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최령 기자] 해킹 사태로 신뢰 리스크가 커진 SK텔레콤이 보안 거버넌스와 조직 체질을 재정비하는 전면적 리빌딩에 나섰다. 대규모 정보 유출과 이에 따른 실적 충격으로 내부 통제 강화가 절실해진 가운데 회사는 법조인 출신 정재헌 대표를 새 수장으로 선임했다. SK텔레콤은 정 대표 체제에서 고객 신뢰 회복과 AI CIC 기반 사업 재편이라는 두 가지 과제를 동시에 해결해야 하는 중요한 전환점을 맞고 있다.
올해 4월 SKT는 2324만명 유심 정보가 유출되는 사고를 겪으며 개인정보위로부터 1348억원 과징금을 받았다. 사고 후폭풍을 수습하기 위해 '고객 감사 패키지'를 시행하면서 비용 부담이 커졌고 이 영향이 올해 3분기 실적에 반영됐다. 영업이익은 484억원으로 전년 대비 90.9% 줄었고 순손실도 1667억원에 이르러 2000년 이후 이어온 흑자 기조가 처음으로 끊겼다.
이 같은 상황에서 SKT가 선택한 인물은 법무·거버넌스 전문가 정재헌 대표다. 정 대표는 법무부 사무관을 거쳐 SK스퀘어 투자지원센터장, SKT 대외협력사장, SK수펙스추구협의회 거버넌스위원장을 맡아 온 인물로 정보보호·AI 윤리·법제 기반의 리스크 관리에 강점을 지닌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집단분쟁조정 신청 등 대규모 법적 대응이 예고된 상황에서 정 대표 선임은 불확실성을 최소화하기 위한 선택이라는 분석이다.
정 대표는 취임 이후 첫 타운홀 미팅에서 자신을 '변화 관리 최고책임자(Change Executive Officer)'라고 규정하며 조직 전반을 다시 설계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바 있다. 그는 활동적 타성을 버리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구조를 만들겠다며 "실패는 경영진이 책임질 테니 구성원은 창의적으로 도전하라"고 주문했다. 고객 신뢰가 흔들린 이동통신사업(MNO)을 본질로 삼아 품질과 보안 안전 회복을 최우선 순위로 삼겠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경영 체질 개선도 함께 진행된다. SKT는 핵심 지표를 상각전영업이익(EBITDA)에서 투하자본이익률(ROIC)로 전환하며 자본효율 중심의 경영으로 이동한다. 내부통제와 투자 우선순위를 명확히 재정립해 '내실 경영'으로 전환하겠다는 전략이다. 회사는 향후 5년간 7000억원 규모의 정보보호 혁신안을 추진하고 '제로 트러스트' 기반 보안 체계를 도입해 해킹 사태의 재발 방지를 위한 인프라도 강화할 예정이다.
AI 사업 전략 역시 선택과 집중으로 재편됐다. SKT는 지난 9월 출범한 AI CIC에 유경상 센터장과 정석근 부장을 공동 CIC장으로 선임하며 투톱 체제를 구축했다. 서비스 수요와 기반 기술 공급을 분리해 민첩한 실행 체계를 만들기 위한 조치다. 의사결정 라인을 단순화해 AI 골든타임을 확보하겠다는 의도도 담겼다.
AI 인프라 사업은 SKT의 차세대 성장 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 정 대표는 지난달 'SK AI 서밋 2025'에서 울산 AI 데이터센터를 1GW 이상으로 확대하고 수도권–경남–서남권에 걸친 AI 인프라 삼각축을 구축하겠다고 발표했다. SKT가 추진하는 핵심 AI 인프라 전략은 ▲AWS와의 협력을 통한 에지AI 연구 ▲엔비디아와의 AI-RAN(지능형 무선망) 공동 개발 ▲디지털 트윈·로봇 AI 기반 제조 AI 클라우드 구축 등으로 요약된다.
AI 서비스 확산도 눈에 띈다. AI 에이전트 '에이닷'의 가입자와 월간 이용자는 이미 1000만명을 넘어섰으며 기업용 AI 에이전트인 '에이닷 비즈'도 생산성 향상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에이닷 비즈는 자체 거대언어모델(LLM) '에이닷 엑스(A.X)' 기반의 최적화 AI 솔루션이다. 회사는 이를 기반으로 모두가 사용하는 AI 서비스로 생태계를 확장한다는 계획을 제시하기도 했다.
SKT는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 개발에서도 정예팀으로 선정돼 기술 내재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라이너·셀렉트스타·크래프톤·포티투닷·리벨리온 등이 참여한 SKT 컨소시엄은 정확성 신뢰성 확장성 범용성 효율성을 갖춘 한국형 풀스택 AI 모델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SKT는 반도체–모델–데이터–서비스 전 과정을 통합한 실사용 중심 구조를 구축 중이다.
다만 화려한 AI 청사진과는 별개로 SKT가 당면한 핵심 과제는 여전히 통신 본업의 안정성이다. 5G 품질 논란과 고가 요금제 불만, 정부의 통신비 인하 압박, 알뜰폰(MVNO) 가입자 확대가 이어지며 본업 수익성은 구조적으로 흔들리고 있다. 여기에 해킹 사고 이후 남은 고객 신뢰 회복과 보안 강화, 소송 리스크 관리까지 더해지면서 "AI 전환보다 선행해야 할 과제가 여전히 적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결국 2026년은 SKT가 'AI 컴퍼니'로 도약할 수 있을지를 가르는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해킹 사태가 리더십과 거버넌스 구조까지 흔들어 놓은 한 해였다면 내년은 정재헌 체제가 실질적 성과를 만들어내야 하는 첫 시험대다. 보안·내부통제 강화와 AI CIC 기반 사업모델 창출이라는 이중 과제를 어떻게 풀어낼지가 SKT 리빌딩의 성패를 좌우할 것으로 분석된다.
업계 한 관계자는 "SKT는 해킹 사고로 드러난 신뢰 리스크를 얼마나 빠르게 회복하느냐가 AI 전략의 성패와 직결된다"며 "통신 본업 안정성과 보안 거버넌스 재정립이 뒷받침돼야만 AI CIC 중심의 사업 재편도 시장에서 신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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