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조은비 기자] 미 재무부의 이란산 원유 수입 유예 종료(4월19일)가 3주 가까이 남았음에도 산업 현장의 원가 인상은 이미 시작됐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 장기화에 따른 원료 수급 불안이 실물 경제로 전이되면서, 비축유 방출 시점 이전에 생필품 가격이 먼저 들썩이는 양상이다.
딜사이트 취재를 종합하면 국내 세제 원료 시장의 핵심 공급망을 담당하는 주요 화학사가 최근 LG생활건강 등 대형 제조사에 원재료 가격 40% 인상을 통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따라 세탁세제와 샴푸 등 주요 생필품의 소비자 가격도 향후 수급 상황에 따라 20~30% 수준의 인상 압박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원가 급등의 직접적인 원인은 글로벌 시장의 수급 불균형이다. 특히 지난 23일 발생한 국제 석유제품 가격의 급격한 괴리가 결정적인 트리거가 됐다. 페트로넷에 따르면 이날 싱가포르 시장의 등유(항공유 베이스) 가격은 배럴당 234.32달러까지 치솟았으나, 세제 원료인 나프타는 138.75달러에 머물렀다.
같은 원유에서 추출되는 제품임에도 가격 차가 배럴당 100달러 가까이 벌어지자, 정유사들이 수익성이 높은 항공유 생산에만 수율을 집중하면서 나프타 공급망에 병목 현상이 심화됐다. 정부의 수출 제한 조치에도 현장의 공급 부족이 해소되지 않은 것으로 풀이된다.
제조업계는 이번 사태를 과거의 위기와는 다른 모습이라고 보고 있다. LG생활건강 관계자는 "원료 단가를 일괄 40% 인상하는 경우는 없다"면서도 "원유와 나프타 단가 상승에 따라 원료 단가가 인상되고 있으며, 해외 원료 역시 인상 추세라 국내 업체의 인상 요청을 과도하다고만 볼 수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이번 사태가 공급과 생산 자체에 차질이 생긴 '공급망 위기'라는 점을 강조했다. LG생활건강 측은 "러우 전쟁이 환율 문제였다면 지금은 공급망 자체가 흔들리는 다른 종류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원물에서 원료로 이어지는 구조상 원료사들이 물리적 한계에 봉착해 어려운 상황인 것은 맞다"고 밝혔다. 다만, 협력사들과 공급을 이어가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유통가 현장 지표도 요동치고 있다. 최근 일주일(23~30일)간 대형 유통업체의 세탁세제 매출은 전주 대비 21%나 신장했다. 섬유유연제(7.9%)와 바디워시(12%) 등 주요 생필품 매출도 일제히 오름세를 보였다.
이에 대해 대형 유통업계 관계자는 "지난 26일부터 진행된 대규모 할인 행사의 영향으로 매출이 늘어난 것이며, 특별히 사재기 영향으로 매출이 뛴 동향은 보이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또한 "예정된 할인 행사를 차질 없이 진행할 방침"이라며 "세탁세제와 섬유유연제 전 품목에 대해서도 기존대로 행사를 이어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지난 23일 발생한 국제 제품가 불균형과 공급망 차질이 장기화될 경우, 제조사가 받는 원가 압박이 결국 소비자 가격으로 전이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4월19일 비축유 방출이 실제 나프타 생산과 원가 하락으로 이어지기까지는 상당한 시차가 존재한다. 이미 시작된 공급망 위기가 실물 경제에 미칠 추가적인 여파를 면밀히 모니터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류진이 KB증권 연구원은 "현재 수준인 환율 1530원과 브렌트유 배럴당 113달러가 지속된다고 가정할 때, 헤드라인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0.24~0.90%p의 상승 압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며 "이는 3월보다 2분기에 좀 더 본격적으로 반영되며 장바구니 물가를 압박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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