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생태계가 혹한기를 맞았다. 신규 펀딩(자금 조달) 라운드별로 서너배씩 치솟던 기업가치는 이제 두배수 가치를 인정받기도 쉽지 않다. 거품이 빠지고 옥석 가리기의 시간이 도래했다는 평가다. 내실이 중요해진 시점. 기업의 안살림을 도맡는 최고재무책임자(CFO)의 역할이 주목받고 있다. 겨울나기에 나선 스타트업 CFO들의 생존전략을 들여다본다. [편집자주]
[딜사이트 최양해 기자] "올 상반기 목표가 생존이었다면, 앞으로는 성장에 집중하고자 합니다. 수익을 내면서 성장하는 기조로 체질을 개선했으니 성과지표를 만드는 데 주력할 예정이에요. 자금 조달은 당장 급한 건 아니지만 다음 라운드에선 적정 기업가치를 인정받는 펀딩을 추진할 겁니다".
문명재 스푼라디오 CFO(사진)는 14일 팍스넷뉴스와 만난 자리에서 이 같이 말했다. 그는 스푼라디오가 올 들어 흑자전환에 성공한 비결로 '고정비 지출 감소'를 꼽았다. 특히 마케팅 비용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도록 통제한 것이 주효했다고 설명했다.
스푼라디오는 실시간 오디오 방송 플랫폼 '스푼'을 운영하는 회사다. 스푼은 영상 대신 음성에 집중하는 전략으로 MZ세대(1980년 이후 출생)의 호응을 얻고 있는 서비스다. 지난달 기준 월 평균 100만명의 이용자를 끌어 모으며 '오디오계 유튜브'로 불린다.
올 들어선 3분기 연속(1~9월)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이 기간 스푼라디오는 누적 매출 340억원, 영업이익 40억원을 올렸다. 지난해 연간 영업손실이 200억원임을 고려하면, 1년 새 영업이익률을 눈에 띄게 개선한 셈이다.
문 CFO는 "그동안 공격적인 자금 조달과 마케팅을 앞세운 적자 성장 전략을 편 것이 회사의 재무 부담을 가중 시켰다"며 "올해는 고소득 디제이(DJ) 확보 등 콘텐츠 품질 개선에 자금 역량을 집중한 결과 영업이익을 실현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1981년생인 문 CFO는 10년 넘게 투자은행(IB) 업계에 몸담은 베테랑이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학교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뒤 2008년부터 IB 경험을 쌓았다. 커리어 대부분을 스위스계 글로벌 IB인 UBS에서 보내며 상무 자리까지 올랐다. 업계에선 인수합병(M&A), 기업공개(IPO), 투자금 조달 등 여러 방면에 강점을 지닌 재무 전문가로 통한다.
그가 스푼라디오에 합류한 건 올해 7월이다. 오랜 지인이자 알토스벤처스 투자심사역이 재무 전문가를 찾고 있던 스푼라디오에 문 CFO를 소개시켜주며 가교 역할을 했다. 알토스는 스푼라디오의 전신인 마이쿤 시절부터 투자를 단행한 주요 재무적투자자(FI)다. 스푼라디오 입장에선 알토스로부터 자금 조달뿐만 아니라 C레벨 인재 영입까지 도움을 받은 셈이다.
문 CFO는 스푼라디오 합류 후 본인의 역할이 '에쿼티 스토리(상장 청사진)'를 잘 만드는 일이라고 판단했다. 투자자들에게 스푼의 매력도를 어떻게 어필할지를 고민하고, 재무적으로는 펀더멘탈(기초체력)을 탄탄히 다지는 걸 목표로 삼았다.
그는 "10여년의 IB 경험을 바탕으로 투자자와 피투자기업 모두가 납득할 만한 딜 구조를 짜고, 유의미한 숫자를 만드는 데 집중할 계획"이라며 "올해는 수익성을 입증했으니 내년엔 캐스트(녹음방송), 라이브방송, 토크 등 새로운 수익 서비스를 활성화하는 데 주력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또 이를 위해 사업 일선 부서들과 협업을 강화하겠다고 했다. 마케팅과 사업 개발을 담당하는 부서에서 상품을 개발하면, CFO로서 재무적 리스크를 줄이는 데 집중하겠다는 취지다. 가설 검증을 통해 어떻게 매출을 늘릴지, 고객 당 평균 매출은 어떻게 끌어올릴지, 고객 이탈률은 어떻게 최소화할지를 함께 고민하겠다는 게 문 CFO의 생각이다.
해외 시장 공략에도 속도를 내겠다고 밝혔다. 일본, 중동, 미국 등 기존 진출한 해외 서비스 지역 내 인지도를 더욱 끌어 올린다는 계획이다. 스푼라디오는 현재 일본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전체 해외 시장 이용자 가운데 절반을 일본이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높다.
문 CFO는 국제 환율이 안정되면 스푼의 해외 영업이익 성과가 더욱 개선될 여지가 있다는 분석도 내놨다. 현재 주요 시장인 일본에서 엔저(엔화 가치 하락) 영향으로 수익이 줄어든 상황이기 때문이다. 반면 해외 서버나 클라우드 비용으로 지불하는 돈은 값어치가 급등한 달러로 치른다. 마진을 내기 불리한 환차손 조건임에도 불구하고 흑자를 기록하고 있는 셈이다.
문 CFO는 "올 들어 수익을 내며 성장하는 기조가 정착되며 회사 재무구조가 상당 부분 안정됐다"며 "신규 수익 모델이 성공적으로 연착륙하고, 환차손 조건이 우호적으로 돌아설 경우 현재보다 가파른 영업이익 성장세도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현재로선 오디오 소셜 플랫폼 확장과 관련한 적당한 합병 대상 기업이 없어 M&A를 검토하고 있지는 않다"며 "향후 충분한 자금 여력이 있고, 매력적인 매물이 시장에 나온다면 M&A를 적극적으로 검토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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