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이 유동성 위기설을 잠재우기 위해 전력투구하고 있다. 그룹의 핵심 부동산 자산이자 랜드마크인 롯데월드타워를 담보로 제공하는 한편 자산재평가·자산유동화·사업구조조정·비핵심 계열사 매각 등 다양한 자구책을 총동원하고 있다. 하지만 롯데그룹의 이 같은 노력에도 시장의 분위기는 냉랭하다. 그룹의 캐시카우 역할을 해온 유통사업과 석유화학사업의 부진 탓이다. 특히 롯데케미칼은 롯데그룹 유동성 위기설의 진앙으로 꼽힌다. 이에 딜사이트는 롯데그룹 계열사의 유동성을 비롯한 재무 현황을 짚어본다. [편집자주]
[딜사이트 이승주 기자] 롯데그룹이 유동성 위기설에 직면했다. 2015년 호텔롯데의 IPO(기업공개) 추진부터 이어진 악재로 현재 그룹 내 경영에 대한 불확실성은 최고조에 달했다. 롯데지주를 포함한 주요 계열사들의 신용등급은 일제히 하향됐고 그룹의 양대 축인 유통과 석유화학 부문의 부진은 반전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시장에서도 당장보다는 롯데그룹의 미래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롯데그룹은 지난달 28일 기관투자자 대상 기업설명회(IR)을 개최하고 유동성 위기 극복을 위한 자구책을 공개했다. 해당 설명회는 롯데지주 주최로 롯데케미칼과 롯데건설, 호텔롯데, 롯데쇼핑 등 주요 계열사들이 모두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롯데그룹은 ▲자산재평가 ▲저수익 자산 매각 ▲우량 자산유동화 ▲사업 구조조정 ▲비핵심 계열사 매각 ▲저실적 점포 철수 등 유동성 확보 대책과 함께 롯데케미칼 회사채 이슈 해결을 위해 '롯데월드타워'를 은행권에 담보로 제공하기로 했다.
이러한 롯데그룹의 행보는 유동성에 대한 시장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함이다. 실제 국내 신용평가 3사(한국기업평가·한국신용평가·NICE신용평가)는 올해 6월 롯데케미칼과 롯데지주, 롯데건설의 등급전망에 '부정적'을 부여했다. 부정적 등급전망은 향후 6개월 내에 신용등급의 강등이 이뤄질 수 있다는 의미다. 특히 롯데지주의 경우 현재 신용등급 AA-에서 A+ 비우량등급으로 강등될 위기에 처했다.
나아가 롯데그룹이 향후 3년 동안 갚아야 할 시장성 차입금(회사채·CP·전자단기사채)은 20조원이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롯데케미칼(9250억원), 호텔롯데(6500억원), 롯데지주(6250억원), 롯데건설(4550억원) 등 계열사들의 내년 만기 채권액은 5조원에 달하고 있다. 롯데그룹은 올해 10월 말 기준 ▲총자산 139조원 ▲보유 주식 가치 37조5000억원 ▲부동산 가치 56조원 ▲활용 가능한 예금 15조4000억원 등으로 안정적인 유동성을 확보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유통과 석유화학의 실적 부진이 이어지고 있는 탓에 단기간 내 분위기 반전은 어렵다는 업계의 중론이다.
노우호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롯데케미칼이 처한 부진한 영업환경으로 차분기 영업적자 지속과 함께 내년에도 업황 및 이익 흐름에 비관적 의견이 지배적"이라며 "롯데케미칼의 신용도 등 리스크 관리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사실 롯데그룹 유동성 위기의 촉발은 2015년 호텔롯데의 IPO 추진부터라는 시장 분석이 나오고 있다. 당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일본과 한국 롯데의 연결고리를 끊고 순환출자 방식의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호텔롯데의 IPO를 추진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광윤사→일본롯데홀딩스→호텔롯데→한국롯데로 이어지는 롯데그룹의 지배구조에서 호텔롯데의 일본계 지분을 희석해 한국롯데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겠다는 의도다. 특히 이는 신 회장에게 '왕자의 난'으로 일컫는 신동주 SDJ코퍼레이션 회장과의 경영권 분쟁을 단번에 정리할 수 있는 회심의 카드이기도 했다.
