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융감독원이 증권사의 '캡티브 영업' 관행에 본격적으로 메스를 대기 시작했다. 지난 3월부터 현장검사에 착수해 기업금융부서를 대상으로 회사채 관련 방대한 자료를 요구하고 있다. 그간 증권사들은 계열사나 타 부서를 동원해 회사채 수요예측에 참여시키는 방식으로 주관 업무를 따내는 '캡티브 영업'을 관행처럼 여겨왔다. 하지만 이는 시장의 유통금리를 왜곡시키고, 투자자 판단을 흐릴 수 있다는 점에서 고질적인 병폐로 지적돼 왔다. 이상 거래가 적발된 발행사와 주관사를 추적해 유통 거래 내역을 분석하고 문제가 시장에 미친 영향을 짚어본다.
[딜사이트 배지원, 이소영 기자] 금융감독원이 회사채 수요예측 시장을 교란한 이른바 '캡티브 영업'에 대한 검사를 시작하면서 업계에서는 주관 실적 상위의 대형사들이 그 타깃이 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이 증권사들이 대표주관사로 참여한 거래가 완료된 후 유통시장에서는 발행가격 이하로 채권이 시장에 쏟아지며 '수수료 녹이기' 정황도 포착된다는 지적이다.

18일 금융투자협회 채권정보센터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유통된 회사채 가운데 발행 직후 액면가(1만원) 이하로 거래된 사례가 다수 확인됐다. 일부 증권사가 주관사로 참여해 받은 수수료를 활용해 회사채를 손실을 감수한 가격에 시장에 내놓은 정황으로, 이 같은 거래는 통상 '이상거래'로 분류된다. 시장에서는 이를 캡티브 수요에 기반한 왜곡된 거래로 보고 있으며, 대형 증권사들이 배후에 있다는 지적이다
시장에서는 KB증권, NH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 등 대표적인 채권발행시장(DCM) 상위권 증권사들이 이번 금융감독원 검사의 핵심 타깃이 될 것으로 본다. 이들은 치열한 리그테이블 경쟁 속에서 조직적으로 내부 물량을 동원한 수요예측 참여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고 있다.
리그테이블 수성에 부담이 큰 KB도 캡티브 수요를 동원한 정황이 포착됐다는 평이 나온다. 발행 직후 액면가 아래에서 거래된 회사채 사례도 일부 포착됐다. 발행사의 신용등급이 높은 우량채임에도 발행 직후 손실이 발생했다는 점에서, 수수료를 녹여 매각한 흔적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다만 업계에서는 "발행사에게 캡티브 물량 제시를 요구받는 구조 속에서 KB는 확정적인 물량 기입을 피하고 미온적인 태도를 보여왔다"고 말했다. 한 증권사는 "최대한 협조한다는 수준의 답변이면 검사 과정에서 큰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아직 '그레이 존'에 해당하는 거래를 금감원이 어떻게 해석할지는 알 수 없다"고 설명했다.
NH도 올해 DCM 부문 1위를 노리는 상황에서 공격적인 회사채 영업 전략을 펼쳤다는 평가를 받는다. 업계에서는 가장 적극적인 캡티브 영업을 수행한 주관사 중 한 곳으로 NH를 지목하기도 한다. NH가 단독 주관한 롯데물산은 발행 직후 9973원에 거래되면서 수수료 녹이기 정황이 엿보이는 이상 거래로 포착됐다. SK지오센트릭도 발행 직후 9986원에 거래된 내역이 발견됐다.
NH는 지난해 종합검사를 이미 마쳤다는 점에서 방어 논리를 가지고 있다는 입장이다. 캡티브 영업 행태가 극심하다는 평가를 받는 시기에 검사를 받으면서도 문제없이 검사를 마쳤다는 것이다. NH 관계자는 "종합검사 당시 문제 소지가 있는 거래에 대해 모두 소명을 완료했고, 이번 검사도 자신있다"고 밝혔다. SK지오센트릭 건에 대해서는 "경영권 매각 이슈로 인해 손실을 보고 시장에 판 것"이라고 해명했다.
한투도 금융감독원 검사를 받고 있다. 같은 시기 검사를 받기 시작한 신한투자증권은 이미 지난주 목요일 검사가 완료됐으나, 한투에 대한 검사는 연장되는 양상이다. 한투는 업계 최대 규모 발행어음 잔액을 보유하고 있어 회사채 투자 여력도 크다는 평가다.
업계 4위로 올라선 신한 역시 유사한 정황이 포착됐다. 이 회사는 SK가스 발행에 주관사로 참여했는데, 해당 채권은 발행 후 한 달이 채 되지 않은 시점에서 9984원 수준에 거래됐다. 역시 수요예측에 참여한 물량이 손실을 감수하고 시장에 나온 것으로, 수수료 녹이기 의심을 받고 있다.
금감원은 증권사들에 수요예측 제안서(RFP), 실제 참여 물량 내역, 계열사 및 타 부서의 참여 현황 등 관련 자료 제출을 요구한 상태다. 특히 제안서에 내부 물량을 확정적으로 기입했거나, 실제 수요예측에 참여한 이력이 있을 경우 검사를 피하기 어렵다는 관측이다.
캡티브 영업에 대한 금감원 검사를 두고 증권사들은 각자 방어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시장 참여자 전반의 낮은 문제의식이다. 한 DCM 부서 관계자는 "수수료 수익을 내부 부서에 보전해주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으며, 해당 물량을 유통시장에 내놓지 않고 보유한다면 시장을 왜곡하는 것도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수수료 수익 배분을 내부 거래로 치부하는 분위기도 여전하다.
이 같은 인식은 수요예측 시장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훼손하고 있다는 비판으로 이어진다. 업계 관계자는 "연기금, 보험사 등 주요 기관투자자들이 수요예측 참여를 꺼릴 정도로 시장 신뢰가 흔들리고 있다"며 "발행 확정금리와 유통금리 간 괴리가 심화되면서 수요예측 제도가 사실상 무력화됐지만, 이번 검사를 계기로 바로잡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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