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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배구조 개편 잠시 멈춰…'주주권익 먼저'
이세정 기자
2024.10.02 06:20:19
②시장 동의·지지 필요성 인지…기업가치 제고 주가 상승, 승계자금 부담 완화
이 기사는 2024년 09월 27일 07시 00분 유료콘텐츠서비스 딜사이트 플러스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오는 10월 취임 4주년을 맞는다. 현대차그룹은 정 회장 체제에서 수많은 변화를 겪고 있다. 2010년 후반만 해도 주주환원에 인색하다는 평가를 받던 현대차그룹이 대표적인 주주친화 기업으로 꼽히는 점도 정 회장 성과다. 투자자와 과실(果實)을 나누겠다는 정 회장의 의지는 현대차가 최근 발표한 밸류업(기업가치 제고) 프로그램으로 한층 명확해졌다. 현대차그룹은 미래 모빌리티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향후 10년간 120조원에 달하는 대규모 투자 집행을 예고하면서도, 동시에 중장기적인 주주환원을 극대화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에 현대차그룹의 밸류업 정책과 현황, 전망 등을 면밀하게 살펴본다. [편집자주]
정의선 회장이 현대차 체코공장 내에 위치한 현대모비스 배터리시스템(BSA) 공장에서 현지 직원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제공=현대차그룹)

[딜사이트 이세정 기자]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취임한 지 4년차를 맞은 가운데 아직까지 해결 못한 과제가 있다. 10대그룹 중 유일하게 순환출자 고리를 끊어내지 못하면서 지배구조 이슈가 잠재적 리스크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정 회장이 그룹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계열사 간 지분 구조를 정리해야 한다. 하지만 정 회장은 주주환원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우선 가닥을 잡았다. 과거 강행한 지배구조 개편안이 주주 반발로 무산됐던 만큼 기업가치 부양과 주주권익 확대로 시장의 충분한 동의를 이끌어 내겠다는 전략이다.


◆10대그룹 유일 순환출자 고리…주주 반발로 1차 개편 실패


27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현대차그룹은 2018년 1차 지배구조 개편안을 철회한 지 6년 가량 흘렀음에도 새로운 대안을 내놓지 않고 있다. 현재 현대차그룹은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현대모비스'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구조를 그린다. 세부적으로 현대모비스는 현대차 주식 21.9%를 보유하고 있다. 현대차는 기아 주식 34.3%를 들고 있고, 기아는 현대모비스 최대주주(지분율 17.7%)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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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환출자는 계열사 간 지분 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선단식 지배구조가 특징인데, 수직형 지배구조의 지주사 체제와는 정반대 개념이다. 특히 오너일가가 소수 지분으로 그룹 전체를 장악할 수 있어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유용한 수단으로 활용돼 왔다.


정부는 기업 스스로 투명한 지배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분위기를 조성했고, 순환출자 고리 해소 데드라인까지 제시했다. 특히 현대차그룹은 당시 공정거래위원회의 '관심기업'으로 분류되며 다른 기업에 비해 강도 높은 압박을 받았다.


현대차그룹이 약 2년 간의 준비 끝에 내놓은 1차 지배구조 개편안은 현대모비스 모듈과 사후관리(AS)부품 사업을 분할해 현대글로비스와 합병한다는 내용이 핵심이다. 또 정 회장과 정몽구 명예회장이 보유 중인 현대글로비스 지분을 매각하는 대신 현대모비스 주식을 매입해 '오너가→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로 단순화시킨다는 구상이었다.


하지만 해당 개편안은 미국계 행동주의 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엘리엇)과 소액주주들의 거센 반발에 실행되지 못했다.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 합병 비율이 현대글로비스 주주들에게 유리하게 책정됐다는 이유에서였다. 그 결과 정 회장은 미완의 지배구조 체제에서 2020년 10월 현대차그룹 회장으로 공식 취임했고, 2021년 5월 현대차그룹 기업집단 동일인(총수)로 지정됐다.


◆주주 '동의' 필요성 체득…주가 상승, 정 회장 승계 부담 완화


순환출자 해소는 현대차그룹이 투명한 지배구조를 구축하고, 정 회장이 온전한 지배력을 갖추기 위한 필연적인 과정이다. 하지만 정 회장은 현대글로비스(20%)를 제외한 주요 계열사 지분율이 여전히 2%를 밑돌고 있다.


그렇다고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 의지가 완전히 소멸된 것은 아니다. 현대모비스는 올 초 수소연료전지 사업부를 현대차로 이관했는데, 계열사 개편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다만 1차 때처럼 현대모비스를 분할하는 안건을 내놓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현대차그룹이 수소 모빌리티 사업을 전사 미래 성장 동력으로 낙점한 상황에서 수소사업 이관은 현대모비스 기업가치를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어서다.


현대차그룹 주요 계열사 주식 분포 현황. (그래픽=신규섭 수습기자)

현대차그룹이 2차 개편안을 더디게 추진하는 배경으로는 '주주'가 꼽히고 있다. 앞서 시장과 주주의 지지 없이는 개편이 어렵다는 사실을 몸소 경험했다는 이유에서다. 예컨대 현대차그룹은 1차 개편안을 발표할 당시만 해도 주주환원이 약하다는 지적을 받았고, 엘리엇의 반대에 부딪히고 나서야 자사주 소각 등 주주환원책을 발표했다. 아울러 정권이 교체되면서 순환출자 규제가 다소 완화된 점은 지배구조 개편 시급성을 낮추는데 일조했다.


정 회장이 주주친화 경영기조를 강화하기 위해 파격적인 주주환원책을 선보인 점은 눈길을 끈다. 현대차그룹이 정부의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 해소를 위한 '밸류업 프로그램'에 동참한 것이 대표적이다.


예컨대 그룹사 맏형 격인 현대차는 총주주환원율(TSR) 35% 이상과 총 4조원(2025~2027년)의 자사주 매입을 제시하며 '코리아 밸류업 지수'에 편입됐다. 오는 4분기 중 밸류업 정책 발표를 예고한 기아 역시 한층 강화된 기업가치 제고안을 내놓을 것으로 예상된다.


일각에서는 현대차·기아의 밸류업 정책이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 작업에 '일석이조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내다본다. 먼저 밸류업 정책 이행에 따라 주주환원이 강화될 뿐 아니라 주가 부양에 따른 시세차익을 거둘 수 있다.


또 현대차·기아 주가 상승으로 정 회장 보유 주식 가치가 상승하고, 승계 비용 부담을 줄일 것으로 관측된다. 가장 현실적으로 평가 받는 2차 개편안은 현대모비스를 지배구조 최상단에 올리는 얼개는 그대로 가져가되, 정 회장이 현대차·기아 주식을 활용해 현대모비스 주식을 늘리는 것이다. 두 회사 주식이 오를수록 정 회장이 확보할 수 있는 현대모비스 주식도 많아진다.


한 기업지배구조 전문가는 "현대차그룹이 계열사 분할·합병에 대한 주주 거부감을 확인한 만큼, 무리한 개편을 시도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정 회장이 보유한 주식을 매도해 현금을 마련하거나, 계열사 주식을 스왑(교환)하는 방안이 설득력을 가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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