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범 한국앤컴퍼니그룹 회장의 사법 리스크가 장기화 국면에 접어들면서 그룹 전체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시계제로' 상태에 빠져들고 있다. 2025년 5월 법정구속 이후 7개월째 이어지는 총수 부재는 단순한 리더십 공백을 넘어 신사업 발굴과 대규모 투자 결정에 치명적인 걸림돌이 되고 있다. 보호무역주의 강화 등 글로벌 경영 환경이 급변하는 상황에서 이러한 사법리스크 족쇄가 리더십 와해와 내부사기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총수 부재로 중대 기로에 선 그룹의 경영실태를 짚어본다.[편집자주]
[딜사이트 김정희 기자] 한국앤컴퍼니그룹이 올해 인사에서 안정을 택했다. 조현범 회장의 공백이 7개월째 이어지는 상황에서 확장보다는 리스크 관리에 초점을 맞춘 결정으로 풀이된다. 당장의 경영 차질은 없다는 것이 업계 안팎의 시선이지만, 글로벌 세일즈와 통상 대응 등 오너의 결단이 필요한 상황에서 즉각적이고 적극적인 판단이 어렵다는 점에서 경쟁력 약화가 우려되고 있다.
타이어 업계에 따르면 한국앤컴퍼니그룹은 지난 29일 조직 안정에 방점을 맞춘 임원 인사를 단행했다. 부사장과 전무급 승진자는 배출됐으나, 사장단 이상 고위급 승진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지난해 2명의 사장 승진자를 포함해 총 38명이 승진했던 것과 비교하면 규모와 무게감 모두 크게 줄어든 것이다. 한국앤컴퍼니그룹은 올해 인사에 대해 "이번 인사는 조직 안정 도모, 현장 실행력 강화, 젊은 인재 육성 등 3대 축을 기반으로 실시됐다"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한국앤컴퍼니그룹의 올해 인사가 조 회장의 부재와 무관하지 않다고 보고 있다. 인사 최종 결정권자인 총수가 구속 상태에 놓이면서 과감한 인사나 전략적 메시지를 담기보다는 불확실성을 관리하는 방향을 택했다는 분석이다. 조 회장은 올해 5월 29일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으며, 최근 항소심에서 징역 2년으로 감형됐으나 구속 상태는 유지되고 있다.
하지만 총수의 공백은 그룹의 중장기 전략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는 관측이 나온다. 대규모 투자나 인수합병(M&A) 처럼 총수의 결단이 필요한 사안의 경우 의사결정이 지연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그룹 주력 계열사인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한국타이어)가 대표적이다. 한국타이어는 2027년까지 미국 테네시주와 유럽 헝가리 공장 증설을 마무리해 생산 기반을 확충할 계획이지만, 이후 추가 투자나 사업 확장 방향은 아직 구체화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헝가리 공장 증설 이후 한국타이어의 후속 투자 계획은 공식적으로 나온 것이 없다"고 말했다.
신규 수주 확보를 위한 글로벌 세일즈와 통상 대응에도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중요 고객사와의 협력 확대나 미국의 관세 등에 대응하기 위해선 조 회장의 판단과 결정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조 회장은 올해 3월 슈테판 윙켈만 람보르기니 회장과 만나 신차용 타이어(OE) 공급 확대와 모터스포츠 협력 방안을 논의하는 등 직접 글로벌 완성차 업체와의 관계를 관리해왔다. 동시에 조 회장은 미국의 관세 정책에 대응해 경영혁신 회의, 그룹 글로벌 전략 점검 회의 등을 주재하며 통상 리스크를 대응해왔다. 이런 역할을 전문 경영인 체제에서 동일하게 수행하기는 쉽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현재 글로벌 시장은 불확실성의 연속이다. 미국은 올해 수입산 타이어 제품에 대해 25%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 최근 한미 협상 타결로 15%로 10%포인트(p) 낮아졌지만, 과거 무관세였던 것을 생각하면 여전히 부담인 상황이다.
유럽은 내년 1월 1일부터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를 실시한다. CBAM은 유럽연합(EU)이 탄소 배출 규제가 약한 국가에서 생산된 제품이 EU로 수입될 때 생산 과정의 탄소 배출량만큼 탄소 비용을 부과하는 제도를 말한다. 한국타이어와 한온시스템의 주요 시장이 미국과 유럽인 것을 감안하면 발 빠른 대응이 필요한 상황이다.
업계 안팎에서는 이런 상황을 고려했을 때 조 회장의 구속 장기화가 그룹 경쟁력 악화에 악영향을 줄 것으로 보고 있다. 과거 총수 구속으로 경영 공백이 발생했을 당시 기업들의 투자와 M&A 행보가 위축된 사례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최태원 회장이 구속됐던 2013년 SK그룹은 ADT캡스 인수 등을 중단했고, 태광그룹 역시 2011년 이호진 전 회장의 사법 리스크 이후 투자와 M&A가 사실상 멈추며 성장 동력이 약화된 바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글로벌 보호무역 기조가 강화되는 상황에서 통상 대응과 중장기 투자 전략을 동시에 판단해야 하는 시점"이라며 "총수의 빈자리 길어질수록 전략적 의사결정 지연은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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