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송한석 기자] 서강현 현대제철 대표가 지난해 후판에 이어 열연강판 반덤핑 제소에도 나서며 결단력에 높은 평가가 나온다. 포스코 등 다른 철강사가 중국, 일본 등과의 관계를 고려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은 가운데 현대제철이 총대를 멨다는 이유에서다. 업계에서는 현대제철이 그룹 내 자동차, 건설 등 전방산업을 영위하는 현대자동차, 현대건설 등이 있어 철강 제품을 일부분 판매할 수 있는 만큼 서 대표가 과감한 결정을 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마이 타다시 일본 철강연맹 회장이 지난해 12월 25일 기자회견에서 철강 수입재에 대한 규제를 검토한다고 밝히면서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현대제철이 반덤핑을 결정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해당 기자회견이 열린 만큼 해당 반덤핑을 고려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에서다. 이렇게 될 경우 보복관세 우려로 후판과 달리 열연강판 반덤핑 제소 과정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현대제철은 지난해 12월 19일 산업통상자원부 무역위원회에 중국산·일본산 열연강판 대상 반덤핑을 신청했다고 밝혔다. 반덤핑은 국내 산업의 보호를 목적으로 덤핑업체나 덤핑국가의 수출품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는 조치다. 현대제철이 반덤핑 제소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7월에는 중국산 후판에 대한 반덤핑 카드를 꺼내 현재 무역위 조사 중에 있다. 이후 5개월 만에 다시 제소를 결심했다.
서강현 대표가 두 번에 걸쳐 반덤핑을 결정한 것은 다른 나라의 후판과 열연강판이 밀려 들어오며 수익성이 악화했기 때문이다. 한국철강협회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11월까지 열연강판 수입량은 약 343만톤이다. 중국산과 일본산이 각각 153만톤과 177만톤으로 전체의 96.2%를 차지하고 있다. 중국산 제품 기준 열연강판과 후판의 국내 유통 가격은 국산보다 톤당 10만원~20만원 정도 저렴한 것으로 전해진다.
현대제철의 사업부는 크게 판재사업본부와 봉형강사업본부로 나뉜다. 이 가운데 판재사업본부가 열연, 냉연, 후판, 자동차소재 등을 담당하며 전체 매출의 과반 이상을 웃돈다. 실제 지난해 3분기까지 판재사업본부의 매출은 12조6749억원으로 전체 매출의 63%를 차지했다. 즉 열연강판과 후판의 가격경쟁력을 위해 서강현 대표가 반덤핑 제소를 결정한 것으로 분석된다.
눈길이 가는 부분은 서강현 대표가 과감한 결단력으로 반덤핑 제소에 나선 점이다. 철강은 국가산업인 만큼 중국 등 다른 나라와의 관계를 고려할 수밖에 없고 국내 최대 철강사인 포스코도 이러한 이유로 반덤핑을 신중하게 고민하는 등 막대한 부담이 가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서강현 대표가 그룹에 기아, 현대차, 현대건설 등 전방산업인 건설, 자동차 사업을 영위하는 계열사가 많은 만큼 이러한 결단력을 보일 수 있었을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실제 지난해 3분기까지 현대제철의 특수관계자와의 재화 판매로 인한 수익은 2조5513억원에 달한다. 결국 철강업은 전방산업에 제품을 팔아야 수익을 낼 수 있는데 전방산업이 그룹 내 여러 곳이 있는 데다 서강현 대표가 현대제철과 현대차의 최고재무책임자(CFO)를 거치면서 해당 산업의 생리를 잘 이해할 수 있었다는 분석이다.
일각에서는 현대제철이 중국 의존도를 줄이게 되면서 반덤핑 제소에 적극적일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그룹 내 맏형인 현대차가 중국 베이징 1공장 및 충칭 공장을 매각하는 가운데 추가 공장 매각도 계획하면서 중국 대신 인도 등 다른 시장을 공략하는 것을 계기로 현대제철도 비슷한 양상을 보이기 때문이다. 현대제철은 지난해 3월 충칭법인, 6월 베이징법인을 매각하며 대표적인 매출 법인이 톈진 하나만 남았다. 사실상 중국 사업 정리에 나선 셈이다.
철강업계 한 관계자는 "반덤핑 제소를 하려면 중국과의 관계를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며 "현대제철의 경우 현대차가 빠지면서 중국에서 발을 빼고 있어서 반덤핑에 적극적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현대제철의 열연강판 반덤핑 제소가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일본 이마이 타다시 철강연맹 회장이 기자회견에서 수입 철강재에 대한 규제를 언급했기 때문이다. 현대제철의 반덤핑 제소는 12월 19일에 공식화됐다. 이마이 타다시 회장의 기자회견은 6일 뒤인 25일이다. 즉 6일 만에 규제를 언급한 만큼 열연강판 반덤핑의 영향이 어느 정도 있지 않겠냐는 게 시장의 시각이다.
이럴 경우 보복관세에 대한 우려가 나오다 보니 산업부의 상세한 조사로 열연강판 반덤핑 제소 과정이 후판과 달리 복잡해질 가능성이 점쳐진다. 산업부가 조사 개시 전에 포스코 등 국내 다른 철강사로 질의서를 보낸 후 철강사가 동의하지 않는다면 조사가 개시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제철 관계자는 "현대자동차그룹과의 관계보다는 우리나라의 철강 생태계를 보호하기 위한 적극적인 조치"라며 "자사는 상당히 오래전부터 반덤핑 제소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이어 "철강은 안정적인 공급이 중요한데 철강업이 무너지면 가격은 비싸지고 물량을 구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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