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김규희 기자] 국책은행인 한국산업은행으로부터 자금을 출자받은 사모펀드(PEF) 운용사들이 같은 정부 기관인 한국성장금융투자운용이 기획한 '은행권 중견기업 밸류업 펀드' 위탁운용사(GP) 선정전에서 대거 탈락했다.
산업은행과 성장금융의 알력 싸움에 견실한 운용사들이 희생된 게 아니냐는 볼멘 목소리가 나온다. 중견 기업을 지원한다는 정책적 성격의 출자사업의 본질이 당국자들 사이의 감정 싸움 때문에 공정히 평가받지 못했다는 비판이다.
14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성장금융은 지난달 31일 은행권 중견기업 밸류업 펀드 GP로 ▲KCGI ▲아주IB투자 ▲유진프라이빗에쿼티(PE)를 선정했다. 12개사 가운데 6곳을 숏리스트로 추렸고 최종적으로 3개사를 최종 운용사로 낙점했다.
GP 선정 결과는 운용업계에서 상당한 여진을 일으킨다. 기존 산업은행 자금을 받은 하우스들이 대부분 선택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통한 관계자는 "논란의 배경에는 지난 2023년부터 이어진 산업은행과 성장금융 간의 미묘한 알력 다툼이 자리잡고 있다"며 "산업은행은 2023년 3월 혁신성장펀드 모펀드 위탁운용사 선정 당시 2000억원 규모의 혁신산업 모펀드 GP로 성장금융을, 1000억원 규모의 성장지원 모펀드 GP로 신한자산운용을 선정했다"고 설명했다.
산업은행은 이듬해인 2024년 4월 GP에 변화를 줬다. 규모가 더 큰 혁신산업 모펀드 GP에 신한운용을 선정하고 성장금융은 성장지원 모펀드 GP로 선택했다. 이는 민간 모펀드 시장을 육성한다는 정부 정책에 따라 신한운용 역할을 확대한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성장금융은 이 사건을 두고 모기업이나 다름없는 산업은행이 자신들을 향해 경고성 메시지를 날렸다고 받아들였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성장금융 최대주주가 한국거래소로 바뀌는 과정에서 산업은행과 물밑에서 신경전을 벌여왔는데, 성장금융은 산업은행이 그 앙금을 수면 위로 표출했다고 인식한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과거 성장금융은 실질적으로 산업은행의 지배를 받아왔는데 최대주주 변경을 기점으로 산업은행과 결별하고 독립 행보를 보였다"며 "산업은행은 이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등 두 기관 사이에는 미묘한 마찰 기류가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성장금융이 관련 모펀드 GP 선정 결과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거란 지적이다.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성장금융이 산업은행 인력을 빼오는 일이 발생하면서 화재는 커졌다. 두 기관 사이 갈등이 폭발한 것이다. 특히 2025년 혁신성장펀드 모펀드 GP 선발 결과는 이런 기류를 반영한 결과라는 주장에 설득력을 더한다. 성장금융이 모펀드 GP에서 전부 탈락한 것이다. 정부의 민간 모펀드 시장 육성 기조가 더욱 강화된 결과로 해석되지만 성장금융 측에서는 이를 자신들을 향한 압박으로 인식했다는 후문이다.
성장금융은 이번 은행권 중견기업 밸류업 펀드 위탁운용사 선정 과정에서 반격한 것으로 보인다. 산업은행이 자신을 혁신성장펀드 모펀드 GP에서 떨어뜨리자 간접적으로 대응에 나섰다는 의미다. 숏리스트에 올랐던 6곳 중 산업은행으로부터 출자를 받은 SKS PE, 노앤, 우리PE-NH증권이 모두 탈락했다. GP로 선정된 유진PE와 KCGI는 산업은행 출자를 받지 않은 하우스다.
산업은행 자금을 받은 아주IB가 GP로 선정되긴 했다. 그러나 아주IB의 경우 펀딩 규모가 워낙 크고 여러 기관으로부터 출자를 받아 산업은행이 앵커 투자자로서의 지위를 갖지 못했기 때문에 선정될 수 있었다는 분석이다. 더욱이 산업은행 출자를 받았던 원익PE와 헬리오스PE는 아예 숏리스트에도 오르지 못했다. 특히 헬리오스의 경우 다른 콘테스트에서는 실력을 인정받는 하우스였기에 숏리스트에도 오르지 못한 건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금융위원회가 주관하는 일종의 관제 펀드라 산업은행 자금을 받은 PEF 운용사에 출자하는 건 중복출자로 볼 수도 있다. 중복 선정을 막기 위해 산업은행 출자 펀드를 배제했다고 해도 그것은 성장금융의 심사 재량에 속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러나 은행권 중견기업 밸류업 펀드는 국내 중견기업의 성장을 지원하고 국내 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기 위해 조성된 공익적 목적을 가진다. 이 펀드의 GP 선정 과정이 특정 기관 사이의 알력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받았다면 이는 펀드 설립의 본래 취지를 훼손하는 행위로 볼 수 있다. 정통한 관계자는 "정책금융 기관들이 싸우는 사이 공정한 심사가 훼손됐다면 시장의 신뢰는 깨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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