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최령 기자] 인공지능 발전과 신뢰 기반 조성 등에 관한 기본법(인공지능기본법)이 이달 22일부터 시행되며 국내 AI 산업이 제도권 안으로 들어왔다. 정부는 AI 산업 진흥에 방점을 둔 '필요최소 규제' 원칙을 내세웠으나 현장에서는 고영향AI와 생성물 표시 의무 등 핵심 규제의 해석 기준이 아직 선명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법은 출범했지만 상당 부분이 가이드라인과 행정해석으로 채워지는 구조여서 시행 초기부터 규제 불확실성이 산업 변수로 작동하고 있다는 평가다.
AI 기본법은 국가 차원의 AI 거버넌스를 법제화하고 산업 지원과 안전·신뢰 체계를 함께 담았다. 규제 축은 투명성, 고영향, 안전성 세 갈래로 구성된다. 생성형 AI 결과물이 외부로 유통될 경우 AI 생성물임을 알리도록 했고 딥페이크 등 사회적 부작용 우려가 큰 경우에는 명확한 표시를 요구한다. 다만 일반 AI 생성물은 디지털 워터마크 같은 비가시적 방식도 허용된다. 의무 주체는 AI 제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자로 한정된다.
문제는 이 규제가 어디까지 적용되는지가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외부 유통'의 범위나 서비스별 UI 구현 방식에 따라 같은 결과물도 표시 의무가 달라질 수 있다. 플랫폼, 미디어, SaaS 등 업종별로 적용 방식이 갈릴 여지가 크지만, 이를 가르는 기준은 가이드라인에 맡겨진 상태다.
고영향AI는 해석 리스크의 핵심으로 꼽힌다. 에너지, 의료, 채용, 대출심사, 교통, 공공서비스, 교육 등 10개 영역으로 범위가 한정돼 있지만 사업자가 스스로 해당 여부를 판단해야 하는 구조다. 최종 의사결정에 사람이 개입하면 통제 가능하다고 보고 고영향AI에서 제외되는데, 이 '사람의 개입'이 실질적 판단을 의미하는지 형식적 승인만으로도 충분한지는 명확히 규정돼 있지 않다. 이 기준에 따라 동일한 서비스라도 의무 적용 여부가 달라질 수 있어 현장에서는 보수적 대응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안전성 확보 의무 역시 불확실성에서 자유롭지 않다. 누적 연산량이 10의26승 FLOPs 이상인 초고성능 AI만 대상으로 삼지만 어떤 모델이 이 기준에 해당하는지는 가이드라인에 맡겨져 있다. 법이 제시한 방향성은 분명하지만 실제 적용 대상과 요구 수준은 운영 과정에서 정리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런 가운데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통신 3사를 비롯한 대형 AI 서비스 기업들은 이미 법 시행에 맞춰 내부 대응 체계를 가동하고 있다. 고객센터, 요금·멤버십, 추천·상담 등 주요 서비스 전반에 AI가 적용된 만큼 생성형 AI 표시 의무와 고영향AI 분류 가능성에 대비해 법무·보안·기술 조직이 함께 참여하는 전사적 관리 체계를 정비하는 모습이다.
업계에서는 글로벌 규제 환경에 대비해 유사한 통제 구조를 갖춰온 대기업들은 AI 기본법을 기존 거버넌스의 연장선에서 흡수할 수 있는 반면 중소·스타트업과의 대응 격차는 더 벌어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실제로 스타트업얼라이언스가 지난달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AI 기본법 대응 준비를 완료했다고 답한 곳이 2%에 그쳤다는 결과는, 제도 자체보다 해석과 실무 기준이 현장에서 더 큰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정부는 시행 초기 혼란을 줄이기 위해 최소 1년 이상 규제 유예를 예고했다. 유예 기간 동안 사실조사와 과태료는 계도 중심으로 운영하고 인명사고나 중대한 인권 침해 등 예외적인 경우에만 조사를 실시한다는 방침이다. 과기정통부는 인공지능기본법 지원데스크와 제도개선 연구반을 통해 기업의 법 이행과 제도 보완을 지원할 계획이다.
다만 유예와 지원이 시간을 벌어주는 장치라면 관건은 그 시간 동안 불확실성이 얼마나 해소되느냐다. 표시 의무의 적용 경계, 고영향AI 분류에서 사람 개입의 의미, 초고성능 AI 판단 기준이 얼마나 예측 가능하게 정리되느냐에 따라 AI 기본법은 산업 진흥의 기반이 될 수도 새로운 규제 리스크로 작동할 수도 있다. 제도 설계보다 운영의 정교함이 첫 시험대에 올랐다는 평가가 나온다.
업계 한 관계자는 "법 취지 자체에는 공감하지만 지금은 '무엇이 의무인지'를 스스로 해석해야 하는 구간"이라며 "표시 기준이나 고영향AI 판단이 모호하다 보니 실제 서비스 설계 단계에서는 일단 보수적으로 갈 수밖에 없고 그 자체가 비용과 속도 부담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AI 기본법은 위험을 통제하겠다는 방향성은 분명하지만 현재 구조는 가이드라인과 행정해석에 의존하는 부분이 크다"며 "유예 기간 동안 이 해석들이 얼마나 일관되고 예측 가능하게 축적되느냐가 제도의 성패를 좌우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새로운 눈으로 시장을 바라봅니다. 딜사이트 무단전재 배포금지
Hom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