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사양산업으로 불리던 제지업이 코로나19 팬데믹을 맞아 재도약에 나서는 듯 했지만, 영업환경은 여전히 녹록치 않다. 원재료값과 전기료 등 고정비 부담이 증가하면서 수익성이 약화하고 있어서다. 특히 대부분의 제지사가 단일 사업에 의존하고 있는 만큼 미래 신성장 동력 확보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제지업계가 일부 상위권사를 제외하고는 자수성가형 오너일가가 절대적인 지배력을 갖춰 경영에 대한 견제가 제한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딜사이트는 국내 상장 제지사들의 재무 현황과 지배구조, 추후 과제 등을 살펴본다. [편집자주]
[딜사이트 이세정 기자] 삼보판지그룹 창업주 고(故) 류종욱 회장의 장남 류경호 삼보개발 대표이사가 10년째 삼보판지 사내이사를 맡고 있지만, 이사회에는 1년에 한 두 번만 얼굴을 비추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류경호 대표는 회사로부터 고정적인 급여도 수령하고 있지 않아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류경호 대표가 사실상 '유령 임원'으로 존재하는 주된 배경에는 오너일가 경영권과 무관치 않다는 시각이다. 형식적으로 오너가가 지배하는 그림을 그리고, 이사회에서 수적 우위를 점하기 위한 의도라는 분석도 나온다.
◆ 류경호 삼보개발 대표, 동생보다 늦은 경영수업…증여 주식 열위
6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삼보판지 이사회는 상근이사 3명, 비상근이사 3명 총 6명으로 구성됐다. 세부적으로 사내이사는 ▲류진호 사장 ▲류경호 이사(비상근) ▲이경선 경영총괄 ▲이대영 생산총괄 4명이며, 사외이사는 ▲정연찬 한국의약품수출입협회 상근부회장 ▲(비상근) ▲양창석 한국기술교육대학교 교수(비상근)이다.
주목할 인물은 류경호 이사다. 1972년생의 류경호 이사는 연세대 경영학과 대학원을 졸업했으며, 필립모리스코리아 마케팅부서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다. 하지만 류경호 이사는 다섯 살 어린 동생 류진호 사장이 삼보판지 최대주주에 오르면서 후계 구도에서 배제됐다.
예컨대 류종욱 창업주가 자신이 보유한 삼보판지 주식을 두 아들에게 증여한 2005년 당시 류진호 사장이 16만6800주를 받으면서 지분율 16.44%의 최대주주가 됐다. 반면 류경호 이사는 동생보다 적은 12만주를 받았고 지분율은 13.68%에 그쳤다.
경영 수업을 시작한 시점에도 차이가 존재한다. 류경호 이사는 2014년 9월 삼보판지 기획실로 입사해 경영수업을 시작했고, 같은 해 12월 사내이사로 선임됐다. 특히 삼보판지 자회사인 고려제지와 삼화판지 대표를 역임했다.
하지만 동생인 류진호 사장이 한 발 앞서있었다. 류진호 사장은 고려제지 상무를 거쳐 2009년 삼보판지 이사회에 합류했으며, 15년째 회사 경영과 관련한 중책을 맡고 있다.
◆ 2014년부터 비상근 사내이사…올해 이사회 참석률 0%·별도 보수 없어
삼보판지그룹 경영권을 내준 류경호 이사는 현재 삼보개발 최대주주(지분율 90%)이자, 삼보개발 대표로 근무 중이다. 1997년 설립된 삼보개발은 애초 류종욱 회장이 최대주주였으나, 장남에게 가장 많은 지분을 증여했다. 류진호 사장의 경우 삼보개발 주식 10%를 들고 있다. 현재 삼보개발은 경기 포천과 강원 춘천에 골프장(베어크리크)을 운영 중이며, 지난해 말 매출 441억원과 영업이익 156억원을 기록했다.
눈길을 끄는 부분은 따로 있다. 류경호 이사가 10년째 삼보판지 사내이사 자리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지만, 이사회 참여율이 매우 저조하다는 점이다.
실제로 류경호 이사의 참석률은 올 들어 상반기까지 0%로 나타났다. 총 4차례의 이사회가 개최됐지만 단 한 번도 의사결정에 참여하지 않은 것이다. 공시규정 강화로 사내이사의 이사회 참석률이 공개된 2019년부터 살펴보면, 류경호 이사의 참석률은 ▲2019년 33% ▲2020년 33% ▲2021년 25% ▲2022년 33% ▲2023년 67%였다. 액면상 지난해 류경호 이사의 경영 참여 의지가 강화된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평균 6차례 개최되던 이사회가 예년 대비 절반 수준인 3차례만 열린데 따른 것일 뿐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류경호 이사가 비상근 사내이사로 이름을 올린 덕분에 별도의 급여는 받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만약 류경호 이사가 불성실한 이사회 참석률에도 보수를 받았다면 배임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을 것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 형제경영 체제, 사촌 견제 목적…지금은 오너 지배력 과시
일각에서는 류경호 이사가 과거에는 숙부(작은아버지)인 류종우 대림제지 회장 일가를 견제하기 위해 사내이사직을 수행했고, 최근에는 오너가 일원으로서 견고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이사회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삼보판지그룹은 류종욱 회장 3형제가 공동 창업한 회사다. 류종우 회장 장남인 류동원 현 동진판지 대표는 류경호 이사와 동갑내기 사촌으로, 올해 3월까지 삼보판지 비상근 사내이사를 맡았었다.
특히 류동원 대표가 2004년부터 20년 넘게 삼보판지 등기임원을 맡아온 만큼 현 삼보판지 주요 경영진과 긴밀한 유대감을 쌓은 것으로 파악된다. 그는 2009년 1월부터 2017년 3월까지 이 회사 대표이사를 수행하기도 했다.
류동원 대표가 올 3월 임기 만료로 삼보판지 사내이사직을 내려놓은 만큼, 류경호 이사의 부담도 상당히 완화됐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류경호 이사가 여전히 비상근 이사직을 수행 중이다. 이를 두고 동생인 류진호 사장이 삼보판지 경영 전면에 서있는 만큼 개입을 최소화하는 한편, 오너가라는 상징적인 역할만 담당하고 있다는 해석이다.
이와 관련, 삼보판지 관계자는 "류경호 이사는 골판지 분야에서 오래 근무하며 높은 이해도를 갖추고 있다"며 "최근 류경호 이사의 이사회 참석률이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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