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이소영 기자] 최근 채권 시장의 뜨거운 감자는 롯데케미칼의 기한이익상실(EOD) 위기다. 롯데케미칼이 발행한 회사채 14개에서 기한이익상실 사유가 발생했다. 발행 당시 회사채 재무 약정에 'EBTDA(상각 전 영업이익)/이자비용'을 5배 이상으로 유지해야 한다는 조건을 넣었는데, 이를 지키지 못하면서 롯데케미칼의 유동성 우려는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일단 롯데케미칼은 왜 이 같은 조건을 넣었을까. 일반적으로 회사채를 발행할 때 내거는 조건이 아니다. 따라서 해당 채권에 대한 사채권자들 대부분이 일본계 기관이여서 붙여진 조항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일본에서는 회사채를 발행할 때 'EBITDA/이자비용' 관련 재무 약정을 넣는다는 설명이다.
일단 배경이 어찌 됐든 해당 조건을 넣었으면 지켜야 한다. 그러나 그러지 못해서 문제가 됐다. 롯데케미칼은 과거 매년 1조원을 웃도는 영업이익을 거뒀지만 최근 중국발 공급과잉으로 인해 수년째 적자를 탈피하지 못했다.
이에 칼자루는 사채권자들이 쥐게 됐다. 기한이익상실을 선언하고 채권의 조기 상환을 요구할 수 있다. 기한이익상실이 선언되면 롯데케미칼 입장에서는 큰 부담이 된다. 사채권자들에게 바로 상환할 자금은 있다지만 이미지 추락에 대한 대가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신용도 하락은 물론이거니와 추가적인 자금 조달에도 난항을 겪게 된다.
하지만 시장은 우려하지 않아도 된다는 쪽으로 의견이 기운다. 롯데케미칼이 혹시 모를 불상사(채권자들의 기한이익상실 선언)를 막기 위해 강력한 당근책을 들고 왔기 때문이다. 바로 '은행권 보증 카드'다.
롯데케미칼은 내달 사채권자 소집회의를 열고 문제가 됐던 해당 채권에 롯데월드타워를 담보로 은행권의 보증을 받을 테니, 재무 약정 조항을 삭제하자고 동의를 구할 계획이다. 여기에 사채권자의 보유 사채 액면금액의 10bp(1bp=0.01% 포인트)만큼 추가 이자도 제공할 예정이다.
은행 신용공여를 받은 채권은 사실상 '무적 카드'가 된 셈이나 다름없다. 은행의 신용도를 고스란히 받기 때문에 유통 시장에서도 제 값에 원활히 거래될 가능성이 크다. 또 채권 조기 상환을 원하는 사채권자들도 기한이익상실을 선언하기 보다는 유통시장에서 해당 채권을 매도하는 것이 더 유리할 전망이다.
사실 사채권자들 역시 기한이익상실 선언을 원치 않는 것으로 파악됐다. 최대한 원금을 잃지 않는 선에서 원만하게 해결되기를 바라고 있다는 전언이다. 채권업계 한 관계자는 "롯데케미칼 채권을 산 한 기관의 실무진(사채권자)은 당시 롯데케미칼이 수익성도 나쁘고, 신용등급 하락 우려가 있음에도 투자에 나섰다고 기관으로 하여금 책임 추궁을 당하고 있다"며 "하루 빨리 문제가 원만하게 해결되기를 바라고 있다"고 전했다.
다만 롯데케미칼의 은행 신용공여 카드가, '최강 무적카드'냐고 묻는다면 또 100%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다. 발행 회차 마다 발행 규모나 사채권자가 달라서 일부 반대하는 의견도 있을 수 있다.
사실 가장 중요한 건 이번 사건 발생으로 인한 시장의 평가다. 기한이익상실 문제가 해결되더라도 롯데케미칼은 계속해서 자본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해야하기 때문이다. 실제 내년 만기 도래 회사채만 9250억원 규모에 달한다. 이번 문제 발생에 대한 시장의 평가는 롯데케미칼의 향후 자금 조달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현재 롯데그룹을 향한 시장 환경은 매우 건조한 상태다. 작은 불씨에도 큰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 만큼 긴장을 늦춰서는 안된다. 롯데케미칼이 수익성 개선 과제를 하루빨리 해결해 롯데그룹의 캐시카우라는 과거의 명성을 되찾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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