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딜사이트 이우찬 기자] 국내 석유화학업계 1위 LG화학을 비롯한 국내 기업들이 비핵심 사업 매각을 비롯한 자산 유동화에 나서는 데에는 더는 구조조정을 미룰 수 없다는 위기감이 녹아 있다. 2020년대 초반부터 지속된 중국발 공급과잉 탓에 2030년까지 불황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에는 중동 국가마저 석유화학 제품의 공급 확대를 추진하면서 산업계 전반은 울상을 짓고 있다. 개별 기업들이 사업재편을 모색하고 있으나 정부 차원에서 조속히 출구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LG화학은 비핵심으로 분류되는 담수사업 부문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매각가는 1조3000억원가량으로 알려졌다. 한 자릿 수 매출 비중을 차지하는 생명과학 부문의 에스테틱 사업 철수도 타진하고 있고 여수 나프타분해설비(NCC) 2공장 매각도 진행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발 과잉 공급에 불황이 겹쳐 체급을 줄이고 체력을 늘리는 쪽으로 사업재편을 추진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구조조정은 LG화학뿐이 아니다. 롯데케미칼은 지난해 10월 말레이시아 합성고무 생산법인을 청산하겠다고 밝혔다. 파키스탄 법인 지분 매각을 비롯해 해외법인 축소 전략을 실행하고 있다. 특히 자산 7조원을 웃도는 말레이시아 기초화학 생산법인 LC타이탄 매각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의 저가 공세에 대응하기 위해 범용 제품에 쓰이는 기초화학 비중을 2030년까지 30%까지 낮추는 게 골자다. 자본잠식에 빠졌던 효성화학의 경우 특수가스 사업부를 팔아치우며 한숨을 돌렸다.

문제는 이 같은 사업 리밸런싱 추진과 별개로 중장기 산업 전망이 밝지 않다는 데 있다. 근본적인 이유로 중국발 석유화학의 공급 과잉이 자리잡고 있다. 중국은 2020년대 초반부터 기초 소재 자국화 계획에 따라 석유화학단지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해왔다. 중국 최대 석유화학기업 시노펙을 필두로 에틸렌 생산능력 확대를 추진했다.
에틸렌은 플라스틱, 에탄올을 비롯한 소비재에 쓰이는 석유화학의 쌀로 불리는 기초원료이자 범용 제품이다. 중국 에틸렌 생산능력은 2019년 약 2700만톤(t)에서 2023년 5200만톤으로 증가한 것으로 추산된다. 중국의 경우 에틸렌을 비롯한 기초화학 제품 자급률은 100%에 근접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과거 최대 시장인 중국은 국내 기업의 안정적인 수요처로 기능했으나 자급률이 높아진 지금은 상황이 180도 달라진 셈이다. 국내 석유화학 제품의 중국 수출 비중도 2019년 44%에서 2023년 36%로 하락했다.
에틸렌에서 원료인 나프타(납사)의 가격을 뺀 에틸렌 스프레드도 공급이 넘치면서 하락을 면치 못하고 있다. 에틸렌 스프레드는 석유화학기업의 실적을 가늠하는 수익성 지표로 스프레드 축소는 실적 악화로 직결된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이달 에틸렌 스프레드는 톤당 197달러 수준이다. 업계에서는 톤당 300달러를 손익분기점을 위한 최소한의 숫자로 판단하고 있다.
특히 중국 이외에 중동의 오일머니마저 에틸렌 생산량 확대에 열을 올리는 점도 위기 요인이다. 9조원이 투입된 에쓰오일의 샤힌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에틸렌 연간 생산량 180만톤으로 단일 설비 기준 세계 최대 규모다. 에쓰오일의 뒷배로 최대주주 아람코가 있다. 아람코는 사우디아라비아의 국영 석유기업이다. 정유기업 에쓰오일이 대규모 석유화학 프로젝트에 나선 것은 궁극적으로 원유의 수요처를 확대하기 위해서다. 아랍에미리트, 쿠웨이트, 오만 등 중동에서 진행되는 석유화학 프로젝트는 글로벌 에틸렌 생산량 확대를 예고하고 있다.
기업 차원의 구조조정과 별개로 정부도 대응책 마련에 나서고 있지만 여의치 않다. 지난해 말 NCC 설비 합리화를 추진하고 고부가 제품 생산으로 전환을 촉진하는 등의 석유화학산업 경쟁력 제고 방안을 발표했다. 화학산업협회는 보스턴컨설팅그룹에 컨설팅을 의뢰한 결과를 산업부에 전달했고 이를 토대로 정부는 상반기 후속 대책 발표를 앞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화학산업협회 관계자는 "중국의 에틸렌 생산능력 확대와 더불어 자급률 등을 감안하면 2030년까지 업황이 좋지 않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며 "인위적인 인수합병(M&A)을 비롯한 산업 전반의 경쟁력 제고 방안이 검토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석유화학업계 한 관계자는 "NCC 설비를 보유한 기업과 그렇지 않은 기업간 이해관계가 다른 면이 있다"며 "업계 전반을 아우를 수 있는 대응책 마련이 쉽지 만은 않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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