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김규희 기자] 정부가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증설을 위해 기획한 2조5000억원 규모 국민성장펀드 대출 심의를 중단한 배경에는 지방선거를 앞둔 정치권의 정무적 판단이 있다. 단순히 개별 기업의 신용도나 사업성을 검토하는 차원을 넘어 삼성이라는 국내 첫째가는 재벌 기업에 국비를 가장 먼저 투입하는 모양새가 가져올 여론의 향방을 고려한 조치라는 지적이다. 지역 균형 발전을 기치로 내건 상황에서 150조원 규모 정책 금융이 수도권에 쏠린다는 오해도 사전에 차단하고자 신중한 접근법을 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7일 산업은행은 최근 삼성전자 대출 안건의 상정을 취소했는데, 이는 국민성장펀드 내 첨단전략산업기금 2조원에 5대 시중은행이 각 1000억원씩 참여하는 총 2조5000억원 규모의 금융 패키지였던 것으로 파악된다. 삼성전자는 이 자금으로 평택 5공장(P5)의 전력 인프라를 구축하고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 등 핵심 설비를 들여올 계획이었다. P5는 가로 650m 세로 195m에 달하는 역대 최대 규모의 '트리플 팹'이다. 6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4)와 2나노미터(nm) 파운드리 라인이 들어설 삼성의 차세대 핵심 거점으로 평가된다.
투자은행(IB) 및 재계는 이번 심의 중단을 다가오는 6‧3 지방선거와 연결 짓는다. 선거를 불과 넉 달 앞둔 시점에 경기도 평택의 대규모 프로젝트에 저리 대출을 집중하는 게 자칫 지방 유권자들을 외면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어서다.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전국 각지를 돌며 지역소멸을 정치로 막겠다는 의지를 강조하고 있다. 이런 통수권자의 선언과 달리 대통령이 직접 구상한 국민성장펀드가 정작 자금 지원은 대기업에, 그것도 수도권 시설 증설에 먼저 쓴다면 정치적 공격을 피할 수 없을 거란 지적이다.
특히 수도권과 지방 격차 해소를 국정 과제로 내건 정부는 대기업 특혜 시비와 수도권 집중 비판이 동시에 터져 나오는 상황을 경계하는 분위기다. 한 재계 관계자는 "국민성장펀드의 상징성을 고려할 때 첫 대형 지원 대상이 수도권 대기업이라는 점에 대해 정무적 부담이 상당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정부는 지역 균형 발전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지난 4일 이재명 대통령이 10대 그룹 총수를 청와대로 초청해 연 '청년 일자리와 지방 투자 확대를 위한 기업 간담회'는 이러한 기조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신호다. 이 대통령은 간담회에서 성장의 과실이 지방과 청년에게 골고루 확산되어야 한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재계가 향후 5년간 지방을 중심으로 총 300조원 규모의 투자 계획을 내놓으며 화답한 상황에서 정부가 곧바로 삼성의 평택 공장에 수조원의 공적 자금을 지원하는 것은 정책 메시지의 일관성을 해칠 수 있다는 판단이 선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이번 자금 수급 차질로 인해 P5 공장의 운용 계획을 수정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보유 현금은 넉넉하지만 연 3% 초반의 저금리 정책 자금을 활용하려던 재무 전략에 차질이 생기면서 기회비용 측면의 손실이 불가피해졌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공공 대출 대신 내부 유보금 활용 등 이른바 '플랜B' 마련에 착수할 것으로 보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책 금융의 효율성과 형평성 사이에서 정부의 고민이 깊어질 것으로 본다.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 확보라는 국가적 과제와 지역 균형 발전이라는 정치적 가치가 충돌하는 지점에서 속도 조절이 일어난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여론을 살피는 작업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인 것도 맞지만 글로벌 반도체 전쟁은 결국 속도와 자금의 싸움인 만큼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도록 신속한 의사결정이 뒷받침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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