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딜사이트 차화영 기자] 한화생명이 6년 만에 각자대표이사 체제로 전환을 앞두고 있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차남인 김동원 한화생명 사장의 이름이 빠졌다는 점이다. 당초 대표체제에 변화가 생길 경우 유일한 사장인 김 사장이 대표이사 직함을 달지 않겠냐는 관측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각자대표체제 구성과 그룹의 전반적 인사 흐름에 비춰볼 때 김 사장을 향한 경영권 승계 시계는 여전히 돌아가고 있다는 분석에 무게가 실린다. 한화생명이 그룹 내에서 차지하는 위상과 보험업의 특성을 고려해 승계를 긴 호흡으로 추진하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한화그룹은 지난 22일 한화생명 신임 대표이사에 권혁웅 전 한화오션 부회장과 이경근 한화생명금융서비스 사장을 내정했다. 여승주 한화생명 대표이사 부회장은 그룹 경영지원실장으로 자리를 옮기게 된다.
한화생명 새 대표의 공식 취임 일자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으나 이전 사례에 비춰볼 때 7월 중으로 임기를 시작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금융권의 관측이다. 새 대표가 취임하면 2019년 12월 차남규 전 부회장 퇴임 이후 6년 만에 각자대표체제도 가동된다.
한화생명의 대표이사 체제 변화 가능성은 이전부터 제기돼 왔다. 한화생명은 최고경영자(CEO) 교체 과정에서 각자대표와 단독대표 체제를 번갈아 적용해 왔기 때문이다. 특히 각자대표체제일 경우 부회장(선임)과 사장(후임)이 함께 경영을 맡다가 선임이 물러나는 방식이 반복됐다.
이 때문에 2023년 9월 여승주 대표가 부회장으로 승진한 이후 김 사장이 자연스레 대표에 오를 수 있다는 관측도 힘을 얻었다. 여승주·김동원 각자대표로 운영되다가 여 부회장이 물러나고 김 사장이 단독으로 회사를 이끄는 식으로 리더십 승계가 이뤄질 수 있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이번 인사에서 김 사장의 이름은 빠졌다. 게다가 과거와 달리 선임과 후임을 구분하지 않고 동시에 각자대표로 내정했다. 한화생명의 최고경영자 교체 공식도 깨진 셈이다.
지금까지 한화그룹의 승계 움직임에 비춰볼 때 김 사장은 사실상 금융 계열사를 물려받을 것으로 유력하게 점쳐진다. 이에 금융권에서는 여러 요인을 고려해 김 사장의 대표 선임을 유예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제기된다.
일단 한화생명은 한화손해보험, 한화자산운용 등 금융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고 손익 규모나 업계 위상 등 측면에서 그룹 내 존재감이 남다르다. 여기다 보험업은 금융당국의 감독을 받는 고도의 규제 산업이다. 오너 3세의 대표이사 등판 자체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승계와 관련해 불필요한 잡음을 만들지 않겠다는 김승연 회장의 철학에서도 이유를 찾을 수 있다. 김 사장은 2023년 2월 최고글로벌책임자(CGO) 자리에 오른 뒤 인도네시아 노부은행 지분투자 등 해외사업에서 존재감을 키우고 있는데 경영능력을 두고 안팎에서 인정받으려면 시간이 좀 더 필요하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실제로 신임 대표에 내정된 권 전 부회장은 카이스트 박사 출신으로 그룹에서 인수합병(M&A), 미래 신사업 발굴 등을 담당한 경험이 있어 김 사장의 해외사업 확대 등을 지원할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 여승주 부회장이 단순히 자리에서 물러난 것이 아니라 그룹 경영지원실장으로 이동하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 사장의 경영권 승계 구도와 맞닿아 있다고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향후 김 사장의 공식 등판 시기와 방식, 조직 재정비 등을 보다 정밀하게 조율할 수 있는 위치로 옮겼다는 분석이 나온다.
여 부회장은 김 사장의 경영 멘토 역할도 오랜 기간 맡아왔다. 김 사장이 2015년 한화생명에 합류한 뒤 줄곧 손발을 맞춰온 데다 여 부회장과 김 사장은 한화그룹 경영기획실에서 함께 근무한 적도 있다.
한화그룹은 여 부회장의 그룹 이동과 관련해 승계 구도와는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한편 한화생명 대표로 내정된 권 전 부회장은 카이스트 박사 출신으로 40년 동안 한화에너지, 한화토탈에너지스, 한화오션 대표이사 등 주요 보직을 거친 전문 경영인이다. 이경근 사장은 정통 보험영업 전문가로 풍부한 영업현장 경험을 갖췄다. 한화생명 기획실장, 보험부문장 등을 지냈고 2022년 11월 한화생명금융서비스 대표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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