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창 편집국장] 경기가 좋지 못하다.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 어렵다는 말도 들린다. 돌파구를 찾으려는 기업들은 비용절감에 나설 수밖에 없다. 당연히 인력 구조조정도 뒤따른다. 희망퇴직, 인력 재배치는 물론이고 임원 수 감축 사례도 부쩍 늘었다. 최소한의 필수 인력만 운용하겠다는 의지다.
홍보 부문도 예외는 아니다. 조직 축소로 다른 부서로 이동하거나 정년을 남겨두고 아예 기업을 떠난다. 고문이라는 애매한 직책을 받은 인사들도 적잖다. 운 좋게 다른 기업으로 이직하는 사례는 유감스럽게도 극히 드물다. 이는 오랜 역사를 가진 글로벌 기업이 홍보와 영업을 '임원 필수코스'로 삼고 엄청난 대우를 하는 모습과 반대다.
가뜩이나 워라벨을 추구하는 요즘 젊은 세대는 홍보 부서를 꺼린다고 한다. 업무도 과중하고 저녁 시간도 자유롭게 쓸 수 없다는 이유다. "별 재주가 없어서 홍보로 왔습니다"란 모 주니어 홍보맨의 말이 기업 내부의 인식을 보여준다. 그들이 몸담고 있는 기업에서 홀대 받는 홍보 부서장이나 임원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홍보야말로 기업의 중요한 전문영역 중 하나다. 안으로는 구성원들의 소통 창구인 동시에 밖으로는 기업의 얼굴이기도 하다. 기업의 전 영역을 알고 있어야 하고 정무적 판단을 내려야 하는 자리다. 따라서 많은 기업이 중요 의사 결정 과정에서 홍보 인사를 참여시킨다. 홍보가 때로는 CEO의 경영 철학과 기업 문화를 바꾸고 완성시키는 역할도 수행한다. 또 언론이 취재 방향을 기업이 원치 않는 방향으로 잡았을 때 충분히 설명하고 설득해야 한다.
이러한 홍보가 의사 결정에서 배제되면 제한된 정보 하에서 상상력까지 동원해야 한다. 거짓말로 버무린 홍보는 눈앞에 위기를 넘길 수 있을지 몰라도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온전히 수행할 수 없다.
대기업 홍보와 홍보 대행사 대표를 두루 지낸 선배가 지난 2018년에 '호모구라쿠스 : 수다쟁이 인류(장영수 박경은 저, 주독야독)'라는 제목의 책을 펴냈다. 부제가 '홍보가 바꿀 수 있는 아주 사소한 것들에 관한 이야기'로 정했지만 사실 내용에는 홍보가 아주 중요한 것들을 바꾼다는 이야기로 가득하다.
그런데 하필 왜 거짓말의 속된 표현인 '구라'를 제목으로 썼을까. 현 인류의 조상인 호모사피엔스는 무리를 설득해 협업과 분업으로 사냥에 나서면서 네안데르탈인, 호모에렉투스보다 우위를 점했다. 리더는 무리를 원활하게 통솔하기 위해 때로는 이쪽으로 가면 사냥감이 많이 있다고 거짓말을 한다. 우연히 사냥감이 정말로 많으면 리더는 힘을 갖게 되고 무리의 규모를 키울 수 있게 된다. 한마디로 '구라'가 '꿈'이 되고 '꿈'이 '현실'과 '힘'이 되는 과정이다.
저자는 그렇다고 홍보를 단순히 '구라'로 격하시키지 않는다. 오히려 홍보는 선제적 진실을 통해 기업의 내외부를 설득하고 변화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고 역설한다. 실제로 언론사 기자도 어느 정도 취재 내용을 확보했을 때 솔직하게 그 이상의 정보를 주며 설득하는 홍보를 매몰차게 거절하기 어렵다.
연말 인사철이 다가왔다. 오랜 시간 기업을 위해 자신의 건강도 돌보지 않고 때로는 내부 구성원에게, 때로는 외부 언론에게 설득에 애쓰던 홍보맨들이 정년도 채우지 못하고 자리를 비우는 모습을 본다. 그들의 상처가 어느 정도 아물 무렵 연락해볼 참이다.
호모구라쿠스 저자인 선배는 영광스럽게도 필자에게 책의 편집을 맡겼었다. 6년도 지난 시점에 책 홍보를 한 번 해봤다. 필자에게 인세가 떨어지지는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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