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김주연 기자] "컴퓨텍스 자체의 성격이 PC 위주에서 인공지능(AI)으로 바뀌었습니다. 앞으로는 아시아의 CES가 될 것이란 생각도 듭니다."
대만 타이베이에서 열린 '컴퓨텍스 2026'에서 만난 한 한국 기업 관계자는 이같이 말하며 "3년 전까지만 해도 마더보드, PC 관련 업체가 대다수였지만 이제는 PC 자체가 AI가 되면서 AI 비중이 더 늘었다"고 말했다.
기자가 찾은 컴퓨텍스 2026 현장은 더 이상 전통적인 PC 부품 전시회에 머물러 있지 않았다. 행사 주제인 'AI Together'에 맞춰 부스 곳곳에는 AI라는 문구가 크게 걸렸다. 마더보드와 그래픽카드 같은 PC 부품 부스도 여전히 건재했지만 행사장의 시선은 AI 에이전트 PC와 서버랙, 로봇 등 AI 관련 제품으로 옮겨가고 있었다.
에이수스(ASUS)·MSI·에이서(Acer)·기가바이트 등 글로벌 PC 브랜드와 콴타·컴팔 등 세계 최대 제조자개발생산(ODM) 업체들이 집결한 대만답게 메인 전시장인 제1전시장 중심부에는 이들 업체의 대형 부스가 즐비했다. 오랜 기간 PC 공급망 생태계를 구축해 온 대만의 저력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풍경이었다.
다만 전시장 중심에 놓인 메시지는 과거와 달랐다. PC 자체보다 PC에 탑재되는 AI 기능이 전면에 배치됐다. AI PC가 기본 사양으로 자리 잡는 가운데 AI 에이전트를 탑재해 사용자의 작업을 스스로 수행하는 차세대 PC 경쟁이 본격화하는 모습이었다.
에이수스는 에이전틱 AI PC를 전면에 내세우며 부스를 꾸렸다. 업무공간 AI, 산업용 AI, 헬스케어 AI, 크리에이터 AI로 공간을 나눠 AI 에이전트를 위한 PC 제품들을 소개했다.
그중 '에이수스 어센트(Ascent) GX10'은 엔비디아 블랙웰과 DGX 스파크로 구동되는 데스크톱 AI 슈퍼컴퓨터다. AI 연구원과 개발자를 위해 최적화된 플랫폼으로 로컬 AI 개발을 지원한다. 이 제품은 컴퓨텍스 2026 베스트 초이스 어워드의 AI 컴퓨팅 및 기술 부문 상도 수상했다.
에이수스 관계자는 PC 산업에서 AI 수요가 확대되고 있는 만큼 AI 기능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 관계자는 "시장 수요 변화에 따라 AI 디바이스 공급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전환하고 있다"며 "AI 기술의 급속한 확산과 맞물리면서 에이수스도 AI 회사로의 전환을 꾀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대만의 대표 PC 업체인 MSI 역시 부스 정가운데에 AI 에이전트 기능을 강조하는 AI Edge 시리즈를 배치했다. 컴퓨텍스와 함께 성장해 올해 창립 50주년을 맞은 에이서도 AI 관련 PC 라인업을 전면에 내세웠다.
대표적인 PC 제조업체인 컴팔은 아예 AI 인프라에 힘을 실었다. 부스에는 AMD, 엔비디아와 컴팔이 협업해 구축한 컴퓨팅 플랫폼과 서버, 전력 등 AI 데이터센터 인프라 솔루션이 공개됐다. 전통적인 PC 제조사 부스였지만 정작 PC의 모습은 찾기 어려웠다.
이처럼 대만을 대표하던 PC 업체들까지 AI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컴퓨텍스의 성격도 빠르게 바뀌고 있다. 업계에서는 PC와 메인보드, 부품만으로는 더 이상 시장의 관심을 끌기 어려워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에이서 관계자는 "4~5년 전부터 컴퓨텍스나 PC 업체에서 AI를 강조하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AI를 붙이는 것도 생소했다"며 "최근 램 가격이 오르면서 PC 업계가 어려운데다 PC 부품만으로는 이슈화할 게 크게 없기 때문에 AI 행사로 변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컴퓨텍스의 변화는 PC에만 머물지 않았다. 행사장 곳곳에서는 다양한 로봇도 찾아볼 수 있었다. 산업용 로봇뿐 아니라 반려 로봇과 간호 로봇 등 종류도 다양했다. AI가 소프트웨어와 서버를 넘어 현실 세계의 기기와 결합하는 흐름이 전시장 곳곳에서 확인됐다.
세계 최대 전자제품 위탁생산 기업인 폭스콘은 부스에서 간호 로봇과 수술용 도구 분류 로봇 등을 선보였다.
