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사양산업으로 불리던 제지업이 코로나19 팬데믹을 맞아 재도약에 나서는 듯 했지만, 영업환경은 여전히 녹록치 않다. 원재료값과 전기료 등 고정비 부담이 증가하면서 수익성이 약화하고 있어서다. 특히 대부분의 제지사가 단일 사업에 의존하고 있는 만큼 미래 신성장 동력 확보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제지업계가 일부 상위권사를 제외하고는 자수성가형 오너일가가 절대적인 지배력을 갖춰 경영에 대한 견제가 제한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딜사이트는 국내 상장 제지사들의 재무 현황과 지배구조, 추후 과제 등을 살펴본다. [편집자주]
[딜사이트 이솜이 기자] 올해 들어 해성그룹 '오너 3세' 형제가 한국제지 등기임원에 나란히 이름을 올려 눈길을 끈다. 4년 전 일찌감치 한국제지 경영 일선에 나선 단우영 부회장에 이어 최근 2살 터울의 동생 단우준 사장이 사내이사로 정식 등판해서다.
사내이사가 과반을 점한 이사회 구조상 한국제지 경영에 오너일가 입김이 크게 작용해 경영 투명성이 저해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제지는 1958년 깨끗한나라 창업주인 최화식 회장과 '명동 사채왕', '현금왕'이라 불린 단사천 전 해성그룹 회장이 공동 설립했다. 제지 브랜드 '밀크(Miilk)' 운영사로 잘 알려져 있다.
◆ '형' 단우영 부회장은 이사회 의장…'동생' 단우준 사장 올 초 사내이사 선임
22일 한국제지 분기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9월 말 기준 이사회는 사내이사 3명과 사외이사 1명으로 구성돼 있다. 사내이사로는 단우영 부회장, 단우준 사장과 안재호 대표이사가 참여한다. 단 사장은 올해 3월 정기 주주총회에서 사내이사로 신규 선임됐다. 사외이사로는 벤처캐피탈사 '리젠트파트너스' 부대표인 김마이클민제 이사가 등재돼 있다. 단 부회장은 1979년, 단 사장은 1981년생이다.
단 부회장이 세하 시절 일찌감치 이사회에 발을 디딘 점을 감안하면 단 사장의 합류는 다소 늦어진 편이다. 단 부회장은 2020년 5월 임시 주주총회에서 사내이사에 선임됐는데 임원 취임과 동시에 이사회 의장으로 임명됐다. 당시 해성그룹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세하 지분 71.64%를 인수하고 계열사로 편입시킨 것이 취임의 계기가 됐다.
같은 시기 단 사장은 한국제지 미등기 임원으로 이사회 내 경영임원회에 소속돼 실무를 익혔다. 경영임원회는 주로 이사회로부터 위임 받은 사항을 심의 의결하는 실무 기구 역할을 수행하는 데 초점을 둔다.
단 부회장과 단 사장은 이미 그룹 상장 계열사 이사회에서 손발을 맞춰본 사이다. 두 사람이 한국팩키지·계양전기·해성디에스 상근직 사내이사직을 역임해온 사례가 대표적이다. 다만 한국제지에서는 단 부회장과 단 사장 모두 비상근 형태로 재직 중이다. 한국제지와 마찬가지로 해당 계열사 의장직은 단 부회장이 맡고 있다.
해성그룹 오너 3세 형제가 경영 보폭을 꾸준히 넓혀 왔지만 승계 구도는 명확히 정해지지 않은 분위기다. 단 부회장과 단 사장의 아버지이자 그룹 오너 2세인 단재완 회장(1947년생)이 아직까지 해성산업 최대주주(지분율 18.34%)로 그룹 지배구조 최정점에 서 있어서다. 단 부회장과 단 사장이 보유한 해성산업 지분율은 각각 17.19%, 17.06%로 격차가 미미한 수준이다.
◆ 사내이사직 오너 3세 형제가 장악…"ESG 개선안 도출 및 추진"
한국제지는 단우준 사장의 이사회 입성으로 기업 거버넌스 측면에서 큰 부담을 떠안게 됐다. 사내이사 3석 가운데 2석을 단 부회장과 단 사장이 차지하는 구도가 형성된 탓이다. 오너 일가가 자칫 원하는 방향대로 이사회 의사 결정을 주도할 수 있다는 우려가 뒤따르는 이유다.
문제는 사내이사에 비해 사외이사수가 현저히 적어 이사회 내 견제 기능이 작동되기 어렵다는 점이다. 한국제지 이사회에서 의결권 행사가 가능한 사외이사는 김마이클민제 이사 1명이 전부다. 이사 총수 4분의 1 이상을 사외이사로 선임해야 한다는 상법 규정에 겨우 턱걸이하고 있는 셈이다.
한국제지의 거버넌스 취약점은 ESG 등급 평가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한국제지는 한국ESG기준원이 발표한 '2024년 ESG등급 평가'에서 낙제점에 해당하는 성적표를 거뭐졌다. 종합등급은 '취약'에 해당하는 C등급으로 ▲환경 ▲사회 ▲지배구조 전 부문에서도 각각 C등급을 받았다.
한국제지 관계자는 "지난해 8월 합병 출범 이후 내부적으로 하나씩 정리해나가는 단계"라며 "ESG 등급은 단기·중기·장기로 나눠 준수율을 향상시키는 방안을 검토했고 개선안을 도출, 추진해나가려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를테면 회사에 불이익을 끼칠 수 있는 임원 선임 관련 규정을 명문화하기 위한 준비도 하고 있다"면서 "다만 사외이사 확대 부분은 조금 시간을 두고 진행해나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한국제지는 1971년 상장한 뒤 2020년 7월 해성산업에 흡수 합병돼 한차례 상장 폐지된 바 있다. 같은 해 11월 해성산업은 자사 제지사업부를 한국제지로 다시 물적분할 시켰다. 이후 지난해 해성산업 자회사였던 '세하'가 한국제지를 흡수 합병해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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