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창 편집국장] '서로 싸워 한 마리는 물 위에 떠오르고 여린 살이 썩어 들어가 물도 따라 썩어 들어가 연못 속에서는 아무 것도 살 수 없게 되었죠'
이 섬뜩한(?) 문구는 얼마 전 세상을 떠난 김민기 전 학전 대표의 '작은 연못'이라는 곡 가사의 일부다. 지난 1997년에 발표된 이 곡은 가수 양희은 버전으로 훨씬 많이 대중에게 알려졌다. 언뜻 들으면 동요 같기도 한 멜로디에 '깊은 산 오솔길 옆 자그마한 연못엔', '먼 옛날 이 연못엔 예쁜 붕어 두 마리' 등 유치원생도 부름직한 아름다운 가사도 등장한다. 따라서 어떤 의미의 곡인지는 모르겠다. '아침 이슬', '지하철 1호선' 등으로 대표되는 가수이자 작곡자이자 뮤지컬 제작자인 그이기에 미뤄 짐작할 뿐이다.
최근 티몬과 위메프의 정산·환불 지연, 이른바 큐텐 사태로 시끄럽다. 큐텐 계열인 티몬과 위메프는 지난해 10월부터 정산 주기를 변경한 후 이달까지 판매자 대금을 정산하지 않았다. 높은 상품권 할인율과 선결제 후 상품권 배송 구조라는 점에서 2021년 환불 대란이 벌어진 머지포인트 사태와 유사하다. 티몬과 위메프는 그동안 적자 행진에 완전 자본잠식 상태인데도 해당 사업 구조를 유지했다.
결국 지난 29일 티몬과 위메프는 법원에 기업회생을 신청했다. 구영배 큐텐 대표가 사재를 털어서라도 피해를 최소화하고 신속한 대처로 사태 확산을 막겠다고 약속한 지 불과 몇시간 만이다. 법원이 이를 승인하면 재산 보전처분 결정에 따라 변제 의무가 사라지게 된다.
현재 정산대금을 받지 못한 판매업체는 최대 6만여개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미정산액 규모가 1조원에 이를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정부도 '관계부처 태스크포스(TF) 2차 회의'에서 판매자 미정산 금액을 약 2100억원으로 추산했지만 추후 피해 규모는 더 커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국내 이커머스 시장은 '작은 연못'에 불과하다. 따라서 경쟁 강도가 그 어느 시장보다 높다. 출혈 경쟁은 당연시된다. 공격적 마케팅의 이면에는 항상 어두운 면이 존재한다. 돌려막기 논란이 벌어지고 높은 수수료율 등 판매자의 희생도 요구된다.
새벽 배송이 대표적이다. 이커머스 시장에서 쿠팡이 가파른 성장가도를 달리면서 다른 유통업체들도 속속 새벽 배송이라는 전쟁터에 뛰어들고 있다. 고객의 환심을 사기 위해 무료 배송과 할인 쿠폰을 남발한다. 그러는 동안 물류센터와 배송 노동자들이 쓰러지고 판매 수수료율은 계속 우상향 곡선을 그린다. 최근에도 폭우 속 새벽 배송을 하던 40대 기사가 급류에 휩쓸려 사망하기도 했다. 이러다가 새벽 배송을 받지 말자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될지도 모른다. 또, 멀쩡한 기업이 쓰러지고 많은 피해자들이 발생하는 사태가 재발할 수 있다. 불신으로 가득 찬 소비자들이 이커머스 시장을 외면하는 날이 오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다.
물론, 이커머스 시장의 무한 경쟁에 당장 소비자들은 편하다. 하지만, 도태되는 기업이 속출하면 그 피해 역시 소비자가 감당한다. 따라서 기업도 감당할 수 있는 만큼 경쟁에 나서야 한다. 금융시장처럼 당국이 스트레스 테스트라도 해야 하나.
제16대 대통령 선거 하루 전인 2002년 12월 18일에 연극 '지하철 1호선'을 관람한 후 대학로 한 주점에서 김민기 대표를 잠깐 만났었다. 김 대표와 인연이 있는 선배 덕이었다. 그런데 그의 미소는 뇌리에 박혀 있는데 목소리는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다. 위대한 예술가 앞에서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몇 마디 건넸을 때 미소로만 답했던 그였다. 그러던 그가 오늘날 이커머스 시장에 한 마디 하는 듯하다.
'싸움터엔 죄인이 한 사람도 없네. 오늘이 그날일까 그날이 언제일까. 해가 지는 날 별이 지는 날. 지고 다시 오르지 않는 날이. 마음속에 그 님이 돌아오질 않네'('그날' 가사 중 일부. 김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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