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김정희 기자] 팬오션이 약 1조원을 투입해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 10척을 인수하며 에너지 운송 비중 확대에 나섰다. 시황에 따라 실적이 널뛰는 벌크선(원자재 운송) 중심에서 벗어나 장기계약 기반의 에너지 물류로 체질을 바꾸기 위한 승부수다. 내년까지 도입할 신조선 8척을 더하면 2027년 팬오션의 탱커 선단은 35척 규모로 불어난다. 업계에선 에너지 운송이 벌크선을 잇는 제2의 성장 엔진으로 자리 잡음으로써 팬오션의 안정적인 실적 개선을 이끌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 1조원 투입해 탱커선대 확장…2027년 하반기 35척
20일 업계에 따르면 팬오션은 최근 SK해운이 보유한 VLCC 10척을 9737억원에 인수하기로 결정했다. 중고선 인도는 기업결합 신고 등을 거쳐 오는 5월 시작될 예정이며, 2027년 4월 전량 인수를 마칠 계획이다. 팬오션 관계자는 "장기화물운송계약이 연계된 선박을 확보해 웨트벌크(Wet Bulk) 운송 역량과 수익 기반을 동시에 강화하기 위한 결정"이라며 "안정적인 사업 포트폴리오 구축을 위해 대규모 투자를 단행했다"고 설명했다.
업계는 이번 중고선박 인수로 팬오션의 탱커 사업 경쟁력이 강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즉각적인 전력 보강인 중고선 인수와 더불어, 내년 8월까지 예정된 8척(MR급 6척·VLCC 2척)의 신조 선박 도입 계획이 맞물리며 선대 확장 속도가 대폭 빨라졌기 때문이다. 지난해 노후 탱커선 2척을 매각한 팬오션이 추가 매각에 나서지 않을 경우, 2027년 하반기 기준 탱커 선대는 35척까지 늘어날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현재 선박 보유·용선을 포함한 운용 규모 대비 약 두 배 이상 확대되는 수준이다. 현재 팬오션은 VLCC 2척, MR 탱커 8척(용선 1척), 케미컬 탱커 7척(용선 1척)을 운용하고 있다.
이재혁 LS증권 연구원은 "팬오션의 중고 VLCC 매입은 지난해 6월 HD현대중공업에 2척의 신조 VLCC를 발주한 데에 이은 것"이라며 "초대형유조선 중심의 해운사업 포트폴리오로 사업 다각화에 나서고 있다"고 분석했다. 류제현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향후 탱커선 시장에서 운송 역량을 강화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향후 잔존가치에 따른 추가 이익 향유 가능성과 실질적인 현금흐름 변화 등을 고려할 때 의미 있는 투자"라고 평가했다.
◆ 벌크선 변동성 줄여 안정적 실적 기반 다져
팬오션의 탱커선 확대는 의존도가 높은 벌크선 사업 중심 구조에서 발생하는 변동성을 낮추는 데 기여할 것으로 관측된다. 지난해 기준 팬오션 전체 매출 5조4329억원 가운데 벌크선 사업 비중은 56.8%(3조863억원)에 달했다. 반면 탱커 사업 매출은 2979억원으로 5.48%에 그쳤다. 컨테이너와 액화천연가스(LNG) 사업 매출 비중은 각각 8.13%(4418억원), 5.85%(3182억원) 수준이었다.
다만 벌크선 사업은 발틱운임지수(BDI) 변동에 따라 실적이 크게 좌우되는 구조다. 특히 팬오션의 경우 스팟(일회성) 계약 비중이 높아 운임 지표 변화에 영향을 크게 받는다. 실제 2025년 평균 BDI는 1681포인트(p)로 전년 대비 74p 하락했고, 같은 기간 팬오션의 벌크선 부문 영업이익은 2169억원으로 20.4% 감소했다. 반면 코로나19로 해상 물동량이 급증했던 2021년과 2022년에는 평균 BDI가 각각 2943p, 1934p를 기록하며 벌크선 부문 영업이익도 5146억원, 5408억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달성했다. BDI 흐름에 따라 실적이 크게 출렁이는 구조가 반복돼 온 셈이다.
이와 달리 탱커선 사업은 5년의 장기계약 비중이 높아 시황 변동에 따른 실적 영향이 상대적으로 적게 받는다. 팬오션이 이번에 인수한 SK해운의 VLCC 10척 역시 모두 장기운송계약(COA)을 체결한 상태로, 운임 변동 위험을 상당 부분 줄일 수 있다. 시장에서는 이번에 인수한 VLCC 10척이 연간 약 3100억원 수준의 신규 매출을 창출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는 2024년 기준 SK해운 탱커 부문 매출을 토대로 산출한 수치다. 지난해 팬오션 탱커 사업 매출이 3000억원이 채 되지 않았다는 것을 고려하면 2배가량 매출이 뛰는 셈이다.
최근 VLCC 등 원유 운반선 시장 환경이 개선되고 있다는 점도 긍정적이다. 원유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주요 산유국 협의체인 OPEC+가 증산 재개를 논의하는 가운데, 일부 노후 선박의 퇴출과 지정학적 변수로 VLCC 수요가 증가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안도현 하나증권 연구원은 "최근 VLCC 시장 내 그림자 선단 퇴출과 원유 시장 정규화(베네수엘라 등)가 이루어지며 VLCC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며 "이번 (팬오션의) VLCC 투자는 포트폴리오 다변화 측면에서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새로운 눈으로 시장을 바라봅니다. 딜사이트 무단전재 배포금지
Hom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