당시 양형모 이베스트증권 연구원은 "신동빈 회장은 롯데그룹에 대한 경영권을 확보했으나 지배력은 약한 상황"이라며 "호텔롯데의 상장과 함께 롯데그룹의 변화는 가속화될 전망"이라고 진단하기도 했다.
하지만 호텔롯데의 IPO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호텔롯데는 2016년 1월 상장예비심사를 통과했지만 같은 해 6월 검찰이 경영진 비리 혐의로 롯데그룹을 압수수색하면서 IPO를 무기한 연기했다. 이후에도 사드 보복이 호텔롯데의 IPO를 막는 요인이 됐고 2019년 10월 신 회장이 사법리스크를 떨쳐낸 직후에는 코로나19 팬데믹이 발발했다. 이에 호텔롯데의 2020년 매출은 3조8445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8%나 줄었고 같은 기간 4976억원의 영업손실을 내며 IPO 추진 작업은 무기한 보류됐다.
이에 롯데그룹은 당시 '캐시카우' 역할을 해내고 있던 롯데케미칼로 눈을 돌렸다. 2017년 롯데지주의 출범 이후 지배구조개선 작업을 이어가기 위해 안정적인 자금 수혈이 반드시 필요했기 때문이다. 롯데지주는 롯데케미칼 지분 25.31%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롯데지주는 롯데케미칼은 덩치를 키우기 위해 과감한 배팅에 나섰다. 동박 제조업체 일진머리티얼즈 인수(現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에 2조7000억원을 쏟아붓고 탄소포집과 화학적 재활용 등 친환경 사업 등에도 막대한 투자금을 집행했다. 이 과정에서 롯데지주와 계열사들도 1조2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중국 석유화학기업들의 '치킨게임'에 정면으로 맞선 것은 패착이 되어 돌아왔다. 롯데케미칼이 중국의 저가 물량 공세로 인한 기초소재제품 가격경쟁력 약화에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롯데케미칼은 2022년 영업손실 7626억원을 시작으로 지난해에도 3477억원의 손실을 입었고 올해 7319억원(예상치)의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올해 3분기 말에는 롯데케미칼의 이자비용 대비 EBITDA가 4.3배(기존 조건 5배)에 불과해 14개 회사채에 대한 EOD 선언 사유가 발생하기도 했다.
비슷한 시기에 또 다른 계열사인 롯데건설도 시장의 관심을 받았다. 2022년 레고랜드발 '부동산PF 중단 사태'로 롯데건설의 우발채무 규모가 6조원까지 확대된 것이다. 그 동안 모기업인 롯데케미칼의 지급보증을 통해 현금을 수혈받던 롯데건설은 급속도로 자금줄이 말랐다. 이에 롯데지주와 계열사들은 롯데건설에 1조1000억원에 달하는 자금수혈과 2조3000억원 규모의 '프로젝트샬롯' 펀드 조성을 도우며 출혈이 불가피했다.
현재 업계에서는 롯데그룹의 당장의 위기보다 미래에 대한 우려를 더 크게 보고 있다. 롯데그룹의 유동성을 감안하면 롯데케미칼의 EOD, 롯데건설의 PF 우발채무 이슈는 넘어갈 수 있겠지만 확실한 현금흐름 개선책이 보이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 중국으로부터 시작된 글로벌 공급과잉과 미국의 보편·징벌적 관세 등으로 경영환경에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에서 롯데그룹 경영 개선에 대한 기대감도 줄어들고 있다.
국내 한 증권사 센터장은 "결국 본업을 통한 캐시플로우(현금유용성)가 나와야 현금이 마련될 것"이라며 "사실 롯데그룹이 밀고 있는 화학부문이 가장 힘들다. 그룹 입장에서는 글로벌 공급과잉이라는 큰 이슈에 구조조정, 자산매각 등 미리 다운사이징을 해야만 위기의 파고를 넘을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새로운 눈으로 시장을 바라봅니다. 딜사이트 무단전재 배포금지
Hom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