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노연경 기자]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생활 물가 안정'이 최우선 국정 과제로 부상하면서 담합 사건을 둘러싼 기류가 달라지고 있다. 검찰과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에 동시에 청와대의 강한 메시지가 전달되면서 과거처럼 담합이 솜방망이 처분으로 끝나던 관행은 사라지고 기업들이 두 기관의 눈치를 모두 봐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해 6월 취임 직후부터 "물가 안정이 곧 민생 안정"이라며 모든 수단을 동원해 물가를 잡아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대통령이 강력한 물가 안정 의지를 천명한 지 약 반년이 지난 이달 2일 검찰은 약 10조원 규모의 밀가루·설탕 담합 정황에 대한 수사를 마무리하고 관련자 52명을 재판에 넘겼다.
일반적으로 공정거래 관련 범죄는 공정위의 전속고발권에 따라 공정위의 고발이 있어야만 검찰 수사가 가능하다. 다만 담합과 같은 중대 범죄에 대해서는 공정위 고발 없이도 검찰이 직접 수사할 수 있도록 문재인 정부 시절 제도 개선이 이뤄졌다.
이 같은 제도적 기반 위에 대통령의 '물가 안정' 특명까지 더해지면서 검찰과 공정위는 담합 사건을 두고 사실상 경쟁 구도에 들어섰다. 검찰은 이번 설탕·밀가루 담합 사건에서 공정위 고발 없이 선제적으로 수사에 착수해 공정위보다 빠르게 결과를 내놓았다. 이 대통령 역시 검찰의 수사 성과에 대해 "검찰이 큰 성과를 냈다"며 공개적으로 격려했다.
강제수사권이 없어 속도 면에서는 뒤처졌지만 공정위는 제재 수위를 끌어올리는 방식으로 대응에 나섰다.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은 지난 3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현행 공정거래법은 담합에 대해 관련 매출의 최대 20%까지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되어있지만 이를 30%로 상향하는 법 개정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주 위원장은 또 "시행령과 과징금 고시를 함께 손질해 과징금이 상한보다 지나치게 낮아지는 것을 막고 중대성이 큰 사건에는 하한선도 둘 수 있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공정위는 설탕 담합 사건을 이달 11일 전원회의에 상정할 예정이며 밀가루 담합 사건에 대해서도 조사를 진행 중이다. 여기에 최근 국세청까지 가세해 밀가루 담합 기업을 대상으로 세무조사에 착수한 상태다.
과거에는 담합을 통해 얻은 부당 이득이 벌금이나 과징금보다 큰 경우가 많아 기업들 사이에서 '벌금 내고 말지'라는 인식이 팽배했다.
실제로 공정위는 1991년부터 2005년까지 설탕 가격을 담합한 제조사 3곳에 대해 512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하는데 그쳤다. 당시 소비자 피해액은 해당 업체들의 합산 매출액의 10~15%, 최대 9000억원에 이른다는 추정이 나왔지만 과징금은 부당 이득의 1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수사기관과 행정기관이 동시에 경쟁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담합을 바라보는 시장의 분위기도 확연히 달라지고 있다.
시장 한 관계자는 "과거에는 담합 사건의 처벌 수위가 낮았고 행정소송을 거치면서 과징금이 더 줄어드는 경우도 많아 기업들이 크게 경계하지 않았다"며 "하지만 이번 정부 들어서는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 아래 수사기관과 행정기관이 동시에 움직이면서 기업들이 양쪽 기관의 시선을 모두 의식하며 대응에 나설 수밖에 없는 분위기로 바뀌고 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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