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김규희 기자] 한국성장금융투자운용이 150조원 국민성장펀드의 모펀드 운용사 후보로 나섰지만 현 허성무 대표이사의 이미 임기가 만료된 가운데 새로운 인선이 지연되자 리더십 부재로 인해 제대로 된 전략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더구나 성장금융의 지배구조가 한국거래소 등 민간 중심으로 바뀌면서 금융위원회나 한국산업은행도 더 이상의 어드밴티지는 주지 않겠다는 분위기가 명징하다.
9일 업계에 따르면 이재명 정부가 국가 경제 재도약을 목표로 내건 150조원 규모의 국민성장펀드가 본격적인 가동에 나서면서 지난 5일 마감된 2026년 재정모펀드 위탁운용사 제안서 접수 결과 성장금융과 신한자산운용, 우리자산운용, 한화자산운용, 미래에셋자산운용 등 5곳이 출사표를 낸 것으로 확인된다.
국민성장펀드는 인공지능(AI)과 반도체 등 첨단전략산업에 5년간 대규모 자금을 공급하는 이재명 정부의 핵심 경제 국정과제로 손꼽힌다. 정부는 올해 4500억원의 재정을 마중물로 투입해 민간 자금과 결합한 재정모펀드를 조성할 계획이다. 이 거대 자금의 물꼬를 틀 재정모펀드 위탁운용사(GP) 자리를 두고 국내 대형 자산운용사 5곳이 사활을 건 수주전에 뛰어든 것이다.
한국산업은행은 이번 공모에서 정책성펀드(산업지원·집중지원)와 초장기기술투자, 국민참여형 등 4개 분야의 모펀드를 관리할 운용사를 각 1개사씩 선정한다. 선정된 GP는 향후 5년간 이어질 150조원 정책 자금 운용의 주도권을 쥐게 된다. 이번 사업에 투입되는 재정은 분야별로 산업지원 1600억원 집중지원 900억원 초장기기술투자 800억원 국민참여형 1200억원 규모다. 산은은 오는 3월 중 최종 심사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가장 주목받는 후보는 정책금융 모펀드 운용의 '종가'로 불려온 성장금융이다. 정책펀드 운용 경험이 풍부해 강력한 후보로 꼽히지만 업계에선 선정 가능성에 회의적인 시선도 교차한다. 대표이사 공백이 6개월 넘게 장기화하면서 조직의 구심점이 사라진 탓이다. 리더십 부재는 조직 장악력 약화로 이어졌고 이는 대형 정책 사업을 책임질 GP로서 경쟁력 저하 요인으로 꼽힌다. 수장 없는 조직이 엄중한 시기에 150조원이라는 국가적 프로젝트를 안정적으로 이끌 수 있겠느냐는 의구심이 시장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특히 국민성장펀드의 주무부처 중 하나인 산은과의 해묵은 갈등은 심사의 최대 변수로 꼽힌다. 성장금융은 과거 산은에서 독립한 이후 모태 격인 산은과 사사건건 충돌해왔다. 정책금융 주도권을 놓지 않으려는 산은과 홀로서기를 시도하는 성장금융 사이의 신경전은 단순한 기관 간 견제로 보기엔 상호 불신이 실무 영역까지 깊숙이 생채기를 냈다는 지적이다.
산은은 성장금융에 대한 견제 수위를 꾸준히 높여왔다. 성장금융은 그동안 산은으로부터 모펀드 GP로 꾸준히 선택을 받아왔으나 2024년 혁신산업 모펀드 GP에서 밀려 규모가 작은 성장지원 모펀드 GP로 내려앉았다. 2025년에는 상황이 더 악화되어 아예 모든 모펀드 GP 선정에서 고배를 마시는 수모를 당했다.
성장금융은 이를 산은의 의도적인 견제로 받아들이고 강하게 반발했다. 이후 성장금융은 2025년 자신이 진행하는 출자사업에서 산은으로부터 출자받은 GP들을 선정에서 배제하는 방식으로 응수했다. 이로 인해 산은의 자금을 받은 일부 GP들이 성장금융 자금을 확보하지 못해 펀드 최소결성금액을 달성하기 어려워지는 등 큰 차질을 빚었다. 정책 자금의 효율적인 집행보다 기관 간의 감정 싸움이 우선시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성장금융의 산은 견제는 펀드 정관 정리 과정에서도 암암리에 지속되어 왔다. 성장금융은 하위 GP들에게 펀드 정관 작성 시 산은이 아닌 자신들의 기준을 우선적으로 반영할 것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러한 요구 사항을 산은 측에는 철저히 비밀로 해달라는 단서를 달았다는 전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업계 일각에서는 성장금융이 GP 한 자리는 꿰차지 않겠느냐는 신중한 낙관론도 나온다. 이번 공모에서 산은이 총 4곳의 GP를 선정하기 때문이다. 제안서를 낸 운용사가 5곳인 점을 고려하면 단 한 곳만 탈락하는 구조다. 산은 입장에서도 아무리 관계가 껄끄러워도 모펀드 운용 인프라와 경험이 가장 풍부한 성장금융을 완전히 배제하기는 실무적 부담이 클 것이라는 분석이다. 결국 이번 심사는 성장금융이 명예 회복에 성공하느냐 아니면 민간 운용사들에 밀려 완전히 주도권을 내주느냐의 갈림길이 될 전망이다.
정통한 관계자는 "성장금융이 한 자리를 얻더라도 산은과의 비정상적인 관계가 해소되지 않는다면 향후 운용 과정에서도 마찰이 불가피할 것"이라며 "150조원이라는 국가적 프로젝트의 성공을 위해선 기관 간의 소모적인 기싸움보다 정책적 시너지를 내기 위한 리더십 복구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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