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정동진 기자] 증권사들이 야심차게 내놨던 이른바 '메가 스팩(공모금 300억원 이상 스팩)' 합병이 줄줄이 좌절되고 있다. 기업가치 고평가 논란으로 합병 결의에 어려움을 겪거나 기업들이 스팩을 통한 상장을 선호하지 않기 때문이다.
2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올해 상장에 성공한 스팩은 10건에 불과하다. 2022년 18건, 2023년 19건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확연히 줄었다.
투자은행(IB)업계에서는 NH투자증권, KB증권 등 대형 증권사들이 공을 들였던 크리에이츠, 피아이이 등 대형 스팩딜이 실패한 점이 전체적인 딜 감소에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올해 스팩과 직상장 IPO 시장의 온도 차는 명확하다. 스팩 시장에서 기대를 모았던 크리에이츠와 피아이이는 지난 2월과 4월 스팩 주주들의 합병 반대로 합병을 철회했다. 반면 같은 시기 코스닥 시장에 데뷔한 스튜디오삼익, 아이엠비디엑스 등은 상장 당일 종가 기준 공모가 대비 100~200% 상승하며 공모 시장을 뜨겁게 달궜다.
국내 대형 스팩은 지난 2020년 미국 시장에서 루시드 모터스, 버진갤럭틱 등 주목받던 기업들이 스팩합병에 성공한 영향으로 출시돼 수 차례 합병 시도가 이뤄졌다. 하지만 현재까지 합병을 통해 상장에 성공한 대형 스팩은 단 1건도 없다.
최근 스팩 시장 역시 기대감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오히려 지난 2021년 5월 코스피에 상장됐던 950억원 규모의 엔에이치스팩19호가 올해 초 상장폐지된 것을 시작으로, 크리에이츠와 합병을 시도했던 엔에이치스팩20호(400억원)가 5월 청산 절차를 밟았다.
피아이이와 합병에 실패한 하나금융25호스팩(400억원) 역시 상장폐지가 유력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밖에 미래에셋드림스팩1호(850억원), 삼성스팩7호(300억원), 삼성스팩8호(400억원)는 상장 후 1년 넘게 마땅한 합병 대상을 찾지 못하고 있다.
올해 합병 및 상장에 성공한 스팩을 살펴보더라도 모두 시가총액 1000억원(증권신고서 기준) 내외의 중소형 딜 뿐이다. 대형 스팩과 합병시 기업의 시가총액은 통상 4000억~5000억원 수준이다. 사피엔반도체는 1195억원의 상장 시가총액을 기록하며 유일하게 시가총액 1000억원을 넘겼으나, 한빛레이저·마티스·다원넥스뷰 등은 상장 시가총액이 500억~600억원 수준에 불과했다. 이들 딜에 관여한 스팩의 규모 역시 100억~200억 수준으로, 대형 스팩들과는 차이가 존재했다.
국내 주식시장에서 대형 스팩이 합병에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가 꼽힌다. 첫 번째는 합병 대상기업에 대한 과도한 밸류에이션 설정으로 인해 스팩 투자자들의 동의를 얻기 어렵다는 점이다. 두 번째는 직상장 트랙이 문턱이 낮아지면서 스팩 합병의 필요성이 낮아졌다.
올해 상장에 실패한 스팩들은 모두 과도한 기업가치 산정으로 인해 스팩 주주들의 동의를 얻지 못했다. 크리에이츠와 피아이이 모두 주주들로부터 기업가치 산정 과정에서 과도한 '미래 추정 실적'을 적용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에 투자자들은 주주총회에서 합병 반대에 투표하며 투자 원금을 회수하는 방법을 택했다.
증권사들이 합병 시 대상 기업에 대한 무리한 밸류에이션을 용인하는 이유는 스팩이 존속기한(36개월) 내에 합병에 성공하지 못하면 자동으로 상장폐지되기 때문이다. 사실상 2년 6개월(30개월)내 대상 기업을 찾지 못하면 사실상 청산 수순을 밟게 되는 만큼, 유력한 후보기업이 정해지면 해당 기업에 대한 적정 밸류에이션을 찾기보다 그 기업이 원하는 밸류를 '맞춰 줄'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대형 스팩의 경우 상장폐지 시 스팩 투자자들에게 보상해야 하는 이자와 상장 추진 과정에서 발생한 비용 등이 기존 중소형 스팩보다 수 배에 달한다고 알려져 있다. 이에 스팩의 규모가 클수록 존속기한 내 상장을 시키기 위한 유인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이 밖에도 지난해 거래소가 기술특례 상장을 위한 기술평가 기준을 충분한 시장 평가가 있는 기업에 한해 복수평가에서 단수평가로 줄이고, 최대 출자자 제한 등을 완화하고 있어 대형 스팩들의 '찬밥 신세'는 당분간 면하기 힘들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한국거래소가 직상장 경로를 다양화하고 있는 만큼 2000억원 이상의 비상장사들이 굳이 스팩을 통한 상장을 노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IB업계 관계자는 "가뜩이나 스팩 합병은 '하자 있는 기업'이 직상장의 대안으로 선택한다는 부정적인 인식이 강한데, 최근 대형 스팩들의 낙마로 이미지가 더욱 악화되고 있다"며 "좋은 선례들이 나와서 스팩이 하나의 일반적인 상장 루트로 정착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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