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K-금융의 글로벌 행보도 속도를 내고 있다. 해외 진출은 이제 주요 금융사에 단순한 기회 모색이 아니라 핵심 사업 전략으로 자리 잡았다. 탄탄한 해외 실적은 '생산적 금융'이 강조되는 현시점에서 선순환적 수익 구조를 만들어가는 동력이 되고 있다. 딜사이트는 이번 기획을 통해 세계 각 거점에서 펼쳐지는 국내 금융사의 현지 사업과 전략, 그리고 그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전한다. [편집자주]
[도쿄(일본)=딜사이트 주명호 기자] 글로벌 사업 확장을 모색하는 국내 금융사들에게 일본은 여전히 험지(險地)다. 일본 금융권 특유의 보수성과 높은 시장 성숙도 탓에 진출도, 생존도 쉽지 않다. '외국계 금융사의 무덤'이라는 표현이 과거뿐 아니라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이유다.
신한은행의 일본법인인 SBJ은행은 이 같은 인식을 뒤집고 안착에 성공한 독보적 사례로 꼽힌다. 현재 일본에서 현지법인 형태로 영업 중인 외국계 은행은 SBJ은행을 포함해 단 세 곳뿐이며, 이 가운데 일본 금융청 인가를 받아 개인·기업금융을 모두 영위하는 곳은 SBJ은행이 유일하다.
권순박 SBJ은행 법인장은 "씨티은행은 일찌감치 리테일(소매금융) 사업을 접었고 도쿄스타은행은 2014년 대만 CTBC뱅크(중국신탁상업은행)에 인수되면서 외국계 은행이 된 케이스"라며 "SBJ은행은 순수 인허가를 통해 설립된 외국계 은행으로, 일본 내 금융업 전반을 수행하는 유일한 사례"라고 설명했다.
◆현지화 전략으로 '안착'…우편예금·주택론 흥행
신한은행의 일본 진출은 올해로 40년째다. 1986년 최초 해외 점포인 오사카지점을 출범시킨 후 도쿄지점(1988년), 후쿠오카지점(1997년)을 잇따라 열었고, 2009년 법인 전환을 계기로 성장기를 맞았다. 이후 법인 체제에서 6개 영업점(우에노지점·요코하마지점·고베지점·나고야지점·신주쿠지점·도쿄본점영업부)을 차례로 열며 현재의 채널 구조를 완성했다.
법인 전환 후 추진한 현지화 전략은 SBJ은행의 안착을 이끈 결정적 요인이다. 대표적인 예가 우편예금과 주택론이다. 영업점 방문 없이 우편으로도 본인 확인 및 예금 신청이 가능하다는 점을 활용한 SBJ은행은 2009년 9월 일본 일반은행보다 높은 예금금리를 제시하며 현지고객을 폭발적으로 끌어들였다. 이를 통해 당해 연말까지 들어온 신규 예금은 당초 목표액의 두 배인 2000억엔(약 1조8800억원) 수준에 이르렀다.
2014년 말 출시된 'ANY주택론' 역시 성공적인 현지화 상품으로 꼽힌다. 일본 내 부동산 투자 수요 확대를 발 빠르게 포착한 결과다. 출시 직후부터 큰 인기를 끌어 3년만에 대출 규모가 1000억엔을 돌파하는 등 개인금융의 주력사업이 됐다. 현지화 성공 가늠자 중 하나인 일본 고객 비중은 이를 기반으로 빠르게 확대됐다. 그 결과, 일본 현지 고객 비중은 법인 전환 당시 30% 미만에서 올해 86%까지 상승했다.
안착 이후 SBJ은행은 차별화 전략을 통해 성장 궤도에 올랐다. 특히 한국식 RM(기업고객담당) 영업기법이 현지 시장에서 주효했다. 영업점별로 배치된 담당 RM들은 적극적인 맞춤형 해결책을 통해 개별 고객 니즈를 충족시키면서다. 특히 신속한 의사결정과 업무처리는 현지 고객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강점으로 작용했다.
뛰어난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디지털화도 SBJ은행의 지향점을 생존에서 성장으로 한 단계 끌어올린 묘수로 꼽힌다. 일본 금융업권이 보수적 관행으로 변화를 꺼리는 것과 달리 SBJ은행은 자체 개발한 뱅킹시스템 '아이텔(Aither)'을 도입해 고효율·저비용 운영을 실현했다.
SBJ은행의 효율성은 수치로도 뚜렷이 증명된다. 국내의 CIR(영업이익경비율)에 대응하는 지표인 OHR(경상비용경비율)은 2022년 30.02%, 2023년 27.94%, 지난해 27.62%로 일본내 은행 중 최저 수준을 나타내고 있다.
권 법인장은 "아이텔로 인해 일본 은행들에 비해 운영·판매관리비 등이 매우 적게 소요된다"며 "OHR 기준으로 비용효율 순위가 5위권 밖을 벗어난 적이 없다"고 말했다.
◆"환경 변화에도 성장 자신"…순익 2000억 '눈앞'
탄탄한 효율성과 현지화 전략을 바탕으로 실적 성장세도 이어지고 있다. SBJ은행은 ▲2021년 814억원 ▲2022년 1167억원 ▲2023년 1270억원 ▲2024년 1486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거두며 매년 최대 실적을 경신해왔다. 올해 역시 상반기만 854억원의 순익을 내면서 연간 순익 2000억원 고지에 성큼 다가섰다.
다만 이같은 행보와 별개로 일본 내 영업환경은 이전보다 더 어려워지고 있다. 수십년간 이어진 마이너스금리 체제에서 벗어난 이후 심화된 예금유치 경쟁으로 조달비용 부담이 커진 상황에서 예금자금은 자본시장으로 쏠리고 있어서다.
SBJ은행 역시 이런 변화를 선제적으로 읽고 대응전략을 펼치고 있다. 대학교 및 병원, 공공기관 예금 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것도 급변하는 현지 환경을 고려한 사업 방향 중 하나다. 이에 더해 자회사인 SBJ DNX를 통한 현지 은행과의 협업 면적을 넓혀 안정적인 신규 수익을 창출하겠다는 방침이다.
권 법인장은 "국내 바스(Baas·서비스형 뱅킹)시스템 등을 활용한 상품 개발에 나서는 등 다양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며 "환경에 따른 변동성은 있겠지만 지난해 대비 10% 수준의 성장은 충분히 이룰 것"이라고 자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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