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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공·한국이동통신' 인수, 누구 덕?
권준상 기자
2019.12.12 08:45:38
⑤ 노태우 전 대통령 권력행사 전·후 거래…"故 최종현 전 회장 인맥 영향 더 커"
이 기사는 2019년 12월 11일 17시 47분 유료콘텐츠서비스 딜사이트 플러스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딜사이트 권준상 기자]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이 최태원 회장의 ㈜SK 보유지분 중 42.3%를 요구한 배경에는 노 관장이 SK그룹(당시 선경) 성장에 직·간접적인 도움을 줬다는 인식이 한 몫한 것으로 보인다. SK그룹 성장 시기가 노 관장의 부친 노태우 전 대통령이 권좌의 핵심부에 있었던 시기와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SK그룹 성장에는 그룹의 핵심축으로 부상한 정유와 통신이 양대 산맥으로 자리한다. 대한석유공사(옛 유공)와 한국이동통신(옛 SK텔레콤)을 인수하면서 그룹 규모가 급속하게 커졌다. 이로 인해 당시는 물론 현재까지도 SK그룹이 인수합병(M&A) 과정에서 특혜를 받은 것 아니냐는 의혹이 자리하고 있다. 두 회사 인수시기가 최태원 회장의 장인 노태우 전 대통령 집권 전후로 맞물려 있다. 직접적 도움을 받지 못했더라도 다양한 방법으로 SK그룹에 힘을 실어줬을 수도 있다. 노소영 관장이 최태원 회장에게 재산분할과 관련해 지주사인 (주)SK 지분의 일부를 요구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당시 정권 관계자들은 각종 에세이와 언론 인터뷰 등에서 SK그룹의 유공과 한국이동통신 인수가 노 전 대통령과 연관됐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1980년 매출 1조원 규모의 유공 인수전에 삼성을 포함한 주요 대기업들이 뛰어들었다. 상대적으로 기업 규모에서 뒤지는 선경이 인수자로 선정되면서 재계 안팎의 입방아에 올랐다. 당시 선경은 매출 기준 재계 순위 20위권에 그쳤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이 시기 보안사령관으로 있었다. 


최동규 전 동력자원부 장관은 지난 1999년 김대중 정부시절 역대 장관들의 글을 모아 펴낸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에서  "유공을 선경에 넘기게 한 사람은 보안사령관이었던 노태우야"라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발언을 소개하기도 했다.  


최종현 SK그룹 선대회장이 내한한 사우디아라비아 야마니 석유상과 자리를 함께 하고 있는 모습.(사진=SK그룹)

하지만 당시 시대적 배경을 고려할 때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지만 SK그룹이 노 전 대통령의 입김만으로 두 회사를 인수했다고 단정할 수만은 없다. SK그룹의 유공인수는 이전부터 치밀하게 추진했던 거래였다. 고(故) 최종현 선대 회장은 1970년대 초 '석유에서 섬유까지' 수직계열화를 기치로 유공 인수를 위해 그룹 내 태스크포스팀(TFT)을 조직하는 등 사활을 다했다. 직접 TF팀을 진두지휘해 인수전에서 승리했다. 유공 지분 50%를 보유한 미국 걸프사의 철수설이 돌면서 발 빠르게 움직인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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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최종현 전 회장의 남다른 인맥이 작용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당시 사우디아라비아가 석유패권을 쥐고 있어 사우디아라비아와 친분이 원유조달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고, 선경그룹은 여기에 강점이 있었다는 설명이다. 최 전 회장의 인맥이 사우디아라비아 왕가와 닿아 있었던 덕분이란 얘기다.  


