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김민기 기자] SK그룹이 SK이노베이션과 SK E&S 합병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면서 분위기 반전에 성공하는 모양새다. 과거 SK가 SK㈜와 SK C&C의 합병을 통해 지배구조를 개편하면서 분위기 전환을 이뤄낸 것처럼 이번 합병이 SK리밸런싱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는 평가다. 업계에서는 하반기 SK스페셜티 매각, SKIET 지분 매각, 계열사 슬림화 등 최태원 SK그룹 회장표 리밸런싱(사업재편)에 더욱 속도를 낼 것으로 보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27일 서울 종로구 SK서린빌딩에서 임시 주주총회를 열고 SK E&S와의 합병계약 안건을 통과시켰다. SK이노베이션 2대 주주인 국민연금은 이날 주총에서 예상대로 합병반대 의결권을 행사했지만 출석 주주 85.76%의 압도적인 찬성으로 원안대로 합병이 승인됐다.
이번 합병 승인으로 SK그룹 입장에서는 SK온을 구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게 돼 한숨 돌리게 됐다. 박상규 SK이노베이션 사장도 이번 주총에서 이번 합병이 SK온을 구하기 위한 전략적 결정임을 우회적 드러냈다. 그는 "이번 합병은 간극이 벌어진 포트폴리오 간의 틈에 안정적으로 수익을 내는 SK E&S가 중간에 들어오면 배터리 사업이 캐즘에 있더라도 중간에서 시너지를 내서 이익 기반과 새로운 성장을 만들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SK그룹은 앞선 2015년에도 최태원 회장의 부재, SK이노베이션 등 주력 계열사의 실적 악화, 태양광 및 2차전지 등 신사업 부진 등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이에 SK는 SK㈜와 SK C&C의 합병을 통해 최 회장의 직접적인 지분 확대를 통한 지배력 강화에 힘을 쏟았다. 당시에도 국민연금의 반대로 예기치 못한 걸림돌을 만났으나 합병 안건은 각각 86.9%(SK)와 90.8%(SK C&C)의 압도적인 찬성률을 기록했다. 이후 SK C&C는 초우량회사인 SK㈜와 합치면서부채 부담을 줄이며 재무구조를 개선했다.
SK이노베이션도 이번 SK E&S 흡수합병하면 자산 100조원 규모의 대형 에너지기업으로 거듭나게 된다. 아시아·태평양 지역 민간 에너지 기업 2위에서 일본 에네오스(ENEOS) 홀딩스(95조원)를 제치고 1위로 올라서게 된다. 만성 적자 기업인 SK온도 자금지원이 수월해질 전망이다. 합병 효과로 추정한 연간 상각전영업이익(EBITDA)은 2조2000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이번 합병을 신호탄으로 SK 리밸런싱은 더욱 속도를 낼 전망이다. 이를 위해 알짜 자산인 SK스페셜티 매각도 추진 중이다. SK스페셜티의 전신은 OCI머티리얼즈로 반도체, 디스플레이, 태양전지를 제조할 때 필요한 소재인 특수가스를 생산 중이다. 주력 제품은 삼불화질소(NF3)로 글로벌 시장 점유율에서 1위를 유지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물론 삼성전자, LG디스플레이 등 대형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회사를 주 고객으로 뒀다. 협상 초기지만 국내 대형 사모펀드(PEF) 운용사 사이에선 3~4조원 이상 눈높이가 형성된 것으로 전해진다.
업계에서는 SK㈜가 SK스페셜티를 통매각 할 경우 단숨에 재무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협상에 따라 통매각 대신 지분 일부를 매각한 뒤 공동 경영하는 방안도 나오고 있다. 앞서 20일 SK㈜는 "SK스페셜티에 대한 지분 매각을 포함한 다양한 전략적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공시한 바 있어서다.
SKIET 등 여타 계열사들에 대한 지분 매각 등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SK그룹은 매각예정 자산이 6개월 새 3배 가까이 늘어났다. SK㈜의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상반기 말 연결기준 매각예정으로 분류한 자산 규모는 4조5520억원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말 1조3471억원과 비교하면 3.4배 가량 증가한 수준이다.
상반기 SK네트웍스의 SK렌터카 매각(8200억원), SK어스온의 페루LNG(액화천연가스) 지분 매각(3400억원), SK스퀘어의 크래프톤 지분 매각(2600억원)이 이뤄졌다. 이 밖에 SK동남아투자법인의 베트남 빈·마산그룹 지분, SK㈜가 보유한 중국 동박 제조기업 왓슨 지분, 11번가 등의 매각이 추진 중이다.
SK는 계열사 정리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SK㈜의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말 716개였던 SK㈜의 연결대상 종속회사는 상반기 말 667개로 49개나 줄었다. 신규 편입된 회사는 14개 수준이지만 청산과 매각 등 정리된 회사는 63개다.
한편 SK에코플랜트 기업공개(IPO)가 이뤄지고 SK스페셜티 매각까지 진행되면 SK의 리밸런싱 큰 그림이 완성된다는 평가다. 리밸런싱은 올해 하반기와 내년까지 이어진다. SK 경영진은 올해 6월 경영전략회의에서 사업 리밸런싱(구조조정)의 일환으로 2026년까지 80조원의 재원을 확보해 AI와 반도체를 비롯한 미래 성장 분야에 투자한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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