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서재원 기자] "아마 사모펀드(PEF)가 없었다면 SK그룹은 상당히 힘들었을 겁니다. SK그룹이 리밸런싱 과정에서 판 자산만 수조원인데 사모펀드가 없었다면 누가 이 많은 자산을 받아줬겠습니까. 국내 대기업들은 전반적으로 몸집을 줄이느라 인수 여력도 없고…"
최근 정치권에서 쏟아내는 이른바 'PEF 때리기' 담론 과정에서 나온 대형 증권사의 투자은행(IB) 부문을 맡고 있는 임원의 언급이다. 사모펀드가 없었다면 SK의 대규모 자산 매각은 불가능했으며 PEF 역할에 대한 정치권의 이해가 여전히 부족하다는 게 골자다.
지난 2023년 10월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서든데스(sudden death·돌연사) 위기론'를 제기한 이후 그룹 전반적으로 PEF에 매각한 자산만 수조원에 육박한다. 그 해 SK피유코어를 글랜우드프라이빗에쿼티(PE)에 4000억원에 매각했다. 이듬해에는 SK렌터카(8200억원)와 SK스페셜티(2조7000억원)를 각각 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와 한앤컴퍼니에 팔았다. SK엔펄스의 경우 파인세라믹스 사업부(3300억원)와 CMP Pad 사업부(3350억원)를 따로 떼서 한앤코에 넘겼다.
'PEF가 없었다면 SK그룹의 리밸런싱은 가능했을까'라는 물음표가 붙는다. 그룹의 문어발식 확장과 SK온으로부터 시작된 재무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PEF가 역할이 컸던 건 분명하다. 국내 대기업들이 경기침체로 다들 몸을 사리던 상황에서 PEF와의 거래는 사실상 유일하게 대규모 현금을 신속하게 조달하는 통로가 됐다. 적기에 자금을 공급받은 덕분에 SK그룹은 2년이라는 짧은 시간에 나름대로 정상화에 성공했다.
반대로 정치권이 PEF를 '때려야 할 대상'으로 규정하는 기준은 지나치게 감정적이다. 홈플러스 회생 사태를 두고 MBK파트너스에 대한 질타는 존재할 수는 있지만 그것으로 PEF의 역할 전반을 폄훼하는 분위기다. 무엇보다 PEF 산업을 옥죄려는 것에만 몰두하는 나머지 규제의 부작용에 대한 고민은 없는 듯하다. PEF 옥죄기의 수혜자는 상대적으로 규제에서 자유로운 해외 자본이라는 점은 간과하고 있다.
PEF가 없던 IMF외환위기 시절을 떠올려 보자. 당시 국내에는 대규모 기업 인수합병(M&A)을 전문적으로 수행할만한 기관이 전무했다. 대기업과 은행은 부실을 정리하느라 M&A에 나설 여력이 없었고, 보험·연기금 등 기관투자가들은 규제 탓에 위험자산 투자가 어려웠다. 이 공백을 메운 것이 칼라일, 텍사스퍼시픽그룹(TPG), 론스타 등 해외 PEF였다. 금융기관과 핵심 산업자산들은 구조조정 기회조차 잡지 못한 채 헐값에 해외 자본에 넘어갔다.
당시의 반성을 계기로 지난 2004년 한국형 PEF 제도가 만들어졌다. 국내 기업을 국내 자본으로 지켜내기 위한 목적이었다. 그 후 PEF는 해외 자본에 기대지 않고도 부실을 정리하고 비핵심 자산을 재배치하는 역할을 담당해왔다. SK그룹의 리밸런싱은 국내 PEF 제도가 지난 20여년간 얼만큼 성장했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예시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깜깜이 투자, 부실운용 등 PEF에 대한 감시는 필요하다. 그러나 개별 사례를 감정적으로 일반화해 그 역할을 과소평가하고 산업구조를 뒤흔드는 것은 다른 문제다. 지금 필요한 것은 'PEF 때리기'가 아니라 시장 기능을 정확히 이해하고 순기능을 활욜할 수 있는 냉정한 논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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