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박민규 기자] HD현대그룹의 이번 인사에선 정기선 HD현대 부회장이 수석부회장으로 승진한 점 외에도 무려 3개 계열사의 최고경영자(CEO)가 바뀐 데 주목할 만하다. HD현대일렉트릭과 HD현대오일뱅크, HD현대삼호에서 부사장이 CEO로 중용되면서 사장직에 오른다. 3인의 신임 CEO 모두 HD현대그룹에서만 수십여 년간 일해 온 '순혈'이다. 이밖에 CEO를 2명 선임하는 추세도 목도됐다.
전력 산업 호황으로 그룹 내에서 최고의 주가를 올리는 중인 HD현대일렉트릭은 김영기 전력사업본부장을 새로운 대표이사로 추대하며 첫 '2인 대표' 체제를 맞이하게 됐다. 올해로 58세인 김 사장은 경희대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텍사스대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한 후 HD현대일렉트릭 전력기기연구소에 입사했다. 이를 시작으로 재품 개발과 생산, 영업 등을 두루 거치며 회사 내 최고의 전력 분야 전문가로 자리매김했다는 게 HD현대 측 설명이다. 김 대표는 조석 부회장의 대표이사 임기(2026년 3월)까지 조 부회장과 호흡을 맞출 예정이며, 공동 대표 체제일지 각자 대표 체제일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HD현대일렉트릭의 경우 조석 대표가 사장 4년차에 부회장으로 승진하며 처음으로 부회장을 배출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조 부회장은 행정고시에 통과해 지식경제부 차관과 한국수력원자력 사장 등을 역임한 공직자 출신의 외부 인사로, HD현대그룹엔 2020년 합류했다. 그룹 최초의 외부 인사 출신 대표이사다. 조 부회장은 대표이사로 선임된 첫 해인 2020년 2년간 적자에 신음해 온 HD현대일렉트릭을 흑자로 돌려 놓은 등 성과를 인정받아 지난 3월 3연임에 성공하기도 했다.
조 부회장은 일흔을 앞에 둔 노장이지만, 전 에너지 분야와 산업 정책에 밝은 만큼 부회장 승진을 계기로 HD현대일렉트릭외에도 태양광(HD현대에너지솔루션) 등 그룹 에너지 사업 전반에 방향성을 제시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HD현대오일뱅크는 그룹의 '재무통' 송명준 부사장과 함께 '생산통' 정임주 안전생산본부장(부사장)을 CEO에 올려 공동 대표 체제를 꾸린다. 두 신임 CEO 모두 연세대 출신인 데다, 55세로 동갑내기다.
특히 지주사(HD현대) 최고재무책임자(CFO)인 송 부사장의 부임은 그룹 차원의 위기감이 반영된 인사로 분석되고 있다. HD현대오일뱅크 경우 올해부터 3개 분기 연속 외형 축소를 지속했으며, 올 3분기에는 정유와 석유화학의 겹불황에 적자 전환했다. 이익 체력이 저하한 가운데 부채비율은 9월 말 기준 230.7%로 지난해 말(205.4%) 대비 25%포인트 이상 치솟으며 재무 안정성에도 경고등이 켜진 상황이다. 상환 능력을 의미하는 유동비율도 지난해 말 111.9%에서 올해 9월 말 94.6%로 하락했다. 1년 내 만기가 돌아오는 차입금을 자체적으로 100% 갚을 수 있을 정도의 유동성은 없다는 이야기다. 이에 HD현대에서 최고의 재무 전문가를 소방수로 급파한 것이란 게 주된 시각이다.
송 부사장은 HD현대 뿐만 아니라 핵심 자회사이자 중간 지주사인 HD한국조선해양의 경영 지원실장 등도 겸직하며 멀티 플레이어로 활약해 왔지만, 내년부턴 HD현대오일뱅크의 재무 지표 개선과 경영 효율화에 올인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조영철 HD현대인프라코어 및 HD사이트솔루션 대표만 해도 2021년 CEO로 선임되며 HD한국조선해양 CFO직을 내려 놓은 전례가 있어서다. HD현대 관계자는 "(송 부사장은) 원가 절감 등 다양한 경영 효율화 노력을 펼칠 것"이라고 전했다.
공동 대표인 정 부사장은 공장장도 거친 생산 전문가다. HD현대오일뱅크 대산 공장에서 생산 공정 및 기술 엔지니어로 근무했으며, 현재 HD현대오일뱅크 안전 생산 본부장을 맡고 있다. 이에 따라 정 부사장 선임은 주로 엔지니어 출신 CEO를 기용해 온 HD현대오일뱅크의 전통적 경영 철학에 부합하는 인사라는 평이 나온다. HD현대 관계자 역시 "재무 뿐만 아니라 생산성 등 본연의 경쟁력 강화에도 힘쓴다는 구상"이라 언급했다.
HD현대삼호는 '조선 외길'을 걸어 온 김재을 HD현대중공업 조선 사업 대표를 새 사령탑으로 맞는다. 59세인 김 대표는 한국해양대 항해학과를 졸업해 현대중공업에서 기술 본부장과 생산 본부장을 역임했다. 생산과 설계를 두루 경험한 조선 전문가라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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