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김민기 기자] "국민연금의 반대표를 제외하면 사실상 합병 찬성률이 95%를 넘습니다. 외국인도 95%이상 찬성했고 소액주주들도 합병 시너지에 대해 긍정적으로 본 듯합니다."(SK이노베이션 관계자)
SK이노베이션과 SK E&S 합병안이 주주총회에서 압도적인 찬성으로 승인됐다. 2대 주주인 국민연금이 주주가치 훼손 우려가 있다며 양사의 합병에 반대표를 던졌지만, 최대주주인 SK㈜를 비롯한 대다수 주주가 찬성하며 합병안이 통과됐다.
업계에서는 합병에 대한 공신력 있는 외부 기관의 긍정적 평가와 더불어 SK이노베이션의 발 빠른 주주 소통, 합병 시너지를 통한 재무·손익 구조와 사업 시너지 강화 등이 주주들을 설득한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주주들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자회사 SK온을 살리기 위해 SK E&S와의 합병이 가장 현실성 있는 결정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분석된다.
SK이노베이션은 27일 서울 종로구 SK서린빌딩에서 임시 주주총회를 열고 SK E&S와의 합병계약 안건을 통과시켰다. SK이노베이션 2대 주주인 국민연금은 이날 주총에서 예상대로 합병반대 의결권을 행사했지만 출석 주주 85.76% 찬성으로 원안대로 합병이 승인됐다.
이날 총 6054만5188표 중 찬성은 5192만808표(85.76%), 반대는 824만4399표(13.61%), 기권은 37만9981표(0.62%)를 기록했다. 현재 SK이노베이션 주요 주주는 SK그룹 지주사 SK㈜ 36.22%, 국민연금 6.28%, 개인 24.9%, 외국인 20.9%, 기타 기관 8.9% 순이다. 반대의견을 낸 국민연금이 약 594만주를 가지고 있어 이를 제외하면 사실상 반대를 표한 주주는 3.8%(230만주) 수준 밖에 되지 않는다.
국민연금 이외에 외국인, 기관 역시 95% 이상이 찬성표를 낸 것으로 알려져 있어 사실상 이번 합병은 압도적인 표차로 찬성을 거둔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날 주총장에 참석한 70대의 한 주주는 "주총장 분위기가 좋았고 반대 의견을 내는 주주는 없었다"며 "양사가 합병하면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찬성표를 던졌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매출 88조원, 자산 100조원 규모의 초대형 에너지 기업 탄생에 주주들이 손을 들어준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번 합병은 양사가 1999년 분리된 이후 25년 만의 재결합이다. 합병 SK이노베이션은 자산 기준으로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민간 에너지기업 중 1위로 도약하게 된다. 국영 에너지기업을 포함하면 아태 지역 9위다.
SK이노베이션은 합병으로 인한 시너지 효과만 2030년 기준 상각 전 영업이익(EBITDA) 2조2000억원 이상을 예상하고 있고, 전체 EBITDA는 20조원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특히 SK이노베이션 주주들은 '만년적자'이자 아픈 손가락인 자회사 SK온으로 인해 기업가치가 저평가 돼 있다고 보고 있다. 이번 합병으로 SK온을 살리고 알짜회사인 SK E&S와 사업 시너지를 내 시장에서 기업가치를 재평가 받고 싶다는 생각이다.
업계 관계자는 "에너지 관련 사업의 수직·수평계열화 및 수익성 향상에 기여할 수 있다"며 "합병의 정당성은 사업적 연관성을 넘어 해당 사업부문간 시너지 창출로 확보할 수 있으므로 주주들이 찬성표를 던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세계 양대 의결권 자문기관인 미국 ISS와 글래스루이스가 재무구조 안정성 강화 등을 이유로 양사 합병에 찬성을 권고한 것도 압도적 찬성률이 나온 배경으로 분석되고 있다. 아울러 국내 최대 의결권 자문기관 한국ESG연구소와 글로벌 신용평가사의 재무구조 개선 전망도 한몫 거들었다는 것이 업계의 시각이다.
실제 글로벌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합병으로 SK이노베이션의 사업규모와 포트폴리오가 확대되고, 현금흐름 변동성이 줄어들 것"으로 평가했다. 무디스 역시 "합병으로 규모, 사업 다각화, 운영 안정성이 향상되면서 2023년 재무제표 기준으로 매출은 14%, 상각 전 영업이익(EBITDA)은 48%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양사 모두 SK이노베이션이 내세운 합병의 명분과 동일한 의견을 개진한 셈이다.
최대 관심사였던 양사의 합병비율이 1대 1.1917417로 정해진 것도 주주들이 긍정적으로 평가한 이유로 꼽히고 있다. 그동안 합병비율은 자본시장법을 따른 것이나, SK이노의 주가순자산비율(PBR)이 0.36으로 자산가치 대비 주가가 저평가 돼 있어 합병비율이 주식가치를 적절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하지만 SK E&S의 상환전환우선주(RCPS)의 보통주 전환 등이 이유로 합병 비율을 1대 2나 1대 3까지 올릴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고 1대 1.2 수준으로 낮추면서 합리적인 비율을 산정했다는 평가다.
법무법인 대륙아주 자회사인 아주기업경영연구소는 "SK이노베이션의 자산가치(24만5405원)와 시장가(11만2396원)의 차이가 있어 SK이노베이션의 주주는 자산가치로 합병 비율을 산정했을 때 유리한 합병비율을 도출할 수 있다"면서도 "SK이노베이션이 합병비율 산정 시 대안으로 현재 자본시장에서 균형가격으로 인정되는 시장가격으로 평가했으므로 합병 비율의 적절성 관련 이슈는 상대적으로 적다"고 밝힌 바 있다.
이외 SK E&S의 상환전환우선주(RCPS) 관련 우려도 줄이기 위해 노력한 점도 주주들이 찬성표를 던진 배경이 됐다는 것이 업계의 분석이다. 아주기업경영연구소는 "SK E&S 이사회가 RCPS 보장수익률을 상향하는 안을 가결해 당장 상환할 우려를 줄이고자 했다고 소명했다"며 "합병 이후에도 부채 비율과 신용등급 강화를 위해 자본을 강화할 예정으로 자본과 부채 관련 이슈는 없을 것이라고 소명한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찬성했다"고 전했다.
한편 합병 이후 주가 부양, 주주가치제고, RCPS 상환, SK온 재무구조 건전화 등은 해결 과제다. 박상규 SK이노베이션 사장은 "회사의 장기적인 안정과 성장의 토대가 될 이번 합병이 순조롭게 마무리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할 예정"이라며 "더불어 합병 완료 이후 다양한 주주친화 정책을 적극 검토해 실행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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