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조은비 기자] 정유업계와 석유화학업계가 구조조정의 압박 속에서 '수직통합' 카드를 두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수직통합 논의가 구체화될수록 '감축 주체'와 '책임 소재'를 둘러싼 이해관계가 드러나면서 업계 갈등이 뚜렷해지는 분위기다. 업계 관계자들은 연말까지 자구책을 마련하는 과정이 곧 '누가 더 비용을 부담할지'를 둘러싼 눈치싸움이라고 입을 모은다.
정부는 최근 금융위원회가 주최한 석유화학 산업재편 간담회에서 "일본은 10년에 걸쳐 구조조정을 단행했지만 우리는 3~4년 안에 끝내야 한다"며 산업계의 자구 노력과 대주주 책임을 강조했다. 에틸렌 생산량 최대 25%(약 370만t) 감축을 유도하는 방안도 제시했지만, 복잡하게 얽힌 기업 간 이해관계 탓에 개별 기업의 노력만으로는 실질적 해법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복잡한 이해구조 한가운데에는 주요 정유사와 석유화학사가 자리한다. SK에너지(SK이노베이션), GS칼텍스, HD현대오일뱅크, S-OIL(에쓰오일) 등 국내 4대 정유사가 수직통합 논의의 핵심 주체로 꼽힌다. 이들은 원유 정제와 나프타 공급을 담당하면서 산업 밸류체인 상류를 이끌고 있다. 통합 논의의 반대편에서는 LG화학, 롯데케미칼, 한화솔루션, 금호석유화학, 대한유화, DL케미칼 등 주요 석유화학사들이 주로 정유사로부터 나프타를 공급받아 플라스틱·고부가가치 화학제품 생산에 나서고 있다.
실제로 HD현대오일뱅크-롯데케미칼(대산), SK이노베이션-대한유화(울산) 등 정유사와 석유화학사 간 설비·공급망 연계와 수직통합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이런 복합적 구도 속에서 각 기업의 이해관계와 셈법은 앞으로 수직통합 논의의 최대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정유업계는 "정부 정책과 지원책이 명확해져야 통합 논의가 가능하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지배구조와 대주주 국적, 계열사 구조가 다르다. S-OIL(에쓰오일)은 사우디 아람코가, GS칼텍스는 미국 쉐브론이 대주주로서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며 "해외 지분 구조 때문에 경영 전략, 구조조정 결정, 투자와 통합 등 의사결정 과정이 비교적 더 복잡하고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수직통합 시 일감 확보라는 이점이 있지만, 통합 이후 막대한 감가상각·자산가치 평가 등 비용 부담과 화학사 적자·구조조정 책임까지 함께 떠안는 등 추가 비용 부담 우려 탓에 정부 지원 없이는 선뜻 결정하기 어렵다"고 부연했다.
반면 석유화학업계는 구조적 위기에 몰려 통합이 '생존'의 해법일 수 있다는 입장이다. 다만 정유사와의 책임·가격 분담을 두고는 '누가 먼저 손해를 감수하느냐'를 놓고 좀처럼 결론을 내지 못하는 분위기다.
석유업계 관계자는 "정유사는 NCC 등 설비를 싸게 사고 싶어 하지만, 석화사도 수익 전망이 나아지기 전까지는 자산을 쉽게 내놓지 않으려 한다"며 "누군가 먼저 설비를 줄이면 남은 기업들이 반사이익을 볼 수 있어 모두가 소극적으로 눈치만 보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편 석화기업들은 연말까지 270~370만t 규모 나프타분해시설(NCC) 감축, 고부가·친환경 제품으로의 전환, 재무구조 개선 등을 추진하면서 사업재편계획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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