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딜사이트 김주연 기자] 30여년 동안 이수페타시스 회장 자리를 지켜온 김상범 이수그룹 회장이 여전히 견고한 지배력을 유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수그룹의 승계 시점에 관심이 쏠린다. 지주사 이수를 정점으로 한 김 회장 중심의 수직 지배구조가 확고하지만 최근 장남 김세민 이수 사업총괄기획실장이 조금씩 경영수업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주요 계열사에서 자녀들의 지분율은 1%에도 못 미치고 있어 지분 증여세 마련 등의 어려움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일각에서는 지난해 이수페타시스의 제이오 인수건이 승계 작업의 일환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업계에서는 제이오 인수건이 물 건너가면서 김 실장이 최근 스핀오프한 이수스페셜티케미컬을 통해 본격적인 승계를 이어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수그룹은 김 회장을 중심으로 하는 옥상옥 수직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김 회장→이수엑사켐→이수→이수화학·이수페타시스→이수건설·이수앱지스 등으로 이어지는 체계다. 지주사인 이수의 경우 김 회장이 26.56%를, 나머지 73.44%는 판매법인인 이수엑사켐이 차지하고 있다. 이수엑사켐의 지분 100%가 모두 김 회장의 소유인 만큼 실질적으로 김 회장이 이수의 지분 100%를 확보했다고 볼 수 있다.
반면 자녀들은 각 계열사에서 소량의 지분만을 보유해 그 영향력이 아직 미미한 수준이다. 이수가 최대주주인 상장사로는 이수화학, 이수페타시스, 이수스페셜티케미컬 등이 있다. 김 회장의 자녀들은 각 회사에서 1%도 되지 않는 지분을 갖고 있다.
이수페타시스의 경우 특수관계인들의 지분을 합산하면 총 26.59%에 달한다. 지주사인 이수(21.19%) 외에 특수관계인으로는 김 회장의 배우자인 김선정 씨(4.27%), 김 회장(0.90%), 김성민 이수페타시스 부회장(0.16%), 김 회장의 장남인 김세민 이수 사업총괄기획실장(0.07%), 차남인 김세현 씨(2000주 보유, 0.00%)가 있다. 반면 최창복 이수페타시스 부사장 대표이사는 지분을 전혀 보유하고 있지 않다.
김 회장은 지주사 이수를 통해 이수페타시스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하지만 경영에는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고 있다. 김 회장은 1998년부터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으나 미등기 임원으로, 최고의사결정기구인 이사회에도 참여하지 않고 있다. 이사회에는 근속 경력이 20년이 넘은 최 부사장과 오욱현 전무, 양원호 상무 등이 포함돼 있다. 하지만 김 회장은 핵심 계열사를 통해 수백억원대의 연봉을 받고 있다. 김 회장은 이수화학을 포함 3개 회사에서 총 200억7300만원의 보수를 받았다. 이수화학에서 퇴직금 138억3100만원을 포함해 161억2300만원을 받았고, 이수스페셜티케미컬과 이수페타시스에서 각각 14억4000만원과 25억1000만원을 받았다.
자녀인 김세민 실장과 김세현 씨는 보유한 주식의 수가 매우 적고 둘 다 이수페타시스에서 근무하지 않아 아직까지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김세민 실장은 이수에서 근무하며 올해 정기임원 인사에서 사장으로 승진했고 김세현 씨는 구체적인 계열사는 알려지진 않았지만 이수그룹 내에서 근무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김 실장은 조용하고 내성적인 성격이며 8~9년 전 그룹에 사원으로 합류해 단기간에 실장까지 올랐다.
업계에서는 "김 회장이 아직 건재하고 자녀들의 지분이 미미한 수준인 만큼 본격적인 승계 절차가 시작됐다고 판단하기는 어렵다"면서 "김세민 실장과 김세현 씨의 나이가 각각 1989년생, 1998년생으로 가업을 이어받기에는 시기상조라는 평가도 나온다"고 밝혔다.
이수화학의 자회사인 바이오그룹 이수앱지스에서 김세민 실장은 0.02%, 김세현 씨는 0.00%(318주)를 보유하고 있다. 반면 이수화학의 경우 김세현 씨가 0.14%의 지분을 확보해 김세민 실장(0.05%)보다 많은 비율을 차지한다. 이수스페셜티케미컬에서도 김세현 씨(0.09%)가 김세민 실장(0.05%)보다 더 많은 지분을 소유 중이다. 이수그룹 내부에서는 김세민 실장이 김 회장의 뒤를 이어 회사를 이어받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수스페셜티케미컬이 그룹의 미래의 핵심 신사업인만큼 김 실장이 직접 넘어가 회사를 경영하면서 급여와 배당을 받아 승계 자금을 마련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일각에서는 지난해 논란이 됐던 이수페타시스의 제이오 인수건도 승계 계획의 일환이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승계를 고려해 인수합병을 추진하는 기업 사례가 있는 만큼 이수페타시스의 제이오 인수도 유사한 맥락으로 볼 수 있다는 시각이다. 이수페타시스는 지난 2월 제이오가 주식매매계약(SPA)을 위반했다는 사유로 인수 계약을 철회한 상황이다.

실제 지난해 11월 이수페타시스가 제이오 인수를 발표하자 고다층인쇄회로기판(MLB)를 제작하는 이수페타시스와 전지소재사업을 운영하는 제이오 간 사업 시너지를 창출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이수페타시스는 탄소나노튜브 사업을 하는 제이오를 통해 사업 영역을 확장하고 신성장 동력을 확보하겠다고 설명했지만 설득력이 부족했다.
업계에서는 승계를 염두에 두고 인수합병을 진행하는 기업 사례가 적지 않은만큼 기업가치가 하락한 회사들이 인수 대상이 제이오도 이런 사례일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중소기업뿐 아니라 대기업에서도 승계를 염두에 두고 인수합병을 추진하는 경우가 많다"며 "오히려 시장이 침체기일 때 이런 작업에 착수하는 경향이 있다"고 전했다. 이어 "당시 2차전지 분야에서 소재사들의 실적이 악화되면서 기업가치가 낮아지는 상황이었다"며 "자금력을 갖춘 기업들 사이에서 2차전지 기업들에 대한 인수합병(M&A) 움직임이 관측되기도 했고 이수그룹의 제이오 인수도 그중 일부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이수그룹 내 2차전지 사업을 담당하는 이수스페셜티케미컬이 존재함에도 이수페타시스가 인수를 주도한 점에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다. 업계에서는 김 회장이 제이오 내부자와 친분이 깊고 유상증자를 통한 자금 조달과 주가 방어가 용이할 것으로 예상되는 이수페타시스를 활용해 인수를 추진했다는 분석이다. 이수페타시스는 당시 인공지능(AI) 열풍과 함께 성장 잠재력이 큰 종목으로 주목받았다. 2021년 8월 진행했던 689억원 규모의 유상증자가 88%의 청약률로 성공한 전례도 갖고 있다.
다른 업계 관계자는 "이수그룹에 2차전지 관련 사업이 이미 존재하는 만큼 그룹 전체 차원의 시너지를 고려했을 것"이라며 "그중에서도 주가 상승세가 두드러지고 과거 유상증자 시에도 안정적인 실적을 보여준 이수페타시스를 통해 인수 딜이 진행된 것으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한편 회사 측은 "제이오 인수로 플랜트 기업을 계열회사로 편입해 이수화학과 이수스페셜티케미컬 등의 공장 신설·증설 시 비용 절감 등의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다"며 "이수건설의 플랜트 부문 역시 제이오의 경험을 통해 전문성을 강화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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