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신지하 차장] 최근 삼성·SK·현대차·LG 등 4대 그룹을 비롯해 포스코, 한화, HD현대까지 국내 주요 대기업들이 앞다퉈 신규 채용 계획을 내놨다. 올해만 4만명 규모다. 지난 16일 이재명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청년 고용난이라는 고비를 넘는 데 기업이 정부와 함께 힘을 합쳐주길 바란다"고 주문한 지 불과 이틀 만에 나온 발표였다. 청년 일자리 부족이 사회적 위기로 번지는 현실에서 반가운 소식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룹별 채용 규모를 보면 삼성이 연간 1만2000명으로 가장 많다. 향후 5년간 총 6만명을 뽑겠다는 구상이다. 반도체를 비롯해 바이오, 인공지능(AI) 같은 미래 사업이 주요 채용 분야다. SK는 올해 8000명, 현대차는 7200명, 한화는 5600명을 새로 선발한다. LG는 3년간 경력 채용을 포함해 1만명을, 포스코는 5년간 1만5000명을 고용한다. HD현대도 올해 1500명을 시작으로 5년간 1만명을 채용할 예정이다.
지난달 기준 청년 고용률이 16개월째 내리막을 타고, 구직 활동조차 하지 않는 '쉬었음' 인구가 32만8000명으로 8월 기준 역대 최대치를 기록한 점을 고려하면 이번 발표는 취업 준비생에게 단비 같은 소식이다. 하지만 대기업들이 평소라면 공개하지 않던 연간 목표치, 더 나아가 5년 단위 계획까지 일제히 내놓은 건 흔치 않은 일이다. 정기 공채가 사실상 사라지고 수시 채용이 보편화된 상황에서 장기 수치를 서둘러 제시한 건 대통령 발언 직후 정치적 요구에 맞춘 행보로 보인다. 현재 주요 대기업 가운데 상·하반기 정기 공채를 유지하는 곳은 삼성뿐이다.
대기업들은 정부 요청에 맞춰 대규모 청년 채용 계획을 내놨지만 정작 속내는 복잡하다. 미국의 관세 충격에다 상법 개정, 노란봉투법, 자사주 소각 의무화 논의까지 기업을 압박하는 대내외 변수들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년 경영 계획조차 불투명한 상황에서 5년치 채용 청사진을 서둘러 제시한 건 그만큼 정치적 압박이 크게 작용했다는 게 재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지난 7월과 8월 연이어 국회를 통과한 1·2차 상법 개정안은 소액주주 권한 강화라는 명분에도 기업 입장에서는 경영권 방어력을 약화시키는 조항이 적지 않다. 최대주주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이른바 3%룰, 이사 선임 시 집중투표제 의무화, 감사위원 분리 선임 확대 등이 대표적이다. 여기에 자사주 소각 의무를 담은 3차 상법 개정안까지 연내 처리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기업들의 고민은 한층 깊어지고 있다.
기업들이 고용이라는 카드를 꺼낸 만큼 이제 정치권도 응답할 차례다. 이 같은 채용 계획이 현실화하고 지속하려면 규제 완화 등 기업 활동을 뒷받침할 환경 조성이 우선되어야 한다. 상법 개정안 처리와 각종 규제 입법으로 경영권 방어는 약해지고 불확실성은 커지는 상황에서 세제 지원이나 고용 인센티브 없이 채용 확대만 요구하는 건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채용 확대는 기업 혼자 감당할 몫이 아니다. 대기업들이 내놓은 채용 계획이 공염불에 그치지 않고 청년들에게 지속적인 기회로 이어지려면 정치권도 환경 조성에 나서야 한다. 지금은 기업을 압박할 때가 아니라 함께 해법을 모색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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