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① 임차인은 임대인의 동의 없이 그 권리를 양도하거나 임차물을 전대하지 못한다.
② 임차인이 전항의 규정에 위반한 때에는 임대인은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딜사이트 박안나 기자] 임대차 계약에서 임차권의 양도 및 임차물의 전대가 제한됨을 명시한 민법 제629조 내용이다.
1항은 임대인이 동의하지 않은 임차권 양도 및 전대행위를 위법으로 규정하며, 2항에서는 1항의 위반을 임대차 계약 해지 사유로 보고 임대인이 계약 해지를 요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는 전세, 월세 등 임대차 계약의 종류나 주택, 상가 등 대상 물건의 종류와 관계없이 모든 임대차 계약에 적용된다.
쉽게 주택 전세계약을 예로 들어 풀어보면, 전세로 거주 중인 세입자(임차인)가 집주인(임대인)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전셋집을 타인에게 빌려주는 '전대'행위가 금지된다는 뜻이다. 그리고 집주인은 세입자의 전대 혹은 임차권 양도를 이유로 전세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어찌 보면 너무 당연한 이야기다. 집에 대한 모든 권리는 원래 집주인에게 있지만, 임대차 계약에 따라 그 집에 거주할 수 있는 권리만 계약기간 동안 세입자에게 잠시 발생하기 때문이다.
임차권 외에 집과 관련한 다른 모든 권리는 여전히 집주인이 지닌다. 세입자에게는 자신의 권리를 타인에게 넘기는 것조차 집주인 동의 없이는 허용되지 않는다.
대리인을 내세우는 현대사회의 자유민주주의 아래에서 대리인이 행사할 수 있는 권한 역시 임대차 계약에서 임차인이 지니는 권리와 유사하다.
국민이 집주인(임대인)이라면 대통령, 국회의원 등 대리인은 세입자(임차인)인 셈이다. 임차인이 임대인 동의 없이 임차권 양도 및 전대행위를 할 수 없듯,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역시 권한을 임의로 위임할 수 없다.
윤석열 대통령이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대국민 담화에서 소속 정당에 권한을 일임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은 임대차 계약에서 임차인의 불법 전대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대통령은 행정부의 수반인 동시에 국가원수의 지위를 갖는다. 그에 따라 국군통수권, 국제 조약의 체결‧비준권 등 막강한 권한을 여럿 지니게 된다.
하지만 대통령이라는 지위와 그에 따라 발생하는 모든 권한은 선거를 통해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것이다. 대통령은 임기 5년간 국민이 부여한 다양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지만, 대통령의 지위 및 권한을 임의로 넘길 수는 없다.
'질서있는 퇴진'을 내세우며, 대국민 공동담화를 통해 대통령의 직무 배제 및 대통령 권한 위임 등 방안을 내놨던 한동훈 국민의힘 전 대표와 한덕수 국무총리는 대통령의 위법 행위에 동조한 꼴이 됐다.
실제로 대통령 대국민 담화와 여당‧총리의 대국민 공동담화 이후, 대통령의 권한을 위임하는 것에는 위헌의 소지가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었다. 대한민국 헌법 제71조에 따르면 국무총리 등의 권한대행 체제가 출범할 수 있는 상황을 대통령의 궐위 또는 사고 등으로 인해 직무 수행이 불가한 때로만 제한하고 있어서다.
민법 제629조는 임대인을 보호하기 위해 임대인 동의를 구하지 않고 행해지는 임차권 양도 및 전대차 계약을 법으로 간주한다. 헌법 제71조에서 대통령의 권한을 임의로 위임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도 국민의 주권을 보호하기 위함일 것이다.
세입자는 집주인이 아니다. 잠시 그 집에 머물 뿐이다. 국민이 선출한 대리인 역시 마찬가지다. 국민이 부여한 막강한 권력에 취해 국민이 주인임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한 기본 원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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