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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조5000억 베팅한 현대제철…돌아온 건 '수출 쿼터' 족쇄
조은비 기자
2026.03.24 07:00:17
대미투자특별법 독소 조항에 협상력 상실… EU·일본과 달리 한국만 '하드 쿼터'
이 기사는 2026년 03월 23일 17시 32분 유료콘텐츠서비스 딜사이트 플러스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현대제철 당진제철소 전경. (제공=현대제철)

[딜사이트 조은비 기자] 현대제철의 8조5000억원 규모 대미 투자를 두고 '실익 없는 퍼주기'라는 지적이 나온다. 역대급 자본을 투입하고도 대미 수출의 상한선인 연간 268만t' 장벽은 단 1t도 허물지 못한 채, 오히려 최근 통과된 '대미투자특별법'이 기업의 팔다리를 묶는 구조적 족쇄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현지 생산을 통해 고관세 장벽을 넘겠다는 전략적 결단이 자칫 정부의 '안보 프레임'에 갇혀 기업의 협상력을 소진했다는 분석이다.


철강업계에 따르면 이번 루이지애나 프로젝트는 총 58억달러가 투입되는 대규모 사업으로, 현대제철을 주관사로 포스코와 현대자동차가 전략적 파트너로 참여하는 컨소시엄 형태다. 대규모 자산이 투입되는 만큼 위험 분산을 도모했으나, 운영 전반을 책임지는 현대제철이 컨소시엄 내 가장 높은 지분을 보유함에 따라 재무적 리스크의 상당 부분을 온몸으로 짊어지는 구조다.


현대제철은 이를 통해 보호무역주의 리스크를 정면 돌파하겠다는 복안이지만, 정작 국내 생산 물량의 판로를 결정짓는 '무역확장법 232조 쿼터' 유연성은 확보하지 못했다. 이는 경쟁국인 유럽연합(EU)과 일본이 미국으로부터 관세 할당제(TRQ) 전환을 끌어내며 수출 유연성을 확보한 것과 극명히 대비되는 결과다.


한국은 주요 철강국 중 유일하게 '절대량 제한(Hard Quota)'에 묶여 있는 상태로, 8조5000억원이라는 파격적인 투자를 단행하고도 경쟁국 수준의 제도 개선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결국 투자의 결실은 미국 현지 고용과 세수로 돌아가는 반면, 국내 생산 공장의 판로인 수출 쿼터는 늘리지 못하면서 재무적 부담만 떠안고 실익은 놓쳤다는 평가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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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현대제철이 대규모 리스크를 무릅쓰고 대미 투자를 감행하는 배경에는 한계에 다다른 국내 시장 상황이 자리 잡고 있다. 국내 건설 경기 침체 장기화와 저가 중국산 철강재의 무차별적인 공세로 인해 수익성이 급감한 상황에서, 미국 시장은 포기할 수 없는 '최후의 보루'와 같다.


특히 전 세계적인 탈탄소 규제에 맞춰 기존 공법을 저탄소 체제로 바꾸는 데만 수조원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런 시점에 단행되는 이번 대규모 투자는 사실상 회사의 미래를 건 승부수다. 하지만 국내 공장이 제대로 돌아가게 해 줄 수출 길은 묶인 채 해외 생산에만 자금을 쏟아붓는 방식은 자칫 국내 공장은 일감이 줄어 빈 껍데기만 남고 회사의 재무 부담만 가중될 수 있다는 우려가 깊다.


이러한 실익 부재의 배경에는 최근 통과된 '대미투자특별법' 제3조 제3항이 자리 잡고 있다. 해당 조항은 수익성이 낮아 상업적 합리성이 부족하더라도 안보상 필요 시 투자를 강행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는 기업이 통상 협상에서 휘두를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인 '투자 철회'나 '집행 속도 조절' 카드를 시작도 전에 무력화시킨 셈이다.


우리가 '수익과 무관하게 투자하겠다'는 의지를 선제적으로 보여주면서, 미국 측이 쿼터 확대와 같은 양보안을 내놓을 동기 자체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미 사기로 확정된 구매자에게 판매자가 굳이 추가 혜택을 얹어줄 리 없어 이번 투자는 시작부터 협상의 지렛대를 상실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현대제철 측은 재무적 리스크와 협상력 약화에 대한 우려에 대해 파트너십을 통한 안정성을 강조했다. 현대제철 관계자는 "재무적으로는 포스코와 현대제철이 파트너로 참여하고 있어 매우 안정적인 구조"라며 시장의 우려를 일축했다. 다만 수익성 배분이나 구체적인 리스크 분담 장치 등 핵심 의사결정 구조에 대해서는 "모그룹(현대차그룹 및 포스코그룹) 차원의 반응과 전략을 지켜봐야 할 사안"이라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일각에서는 현대제철의 이번 사례가 정부의 정책적 목표와 기업의 실익이 충돌할 때 발생하는 구조적 리스크를 보여줬다고 평가한다. 한 철강업계 관계자는 "안보를 명분으로 기업의 희생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제약은 향후 다른 대미 투자 기업들에게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8조5000억원이라는 천문학적인 투자가 단순한 퍼주기로 끝나지 않기 위해서는, 쿼터 유연성 확보를 위한 실질적인 보상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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