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차화영 기자] 금융당국이 은행권 운영리스크와 시장리스크 규제를 완화하면서 보통주자본(CET1)비율 상승 여건이 마련됐다. 다만 같은 규제완화에도 금융지주별로 수혜의 규모와 시점이 엇갈릴 전망이다. 운영리스크는 과거 금융사고 반영 여부에 따라, 시장리스크는 해외사업 구조에 따라 체감 효과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운영리스크 완화는 과거 해외금리연계 파생결합펀드(DLF)와 라임펀드 손실을 크게 반영한 하나금융지주와 우리금융지주가, 시장리스크 완화는 해외 익스포저가 큰 하나금융지주와 신한금융지주가 상대적으로 큰 수혜를 누릴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KB금융지주는 홍콩 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과징금 이슈로 운영리스크 완화 효과가 지연 반영될 가능성이 크다.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당국은 최근 제5차 생산적 금융 대전환 회의를 열고 은행권 자본규제 합리화 방안을 추가로 발표했다. 운영리스크 손실 인식 기준 완화와 구조적 외환포지션 인정 범위 확대가 핵심으로 위험가중자산(RWA) 산출 기준을 조정해 CET1비율 관리 여력을 넓히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CET1비율은 보통주자본을 RWA로 나눈 값으로 위기 상황에서 손실을 흡수할 수 있는 안전 자본의 비중을 보여준다. RWA는 신용위험가중자산, 운영위험가중자산(운영리스크), 시장위험가중자산(시장리스크) 등의 합으로 구성되는데 특정 위험가중자산이 감소하면 추가 자본 확충 없이도 CET1비율이 상승하는 구조다.
이번 조치로 3년 이상 운영리스크로 인식한 대규모 손실 사건은 일정 요건을 충족하면 산출에서 제외할 수 있게 된다. 이에 따라 DLF·라임펀드 사태 관련 손실을 반영했던 하나은행과 우리은행, 신한은행 등은 단기적으로 RWA 감소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DLF 판매 규모가 컸던 하나은행과 우리은행은 2019년 말에서 2020년 사이 운영리스크가 각각 약 5조원, 3조원 가까이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라임펀드 불완전판매로 부과된 과태료는 우리은행 72억원, 신한은행 57억원 등으로 이미 3년 이상 운영리스크에 반영된 상태다. 이들 은행은 규제 완화 적용 시점부터 비교적 빠르게 CET1비율 개선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반면 ELS 과징금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과징금이 확정된 이후에도 3년이 경과해야 배제 신청이 가능한 만큼 ELS 사태 여파가 가장 컸던 KB국민은행의 실질적 수혜는 중장기에 걸쳐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6년 동안 4대 시중은행의 운영리스크 증가 폭은 KB국민은행이 약 16조원으로 가장 컸고, 신한은행 10조원, 우리은행 9조원, 하나은행 4조원 등 순이었다. 특히 KB국민은행은 하나은행 대비 약 4배 수준의 증가폭을 기록해 향후 규제 완화 적용 시 효과 체감 시점이 더 늦어질 수 있다는 평가다. 지난해 말 기준 전체 RWA에서 운영위험가중자산이 차지하는 비중도 KB국민은행이 10.85%로 주요 시중은행 가운데 가장 높고 우리은행 10.08%, 하나은행 9.48%, 신한은행 8.76% 순이다.
시장리스크 완화 효과는 다른 방향으로 갈린다. 금융당국은 기존 해외점포 출자금에 더해 해외 장기 지분투자와 해외점포 이익잉여금까지 구조적 외환포지션으로 인정해 시장리스크 산출 대상에서 제외할 수 있도록 했다. 환율이 오르면 원화 기준 외화자산 가치가 커져 RWA도 증가하는데 구조적 외환포지션으로 인정받으면 이 부분을 시장리스크 산출에서 제외해 자본 부담을 줄일 수 있다.
증권가에서는 하나금융지주와 신한금융지주가 상대적으로 수혜를 누릴 것으로 보고 있다. 최정욱 하나증권 연구원은 "금융당국 방안은 2분기 금융지주 CET1비율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며 "구조적 외환포지션의 경우 해외장기지분투자 규모가 큰 하나금융지주와 해외점포 이익잉여금이 큰 신한금융지주가 타사 대비 비율 상승 폭이 더 클 전망"이라고 분석했다.
금융당국은 해외 진출 목적의 장기 지분투자로 단기 매매가 아닌 경우를 구조적 외환포지션으로 인정하기로 했다. 하나은행은 지난해 말 기준 베트남투자개발은행(BIDV) 지분(장부가 약 1조2730억원)과 중국 길림은행(약 6025억원) 등 비연결 해외 지분투자를 약 1조9000억원 규모로 보유하고 있어 이 요건에 부합한다는 분석이다.
해외점포 이익잉여금 측면에서는 신한금융지주가 유리한 위치에 있다. 금융당국은 배당·회수가 제한되어 현지 사업에 재투자되는 이익잉여금을 구조적 외환포지션으로 인정하기로 했다. 신한은행의 해외법인 합산 순이익은 지난해 5869억원으로 1000억원 안팎인 나머지 시중은행을 크게 앞선다. 이에 따라 현지 재투자되는 이익잉여금 규모 역시 타행 대비 커 시장위험가중자산 감소 효과가 두드러질 가능성이 높다.
신한은행의 시장위험가중자산이 지난해 말 기준 11조9416억원으로 KB국민은행(6조1478억원), 하나은행(5조5833억원), 우리은행(2조2713억원)을 크게 웃도는 점도 이런 전망을 뒷받침한다. 시장리스크 익스포저가 큰 만큼 규제 완화에 따른 개선 폭도 상대적으로 클 수 있다는 의미다.
금융권에서는 이번 자본규제 완화가 주주환원 정책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고 있다. 환율 상승 등으로 CET1비율 하락 압력이 커진 상황에서 규제 완화가 완충 역할을 하며 배당 확대와 자사주 매입 여력 유지에 기여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다만 이번 조치의 취지가 생산적 금융 관련 자금공급 확대에 있는 만큼 확보된 자본여력이 주주환원 재원으로만 활용될 가능성은 낮다는 시각도 제기된다.
전배승 LS증권 연구원은 "자본규제 개선의 취지가 생산적금융 관련 자금공급 확대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증대된 자본여력이 주주환원 재원으로만 활용될 가능성은 낮다"며 "그럼에도 자본비율 상승효과가 예상된다는 측면은 충분히 긍정적으로 해석 가능하다"는 의견을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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