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박민규 기자] 한국 조선사들이 15조원 규모의 호주 호위함 확보 사업(SEA 3000) 입찰에서 탈락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당사자들은 물론 필자 조차 당혹스러웠다. 'K-방산'의 성장세가 매섭다는 소식이 주였던 만큼 실패에 익숙하지 않은 까닭도 있다. 그러나 SEA 3000의 경우 최소 숏리스트엔 오를 것으로 예상됐었다.
탈락 사유는 더욱 황당하다. 정부의 필요 이상으로 긴 보안 심사에 서류 제출이 지연됐기 때문이라고 한다. 호주가 1만장에 달하는 서류를 요구했다고 한들 수년에 걸쳐 입찰을 준비하는 업체 입장에서 불가한 미션은 아니니 이런 정부 탓도 그럴싸하다. 하지만 정말 늦은 서류 제출이 패착일까.
SEA 3000은 10년간 110억달러(약 15조4000억원)를 투입해 신형 호위함 11척을 도입하는 사업으로, 특수선·방산 업계 통틀어 올해 하반기 숏리스트를 추리는 해외 사업들 중 최대 규모다. 우리나라에선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이 출사표를 예고했다. 세계적으로 우수한 수준의 건조 역량과 가성비를 보유한 만큼 숏리스트에 이름을 올리는 일은 어렵지 않게 전망됐다.
이들 회사가 호주에 들인 공이 상당하다는 점도 기대 요소였다. 호주의 현지 생산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합작사 설립이나 조선소 건설 등 투자까지 검토해 왔다. 특히 한화는 오스탈의 인수 거부 등 굴욕에도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러브콜을 보내 왔고, 한화오션 경우 SEA 3000 수주를 전제로 2030년 매출액 3조원 목표를 세운 터다. 그러나 호주는 최종 후보로 일본과 독일을 지목했다.
국내 업체들이 기본을 어긴 것은 맞다. 다만, 늦은 서류 제출이 패인이라는 분석은 여전히 석연치 않다. 이후 방위사업청이 "유관 기관들과의 협조를 통해 (입찰 업체의) 기한 내 서류 제출을 적극 지원했다"고 정면 반박했다. 서류 제출이 늦은 것은 사실이지만 결정적인 실책이 아니며, 일본과 독일 등 경쟁국이 호주와 맺고 있는 긴밀한 관계나 전략을 살펴봐야 한다는 게 업계의 지적이다.
실제 독일은 호주에서 운용해 온 안작급 호위함을 만든 당사국이라는 점에서 유리하고, 일본 경우 호주와 오랫동안 밀월 관계를 구축해 왔다. 이러한 이유로 업계에서는 특히 일본 미쓰비시중공업의 승리를 전망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업계는 특히 일본의 '절충 교역' 제안에 주목하는 분위기다. 절충 교역이란 무기 수출의 반대급부로 관련 기술을 이전하거나 상대국 물자를 수입하는 조건부 거래를 의미한다. 이번 수주전에서 우리 정부는 반대급부로 제시할 만한 뭔가가 딱히 없었다는 게 업계 전언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방산 수출, 특히 SEA 3000 같은 '조 단위' 사업은 국가 대 국가의 절충 교역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은 만큼 함정 사업에는 함정, 탱크 도입 사업에는 탱크 이렇게만 접근할 게 아니라 우리가 어떤 것을 줄 수 있는지 국가 전략적으로 고민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수주전은 얼마든지 실패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수주전 참패는 K-방산의 현실을 보여 준 사례라는 시각도 나온다. 비싼 학습 효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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