1930년생인 선대 최종현 회장은 52년 서울대 농대를 수료하고 곧장 미국으로 건너가 59년까지 미국 위스콘신대와 시카고대 대학원에서 잇따라 수학했다. 시카고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 과정을 밟던 시기 중동지역 인사들과 각별한 네트워크를 형성했고, 이를 바탕으로 선경그룹을 이끌면서 사우디아라비아 왕가와 더 각별한 친분을 쌓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런 친분은 석유 파동이 일면서 부각됐다. 당시 우리나라는 이스라엘과 친교를 맺고 있었다. 다른 아랍국가와 적대관계였던 이스라엘과 친선은 석유수출이 중단되는 위기를 초래했다. 정부는 남다른 인맥을 보유한 최 전 회장에게 문제해결을 요청했다. 최 전 회장은 특사자격으로 야마니 장관을 만나 문제를 해결하는 동시에 그와 친분을 쌓는 성과도 얻게 된다. 야마니 장관은 최 전 회장에게 선경이 정유사업을 시작하면 다량의 원유를 공급하겠다는 구두약속도 받았다. 종합상사업을 영위하던 선경그룹이 이후 사우디아라비아와 국내 첫 장기원유공급계약을 체결하고 국내에 원유를 공급하는 계기가 됐다. 정부 역시 선경을 유공 인수자로 선정하게 된 배경 중 하나로 꼽힌다. 


80년 유공 인수를 기반으로 선경은 매출 3조원대의 재계 5위권 그룹으로 부상했다.  

 

SK그룹은 1994년 한국이동통신(현 SK텔레콤)의 최대주주로 경영에 참여하며 첨단 정보통신기술 분야에 본격 진출한다.(사진=SK그룹)

SK텔레콤의 전신인 한국이동통신 인수를 놓고도 말이 많다. 노 전 대통령이 집권하던 시절(88.2∼93.2) 중이었던 1992년 이동통신 민간사업자 선정이 발단이 됐다. 직전까지만 해도 통신산업은 정부 산하로 경쟁체제가 도입되지 않았다. 당시 정부는 이를 깨고 이동통신 민간사업자 선정에 나섰다.  민영화로 통신사업은 일약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불렸다. 경쟁 역시 치열했다. 선경을 포함해 포항제철, 코오롱, 동부그룹 등이 뛰어들었다. 각축전을 벌였지만 승자는 선경이었다. 노 전 대통령과 사돈관계인 선경은 각종 특혜논란에 휩싸였고, 결국 부담을 이기지 못한 선경은 사업권을 딴 지 일주일 만에 스스로 포기했다. 이후 사업자 선정은 차기 정권으로 넘어갔다.


새롭게 들어선 김영삼 정부(93.2∼98.2)는 제1이동통신인 한국이동통신의 민영화를 추진하는 동시에 제2이동통신 신규 사업자 선정에도 나섰다. 선경그룹은 다시 한 번 제2이동통신 사업자에 도전했다. 하지만 다시 한 번 고배를 마셨다.  정부가 사업자 선정을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에서 자율적으로 선정한다는 방침을 정했는데 당시 전경련 회장은 최 전 회장이 맡고 있었다. 자칫 특혜의혹이 재차 불거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결국 선경그룹은 스스로 제2이동통신사업권 도전에서 물러났다. 두 번째 고배였다. 


선경은 이후 시선을 돌려 한국이동통신 민영화 입찰에 도전한다. 1994년 초 선경그룹은 한국이동통신의 주식 24%(약 4370억원)를 인수하며 통신사업 진출의 꿈을 이룬다. 제2이동통신 사업자는 포항제철과 코오롱컨소시엄의 신세기이동통신이 선정됐다. 김영삼 정부 들어서 SK가 통신업에 진출한 것이다. 


신세기통신은 김대중 정부시절((98.2∼2003.2)인 지난 2000년 SK그룹에 피인수됐다. SK그룹은 신세기통신 인수로 독보적인 통신사업자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SK그룹이 장인인 노태우 전 대통령의 덕으로 성장했다고만 볼 수 없는 대목이다. 


현재 이혼 재판 중인 최태원 회장(60년 12월생)과 노소영 관장(61년3월생)은 1988년 9월 13일 결혼했다. 이들 커플은 미국 시카고 대학에서 수학중 교제를 시작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둘의 첫 만남은 노태우 전 대통령이 권좌에 오르기 직전에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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