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박민규 기자] 국내 정유 및 화학 업계의 '맏형' SK이노베이션이 인공지능(AI)과 디지털 전환(DX)이란 이종 산업으로의 진출을 예고했다. 60년이 넘은 업력과 그동안 축적해 온 빅 데이터를 활용해 정유∙화학 분야에 특화된 공정 지능화 시스템을 사업화, 고도화해 나갈 방침이다. 이 과정에서 지역 사회와의 상생도 타진한다. 울산 업체 대상의 오픈 이노베이션 활성화로 '전통 제조업의 메카' 울산에 AI와 DX 등 신산업 생태계를 조성한단 구상이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 24일 울산 콤플렉스(이하 울산 CLX)에서 열 교환기 AI 비파괴 검사(IRIS)를 시연했다. 이 회사가 울산 지역 AI 스타트업인 딥아이와 함께 세계 최초로 개발한 IRIS 자동 평가 설루션은 초음파가 물을 매개로 설비 내부를 투과한 패턴을 시각화해 결함을 찾아내는 식이다. 클릭 몇 번으로 수초 안에 시각화가 이뤄진다.
실제 엔지니어가 검사를 실시한 지 수십 초만에 컴퓨터 모니터엔 열 교환기 튜브 내부의 모습이 점점이 픽셀로 구현됐다. 정보가 수집된 영역은 파란색, 그렇지 않은 부분은 검은색으로 나타난다. 이를 검사자가 분석해 설비의 부식∙마모∙균열 수준, 나아가 남은 수명까지 판단할 수 있다.
사람이 정기적으로 건강 검진을 받는 것처럼 설비도 사고 예방과 생산성 유지를 위해 검사를 받아야 한다. 정유 공장의 경우 365일 24시간 가동하는 만큼 주기적인 검사가 필수적이다. 특히 열 교환기는 최근 3년간 고려아연∙여천NCC∙에쓰오일 공장에서 발생한 폭발 사고의 주 원인으로 밝혀진 만큼, 특별 관리가 필요한 부품이다. 제품 생산 시 온도 조절에 쓰이는 열 교환기는 울산 CLX에만 7000여기, 울산 석유화학 산업 단지 전체엔 3만기가 있다. 정유와 화학 뿐만 아니라 반도체∙발전∙배터리∙원전∙자동차 철강 등 열원이 필요한 공정이라면 어디든 사용된다.
열 교환기의 경우 지름이 작게는 1mm 안팎 수준인 수천 개의 튜브로 이뤄졌으며, 원래는 사람이 구멍마다 일일히 초음파 검사를 시행, 결과를 분석해야 했다. 하지만 AI 기반의 IRIS를 도입한 후 정확도는 물론 효율성도 크게 높아졌다는 설명이다.
김기수 딥아이 대표는 "랩 스케일 검사로 비교 평가한 결과 IRIS의 정확성에 대한 신뢰도는 95% 이상이며 기존 대비 검사에 소요되는 시간은 90%, 비용도 50% 이상 감소했다"며 "지금은 (IRIS를) 열 교환기에만 사용하고 있지만, 향후 배관과 기타 부품 검사 등에도 활용 가능할 것"이라고 전했다.
단, 아직까진 일부 시각화에 실패하는 경우가 있어 검사자의 직관에 의존해야 할 때도 있다. 최종 정확도는 검사자의 전문성과 숙련도 등 기량에 따른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아울러 정확도의 표준화가 힘들고 검사 비용이 비싼 등도 해결해야 할 숙제로 남아있다. 그러나 AI 학습을 통해 설루션이 보다 정교해지면 인적 오류 등 변수는 줄어들 전망이다.
SK이노베이션은 IRIS의 현장 실증을 완료하면 울산 CLX에 전면 적용하고, 추후 울산 단지 전체로 확대해 수익화에도 나설 계획이다. 회사가 이처럼 AI∙DX 기술에 사활을 걸게 된 것은 생산 현장의 씁쓸한 현실과도 맞닿아 있다. 제조 대기업이 밀집한 울산 역시 정도만 덜할 뿐 청년 인력의 유입이 끊기고 지방 기피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날 김기수 대표만 해도 "(AI 등의 활용 없이는) 5년 내 비파괴 검사 생태계가 붕괴될 것"이라고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울산이 핵심 생산 기지인 SK이노베이션 또한 이런 위기감에 적극 공감했기에 행동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정창훈 SK에너지 스마트플랜트추진 팀장은 "당사의 AI 및 DX 설루션 사업은 대기업이 그림을 그리고 중소 정보 기술(IT) 기업이 색을 입히는 사례"라며 "사업화의 궁극적 목적은 선순환하는 생태계를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IT는 서울 등 수도권에 집중됐는데, 울산에서도 충분히 IT 산업으로 먹거리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부연했다.
김강석 SK에너지 스마트플랜트 추진팀 PM은 "딥아이와 함께 IRIS를 더욱 고도화해 국내 정유∙화학 산업 뿐 아니라 동일 기술이 적용되는 보일러∙배관∙차∙탱크∙항공기 부품까지 시장을 확대할 계획"이라며 "해외 시장 진출도 구상 중"이라고 언급했다. SK이노베이션은 딥아이 외에도 울산 지역 IT 기업들과 협업을 모색할 방침이다.
이에 김기수 대표는 "일단 (혁신 제품을) 가져와 보면 투자할지 말지 결정하겠다며 스타트업의 생존이 달린 문제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무책임한 대기업들과 달리, SK이노베이션은 동등한 파트너십을 통해 진정으로 성장을 지원해 준다"며 화답했다.
그러면서 김기수 대표는 IRIS를 비롯한 AI 설루션의 성장성을 거듭 역설했다. 그는 "(비파괴 검사 설루션 경우) 기존에는 전적으로 외산에 의존해 왔지만, IRIS는 국내 개발 설루션이라 차후 본격 상용화 시 높은 영업이익률이 기대된다"며 "AI 비파괴 검사는 연간 8.7% 성장세가 예상되며, 순수 용역 시장만 15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고 말했다. 딥아이는 차후 IRIS의 이익이 창출되는 시점 SK이노베이션이 보유한 지식재산권(IP)과 라이선스에 대해 이익을 향유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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