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이세정 기자] 화승그룹 지주사 화승코퍼레이션이 이사 보수 한도를 2배 증액했다. 사내이사의 보수와 상여가 이사 보수 한도 내에서 지급되는 만큼 오너에게 지급할 보수의 몫이 더 커지게 된 셈이다. 일각에서는 화승그룹 창업주 2세인 현승훈 회장이 용퇴 전 최대한 많은 실리를 확보하려는 포석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이러한 상황에서 배당성향은 오히려 축소하면서 소극적인 주주환원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 이사 수 축소에도 보수 한도 2배↑
19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화승코퍼는 이달 31일 정기 주총을 개최하고 지난해 35억원이던 최고한도액을 올해 70억원으로 증액하는 안건을 상정했다. 이사회 규모가 8명에서 올해 7명으로 축소됐지만 오히려 이사 보수 한도를 큰 폭 확대하는 것이다.
실제로 화승코퍼는 기타비상무이사를 맡던 구철홍 전무가 지난해 9월 계열사 화승네트웍스 대표이사로 영전하면서 생긴 공백을 아직 채우지 않았다. 더군다나 화승코퍼는 지난해 이사 보수 한도가 부족한 상황도 아니었다. 이 회사는 지난해 총 22억원을 지급했는데, 보수 한도의 63%가량을 소진했다.
화승코퍼 측은 이사 보수 한도를 늘리는 사유에 대해 "급변하는 시장 환경에 대응할 우수 인재를 유치해 경쟁력을 강화하고 성과 기반의 책임 경영을 실현하기 위해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새롭게 합류하는 사내이사가 없을 뿐더러 사외이사의 경우 연간 보수가 인당 3600만원으로 고정돼있다.
예컨대 화승코퍼 이사회는 사내이사 4명과 사외이사 3명 등 총 7명으로 운영되고 있다. 사내이사는 ▲현 회장 ▲현지호 대표이사 부회장 ▲허성률 대표이사 사장 ▲곽명철 경영기획담당 상무이며, 사외이사는 ▲윤재웅 백년농가 대표이사 ▲홍순보 홍순보법률사무소 대표 ▲최재현 전 현대자동차 구매본부 전무다.
화승코퍼는 최근 5년(2021~2025년)간 매년 사외이사 보수로 인당 3600만원씩 지급했다. 사외이사 총 보수액은 연간 1억800만원으로, 이사 보수 한도 35억 중 최대 33억9200만원을 사내이사가 챙길 수 있는 구조였다. 올해 이사 보수 한도 안건이 통과되면 사외이사 보수를 두배로 늘리더라도 사내이사에게 최대 67억8400만원을 쓸 수 있는 룸을 확보하게 되는 것이다.
◆ 일회성 요인으로 순익 '쑥', 배당금은 전년과 동일…배당성향 '역행'
눈여겨 볼 점은 화승코퍼의 순이익이 대폭 증가했음에도 배당성향은 오히려 낮아졌다는 점이다. 화승코퍼는 지난해 연결기준 순이익이 1031억원으로 전년(599억원) 대비 72.1% 급증했지만 배당금은 전년과 동일한 수준으로 지급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배당성향은 5.6%에서 3.4%로 전년 대비 2.2%포인트(p) 하락했다.
화승코퍼가 미국 관세 리스크 등 비우호적인 영업 환경에도 호실적을 달성한 배경에는 중단영업당기순이익이 있다. 이 회사는 지난해 말 중국 연고무 제조 자회사인 화승특종고무(태창) 유한공사를 208억원에 매각하며 현금력을 확보하는 동시에 장부상 순이익을 크게 끌어올렸다. 그 결과 화승코퍼는 지난해 말 이익잉여금이 2100억원으로 집계됐으며, 실제 배당 여력을 파악할 수 있는 현금성자산도 1168억원에 달한다.
하지만 회사는 지난해 실적에 대한 결산 배당금으로 전년과 동일한 주당 75원을 책정했다. 총 배당금에서 순이익을 나눈 값인 배당성향은 기업이 벌어들인 순이익 중 주주에게 환원하는 정도를 확인할 수 있는 지표다.
화승그룹 자동차 부품 계열사인 화승알앤에이의 상황도 같다. 이 회사는 이달 31일 예정된 정기 주총에서 올해 이사 보수 한도를 35억원에서 70억원으로 확대하지만, 배당금은 전년과 동일하게 지급하기로 했다.
화승알앤에이가 이번 주총에서 사내이사 후보 1인과 사외이사 후보 1인 총 2인의 신규 선임안건을 다룬다는 점은 화승코퍼와의 대조된다. 하지만 화승알앤에이의 사외이사 보수도 연간 3600만원 수준으로, 사내이사가 한도 내에서 보수 대부분을 가져갈 수 있는 구조다. 현 회장과 장남 현 부회장은 화승알앤에이에도 사내이사로 등재돼 있다.
◆ 현 회장 수익 극대화 관측…'주주 압박' 화승인더, 주주환원에 초점
업계 안팎에서는 화승그룹이 세대교체를 앞두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오너 2세이자 창업주 장남인 현 회장이 올해 80대 중반으로 진입한 데다, 오너 3세 장남을 정점으로 한 지배구조 재편 작업은 사실상 마무리됐다. 최근 오너 4세인 현 부회장 장남이 주요 주주 명단에 이름을 올린 것 역시 현 회장의 퇴진 시점이 다가왔다고 예측하는 근거 중 하나다.
이렇다 보니 현 회장이 경영 전권을 이양하는 막바지 작업으로 수익 극대화에 초점을 맞춘 것 아니냐는 시각이다. 이미 현 회장이 대표이사 직을 수행하는 두 아들보다도 많은 보수와 상여를 수령 중인 데다, 가파른 급여 인상률을 보이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현 회장은 지난해 3분기 말까지 급여로만 7억2900만원을 받았는데, 전년 동기 급여로 추정한 연간 인상률은 14%를 상회한다. 급여가 인상될수록 추후 퇴직금 산정 기준이 높아진다는 점도 유의미한 대목이다.
지배구조 연구소 한 관계자는 "통상 기업이 보수 한도를 전액 집행하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면서도 "다만 한도 증액은 경영진을 비롯한 이사 보수를 상향할 수 있는 유동적 장치를 마련한 것으로 충분히 해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차남 현석호 부회장이 이끄는 스포츠패션 제조업자개발생산(ODM) 및 정밀화학사인 화승인더스트리(화승인더)는 이번 주총에서 이사 보수 한도 증액 안건을 다루지 않는다. 화승인더의 이사 보수 한도는 22억원으로 화승코퍼나 화승알앤에이의 3분의 2 수준이다. 이사 보수 한도 소진율은 지난해 69%로 화승코퍼(63%)보다 높지만 기존 한도를 유지하기로 했다.
업계는 화승인더가 소액주주연대로부터 거센 압박을 받은 이후 기업가치 제고와 투자자 신뢰 회복을 약속했다는 점이 주효했다고 보고 있다. 주주연대와의 약속을 이행하기 위해 배당성향을 2.5%에서 5.1%로 2.6%p 늘렸으며, 배당 확대를 위한 중장기 비전을 공개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화승그룹 관계자는 "현 회장이 용퇴를 준비하고 있지는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도 이사 보수 한도를 상향한 배경에 대해서는 답변하지 않았다.
ⓒ새로운 눈으로 시장을 바라봅니다. 딜사이트 무단전재 배포금지
Hom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