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셀로나(스페인)=딜사이트 최령 기자] "스페인 내부에서는 오히려 페드로 산체스 총리가 잘했다는 여론이 많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스페인 민간 기업의 자유를 박탈하고 있다며 미국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스페인 현지 전문가)
세계 최대 이동통신 전시회 'MWC26'가 열리는 스페인 바로셀로나에서는 차분함 속에 긴장감이 맴돌았다. 행사장 내부는 차질없이 운영됐지만 입구에서는 시위대가 전시장 입구에 모여들어 "미국과 이스라엘을 보이콧하라"고 외치면서 일촉즉발의 분위기도 연출됐다.
일각에서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에 대해 이번 작전이 전쟁이 아니라 핍박받는 이들을 구하기 위한 작전이며, 공습으로 사망한 하메네이를 2차 세계 대전의 원흉인 히틀러에 비유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스페인 사람들의 여론은 스페인 총리가 주권을 지켰다며 페드로 산체스 총리를 지지하는 반응이 확산되고 있다.
로이터통신과 파이낸셜타임스(FT) 등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3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와 회담하는 자리에서 기자들에게 "재무장관에게 스페인과 관련된 모든 거래를 끊으라고 지시했다"며 "필요하다면 스페인과의 모든 무역을 중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스페인과 관련된 모든 사업을 막을 권리가 나에게 있으며 필요하다면 원하는 모든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앞서 산체스 총리는 미국의 이란 공습 직후 "이번 공격은 정당화할 수 없고 위험한 군사 개입이자 국제법 위반"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아무리 동맹국이라도 국제법에 위반되는 군사 행동에 자국의 군사기지를 제공할 수 없다는 의미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MWC가 진행 중인 행사장은 '미국·이란 전쟁'이라는 거대한 지정학적 파고가 영향을 미칠까 관심이 쏠렸다. 한국 기자단 내부에서도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 전역을 공습하며 발발한 전쟁의 여파가 행사 진행에 차질을 빚을 수 있기 때문이다.
행사 주체인 세계이동통신사업자연합회(GSMA)는 전반적인 행사 운영에는 문제가 없었다는 입장이다. 다만 중동 영공이 폐쇄되면서 카타르 항공과 에미레이트 항공, 에티하드 항공 등 주요 노선이 잇따라 취소됐고, 이로 인해 일부 지역 참가자들의 입국이 지연되거나 무산됐다. 기자단 사이에서도 기술 행사인 MWC도 국제 정치의 영향에서 자유롭기 어렵다는 사실이 확인됐다며 안타까움이 터져나오기도 했다.
펠리페 6세 스페인 국왕도 MWC 개막 전야 만찬에 참석해 평화를 촉구했다. 그는 "이 순간에도 중동은 다시 한번 중대한 국면에 처해 있으며, 지역적 분쟁 확대의 명백한 위험과 예측 불가능한 결과가 우려되는 상황"이라며 "무력 사용의 최대 억제와 민간인 생명 존중, 현재의 대결 논리에서 벗어난 외교적 해결책 모색을 강력히 요구한다. 혼란스러운 상황과 전면적인 억압을 피하고, 진실한 평화를 찾기 위한 대화를 재개할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펠리페 6세는 MWC가 기술이 평화를 만들어내는 데 기여할 수 있음을 상기시켜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는 "기술은 언제나 윤리적 틀 안에 있어야 한다. 기술은 분열이 아닌 연결을 위한 도구여야 하며, 배제가 아닌 발전을 위해, 그리고 대결이 아닌 평화를 위해 기능해야 한다"고 전했다.
스페인 정부는 경제적 충격에 대비한 대응책도 검토하고 있다. 스페인 현지 언론 laSexta에 따르면 카를로스 쿠에르포 경제부 장관은 기업과 가계를 보호하기 위해 과거 에너지 위기 때 도입했던 '에너지 보호막(escudo energético)' 정책을 다시 활용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쿠에르포 장관은 현재 상황을 "매우 불확실한 지정학적 환경"이라고 설명하며 "우리는 이미 1년 넘게 기업들이 이러한 환경에 대응할 수 있도록 지원해 왔고, 기업들의 우려를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미국과의 무역과 투자 활동에 관여하는 1600개 이상의 기업들과 접촉하며 도움을 제공해 왔다"며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스페인 정부 내부에서도 미국의 군사 행동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문화부 장관 에르네스트 우르타순은 산체스 총리가 강조한 '전쟁 반대(No a la guerra)' 구호를 옹호하며 야당 지도자 알베르토 누녜스 페이호오에게 "전쟁을 거부하고 우리나라가 침략 전쟁에 참여하기를 원하지 않는 대다수 스페인 국민에게 충실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스페인을 "불법적인 침략 전쟁에 맞서 존엄을 지키는 나라"라고 강조했다.
이번 사태 이후 산체스 총리는 소셜미디어에서도 크게 주목받고 있다. 독일 녹색당 출신 정치인 위르겐 트리틴은 엑스(X)에 스페인어로 "용감하고, 성격과 원칙을 가진 사람. 페드로 산체스"라고 썼다. 또 다른 독일 이용자는 "우리 모두 어느 정도는 스페인 사람인 것 아닐까?"라는 글을 올리며 스페인 정부의 결정을 지지했다.
한편 MWC 2026에서는 전쟁 상황을 실시간으로 중계하는 뉴스 화면과 비상시 지상망을 대체할 수 있는 '위성 통신(D2D)' 기술에도 적지 않은 관심이 쏠렸다. 실제로 스타링크와 같은 위성 통신 인프라가 분쟁 지역의 통신망 보호와 인도주의적 지원에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이 언급됐다.
키노트 발표를 맡은 스타링크는 "일본 대지진과 우크라이나 전쟁 지역 등에서 위성 통신은 필수적인 생명선임을 입증했다"며 위성 통신의 인도주의적 성과와 회복 탄력성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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