 현대차·기아는 올 상반기 말 기준 영업이익률이 각각 9.1%, 13.1% 총 10.7%로 나타났다. 이 같은 수치는 ▲도요타그룹(10.6%) ▲폭스바겐그룹 (6.3%) ▲르노-닛산-미쓰비시(4.2%) ▲스텔란티스(10.0%) 등 글로벌 판매 톱5 가운데 가장 높다.
◆ 신평사 A등급, 압도적 재무체력 입증…그룹사 전반 주주환원 확대
주목할 부분은 현대차그룹이 주주친화 기조를 강화했음에도 국내외 신용평가사로부터 'A' 등급을 획득했다는 점이다. 통상 주주환원율이 높아질수록 현금보유고가 감소하기 때문에 신용등급에 부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한다.
실제로 세계 3대 신평사인 무디스와 피치, 스탠더스앤드푸어스(S&P)는 모두 현대차·기아의 등급을 A로 올렸고, 국내 3대 신평사의 경우 한국기업평가를 제외한 나머지 2곳이 올 4월과 9월 기존 AA등급에서 AAA로 조정했다.
특히 한국신용평가는 현대차가 밸류업 프로그램을 발표한 이후 등급을 상향했는데, 이익창출력과 재무건전성이 업계 최상위권에 도달했다는 확신이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현대차는 밸류업 프로그램 발표와 함께 오는 2033년까지 연평균 12조원 이상의 대규모 투자를 지속해 미래차 경쟁력을 강화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현대차의 밸류업 정책이 현대차그룹이 나아갈 주주가치 제고 방안의 기준점이 된 만큼 그룹 주요 계열사들도 이 기조를 따를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가장 기대를 모으는 계열사는 조만간 밸류업 정책을 공시하는 기아인데, 현재 30% 수준인 주주환원율을 중장기적으로 35~40%까지 끌어올릴 것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김성래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기아의 주주환원 방안은 기존 대비 상향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하반기 금리 인하와 미국 대선 등 불확실성이 상존하지만, 고수익 차종 중심의 글로벌 판매 확대와 친환경차 생산 전략인 xEV(혼류생산) 대응력을 바탕으로 경쟁사 대비 한층 강화된 이익체력은 하반기에도 지속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새로운 눈으로 시장을 바라봅니다. 딜사이트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