간호 로봇으로는 약제나 수액, 검체 등을 안전하게 수송하는 로봇과 해당 검체를 직접 꺼내 간호사에게 전달하는 지원 로봇인 '뉴라봇(Nurabot)'이 소개됐다.
검체를 수송하는 로봇은 국내 일부 병원에서도 도입하고 있다. 그러나 안전을 위해 해당 약제나 검체를 확인하고 꺼내는 일은 인간 간호사가 맡고 있다. 뉴라봇은 이 과정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간 형태다. 약제실로부터 수송해 온 약제에 달린 코드를 직접 스캔하고 알맞은 환자에게 전달해 간호사의 손을 덜 수 있다. 또한 기기를 직접 조작하지 않아도 자연어로 업무를 지시할 수 있다. 현재 타이베이 재향군인 병원에서 도입한 상태다.
해당 로봇은 엔비디아의 옴니버스를 활용했다. 엔비디아 옴니버스는 로보틱스 시뮬레이션 등 피지컬 AI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기 위한 서비스다. 폭스콘 관계자는 "향후 더 많은 병원에 로봇을 공개하기 위해 생산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며 "대만 외 국가로의 진출 계획을 수립하고 있으나 아직 초기 단계"라고 설명했다.
미디어텍 역시 로봇과 드론 등 다양한 기기의 엣지 AI 환경을 위해 설계한 칩인 지니오(Genio)가 탑재된 로봇들을 선보였다. 이 가운데 관람객의 눈길을 끈 것은 폴란드 전자제품 업체인 그린(GRINN)과 협력한 로보틱 핸드였다. 로봇손 앞 카메라에 손가락을 접었다 펴는 모습을 보여주면 로봇손이 이를 인식해 그대로 따라했다. 로봇과 가위바위보를 하는 시연도 가능했다.
옆에는 대만 로봇 회사인 뉴와로보틱스(NUWA Robotics)가 선보인 AI 스마트 로봇 '케비(Kebbi) 3'가 공개됐다. 케비3는 반려 로봇으로 사용자와 상호작용할 수 있고 건강 데이터 제공과 운동 기능도 지원한다. 자동화 워크플로우를 설정하면 가게에서 손님을 응대하거나 메뉴를 소개하는 일도 가능하다.
미디어텍 관계자는 "AI 기술은 이제 현실 세계의 피지컬 AI 단계로 진화했다"며 "로봇은 제조 현장뿐 아니라 다양한 환경에서 역할을 맡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컴퓨텍스의 또 다른 축은 젠슨 황 엔비디아 CEO였다. 현장에서는 황 CEO를 향한 팬심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었다. 전시장 일부는 산업 전시회라기보다 황 CEO의 팬미팅 현장에 가까웠다.
황 CEO는 지난 2일과 3일 행사장을 찾아 협력 관계를 맺고 있는 업체들의 부스를 방문했다. 고대역폭메모리(HBM) 동맹의 일원인 SK하이닉스를 비롯해 에이수스, MSI, 페가트론, 폭스콘 등 대만의 엔비디아 공급망 생태계를 이루는 기업들이 황 CEO를 맞았다.
황 CEO가 지나가는 동선에 맞춰 줄이 세워지자 사람들은 황 CEO의 얼굴을 보거나 사인을 받기 위해 줄 주위로 몰려들었다. 황 CEO가 도착하자 사람들은 '젠슨'을 연호하기도 했다. AI 산업의 중심에 선 엔비디아의 위상이 행사장 분위기에서도 그대로 드러난 셈이다.
기업들도 황 CEO를 향한 환영 분위기를 적극적으로 드러냈다. 지난 3일 황 CEO가 MSI 부스에 방문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MSI 측은 큰 전광판에 'Welcome Jensen Huang'이라는 문구를 띄우고 황 CEO의 인터뷰 영상을 송출했다.
황 CEO는 주요 제품에 사인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SK하이닉스 부스에 들러서는 HBM4E 웨이퍼에 사인과 함께 '더 많이 만들어 주세요(Please Make More)'라는 문구를 새기기도 했다. 황 CEO가 자리를 떠난 뒤에도 사람들은 사인이 담긴 제품을 촬영하기 위해 줄을 섰다.
황 CEO가 사인한 웨이퍼를 구경하던 한 SK하이닉스 엔지니어는 "어제 시간이 없어서 황 CEO가 방문한 것을 보지는 못했다"면서 "서로 관심을 갖고 있는 만큼 협업을 잘 하자는 의미에서 사인을 한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 참관객은 "컴퓨텍스에 참가한 이유 중 하나는 황 CEO를 보기 위함"이라며 "컴퓨텍스가 사실상 엔비디아 중심 행사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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