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이우찬 기자] 여천NCC를 나락에 빠트린 요인 중 하나로 공동기업의 지배구조가 꼽히고 있다. 신속한 의사결정이 필요한 위기 국면에서 공동기업 지배구조는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책임을 떠넘기며 갈등을 키우는 요소로 작용했다. 지분 절반씩 쥐고 있는 한화그룹과 DL그룹은 지분 양도 등을 놓고 해법을 모색했으나 절충점을 찾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의 인위적 구조조정에서도 지배구조 해법을 찾지 못하면 여천NCC는 양보 없는 평행선을 달리며 또다시 부도 위기에 몰릴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에 따르면 여천NCC는 최근 모기업 한화솔루션과 DL케미칼에서 1500억원씩 3000억원을 대여하며 급한 불을 껐다. 3월 주주배정 유상증자로 2000억원을 수혈받은 데 이어 또다시 모기업에서 유동성을 공급받은 것이다. 자금 지원을 두고서는 볼썽사나운 모습도 연출됐다. 한화는 DL 반대로 여천NCC가 채무불이행(디폴트)을 피할 수 없다고 주장했고 DL은 묻지마식 자금 지원은 배임이라고 맞서기도 했다.
두 대기업집단의 첨예한 갈등은 여천NCC가 안고 있는 태생적 한계로도 분석된다. 공동기업의 지배구조 체제로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의사결정을 위해 한발짝도 나아갈 수 없어서다. 빠른 의사결정은커녕 위기 국면을 돌파하기 위한 합의 자체가 이뤄지지 않는 것이다. 진통 끝에 3공장 가동 중단도 이달 초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여천NCC 이사회는 한화와 DL 동수로 구성돼 있다. 3명씩 총 6명이다. 감사도 각 사 1명씩이다. 김길수 대표이사와 김명헌 대표이사는 각각 DL, 한화 쪽 인사다. 둘은 각자 대표이사가 아닌 공동 대표이사로 의사결정을 위해서는 이 대표와 김 대표가 보유한 도장 모두 필요하다. 소유구조와 의사결정 체제를 감안하면 신속한 실행이 이뤄지기 어렵다. 중국발 과잉공급의 장기적 불황을 고려하면 여천NCC를 살리기 위해서는 지배구조 수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지금까지 자금 지원은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게 업계의 공통적인 평가다. 지난 3월 2000억원의 유증을 진행할 때에도 여천NCC 이사회는 올해 유동성 문제가 없을 것으로 판단했다고 한다. 상반기 여천NCC의 영업적자는 1567억원으로 지난해 동기(606억원)보다 2배 이상으로 불어났다. 2022년부터 올해 6월까지 누적된 영업적자는 9325억원에 달했다.
석유화학업계 관계자는 "여천NCC의 경우 50%씩 지분을 나눠 들고 있는 합작사 지배구조에 공동 대표 체제 구조로 공장 가동률을 조정하는 것조차 의사결정을 하는 게 너무 어려운 형편이었다"며 "한화는 각자대표 체제 전환을 비롯한 의사결정의 효율화 방안을 찾았으나 쉽게 합의를 이루지 못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업계 다른 관계자는 "여천NCC에서 받아가는 납사 물량을 고려하면 한화가 운영에 따른 효익이 더 큰 것은 맞다"며 "지분 이전을 놓고 한화와 DL이 줄다리기를 지속했지만 양쪽이 원하는 지분 가격 눈높이가 맞지 않아 지배구조 변화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20일 정부의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에서 석유화학 구조개편 방안이 논의되며 향후 대안이 도출될 수 있을지에도 관심이 쏠린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금융위원회는 채권금융기관과 함께 재무상황과 자구노력 등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해 주기 바란다"고 밝혔다.
결국 한화와 DL이 구조조정을 진행할 수 있는 인센티브가 관건이 될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여천NCC의 금융차입이 많은데 금융권 여신을 활용해 구조조정에 나서지 않을 경우 불이익을 주는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다"며 "한화와 DL이 구조조정에 나서지 않을 수 없는 환경을 조성하는 게 핵심이다"고 언급했다. 여천NCC를 잘 아는 관계자는 "공동기업의 형태가 아닌 어느 한쪽으로 지분이 정리되는 게 여천NCC의 부활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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