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신지하 기자] LG AI연구원이 초거대 인공지능(AI) 모델 '엑사원'의 의료 현장 상용화 행보에 속도를 내고 있다. 언어·추론 중심의 성능 경쟁을 넘어 병리·정밀진단 등 의료 영역에서 실제 사업 파트너를 확보하며, 연구·검증 단계를 넘어선 '특화 AI' 전략을 구체화하는 모습이다.
업계에 따르면 LG AI연구원은 최근 차세대염기서열분석(NGS) 정밀진단 플랫폼 기업 엔젠바이오와 자사의 정밀 의료 AI 모델 '엑사원 패스 2.0' 기반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다. 이 가운데 상피세포성장인자수용체(EGFR) 변이 예측 모델에 대해서는 엔젠바이오에 국내 의료기기 상용화를 전제로 한 독점 라이선스를 부여했다.
엔젠바이오는 엑사원 패스 2.0을 기존 NGS 분석 소프트웨어(NGAS)와 차세대 유전체정보관리시스템(NGLIS)에 적용, 디지털 의료기기(SaMD) 형태의 정밀진단 솔루션으로 고도화할 계획이다. LG AI연구원은 파운데이션 모델에 대한 기술적 지원을, 엔젠바이오는 임상 검증과 의료기기 인허가를 거쳐 이를 병원 시스템에 적용할 방침이다.
양사가 맺은 라이선스 계약의 구체적인 금액과 조건은 공개되지 않았다. 다만 업계에서는 이번 계약이 단순히 논문 검증이나 파일럿 테스트에 그치는 협력이 아니라 의료 솔루션 상용화를 전제로 한 계약이라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엑사원 패스는 병리 이미지 기반 의료 AI 파운데이션 모델로 국내에서 사실상 유일하다. 여기에 최근 'K-엑사원'이 정부의 '독자 AI 파운데이션 개발 프로젝트' 1차 평가에서 최고 성적을 거두며 기술력을 입증한 점도 이번 계약의 의미를 더한다.
업계에서는 코스닥 상장사인 엔젠바이오의 재무 여건과 의료 AI의 높은 진입 장벽을 고려, 초기 라이선스 비용은 다른 분야 대비 비교적 낮게 책정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이후 상용화 단계에서 실제 수익이 발생하면 적용 범위에 따라 비용이나 정산 조건이 달라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번 라이선스 계약이 공개된 점도 이례적이다. 이번 공개는 엔젠바이오가 먼저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통상 의료·바이오 분야에서는 AI 모델 선택 자체가 경쟁력으로 직결돼 어떤 AI를 사용하는지 외부에 밝히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에 대해 엔젠바이오 관계자는 "이번 계약 공개는 AI 소스 자체나 계약 구조를 알리기 위한 목적이라기보다 AI를 실제 의료 현장에 어떻게 적용하고 상용화할 것인지에 대한 방향성을 공유하기 위한 취지"라고 설명했다.
그는 "의료 분야에서 AI는 임상 검증과 인허가를 거쳐 실제 환자 진료에 사용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이번 협력은 AI 모델을 병원 시스템에 직접 연결해 의료기기로 상용화하는 구조를 구축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러한 실질적 적용 사례를 시장과 공유하는 차원에서 공개를 결정했다"고 덧붙였다.
엑사원 패스의 최신 버전은 지난해 말 공개된 '엑사원 패스 2.5'지만 엔젠바이오는 이번에 2.0 버전을 도입했다. 두 버전 간에는 모델 구조의 근본적인 변화보다는 일부 기능 고도화가 중심이어서 향후 업그레이드는 비교적 수월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엔젠바이오는 의료 분야 특성상 성능과 신뢰성에 대한 충분한 검증에 상당한 시간이 요구되는 만큼 이미 성능이 입증된 2.0 버전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해당 버전은 글로벌 병리 AI 벤치마크에서도 세계 최고 수준의 성능을 기록하며 기술력을 입증했다.
엔젠바이오 관계자는 "엑사원 2.5 도입과 관련해 현재로서는 구체적으로 확정된 바는 없다"며 "임상 현장 적용성과 고객 니즈를 중심으로 다양한 AI 기술을 검토한 후 검증된 기술을 선별적으로 적용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LG AI연구원이 엑사원 패스를 외부에 라이선스하는 사례는 이번이 처음은 아닌 것으로 전해졌다. LG AI연구원은 그동안 글로벌 제약사와 연구기관 등을 중심으로 엑사원 패스를 활용한 협업을 이어왔지만 바이오·의료 분야 특성상 AI 활용 여부 자체가 전략 자산으로 인식돼 대부분 비공개로 진행돼 왔다.
업계에서는 이번 엔젠바이오와의 협력을 계기로 의료 분야에서 엑사원 패스의 상용화 기대감이 크게 높아졌다고 본다. 특히 의료 AI는 금융·제조 등 다른 산업보다 훨씬 높은 정확도와 신뢰성, 임상적 검증이 요구돼 AI 모델을 보유한 기업이라도 쉽게 진입하기 어려운 영역으로 꼽힌다. 이런 까다로운 분야에서 상용화를 전제로 한 협력이 구체화됐다는 점은 엑사원 패스가 단순한 연구 성과나 벤치마크 수준을 넘어 실제 의료 현장 적용 단계에 거의 다가섰다는 의미다.
LG 관계자는 "엑사원은 단순히 언어 모델만 잘하는 AI를 목표로 만든 것이 아니다"라며 "처음부터 특정 산업과 전문 영역에서 실제로 쓰일 수 있는 '특화 AI'를 지향해 개발해왔다"고 말했다.
이어 "엑사원이라는 이름 자체가 '모두를 위한 전문가 AI(EXpert AI for Everyone)'를 뜻한다"며 "언어를 넘어 바이오와 같은 고난도 전문 분야에서도 성과를 내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바이오·의료 영역은 진입 장벽이 매우 높은 분야인데, 엑사원 패스를 통해 실제 사업과 연결될 수 있는 움직임이 나오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엑사원이 단순한 성능 경쟁용 모델이 아니라 산업 현장에서 쓰일 수 있는 AI로 확장되고 있다는 신호로 봐달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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