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이세연 기자] 한미반도체의 내년 HBM4용 TC본더 수주 동향에 업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HBM4용 TC본더는 기존 장비를 업그레이드해 대응할 수 있지만, 한미반도체가 이에 대해 보수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어 신규 발주가 불가피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삼성전자와의 협력 가능성도 커지면서, 메모리 3사 TC본더 공급망에 모두 이름을 올릴 것이란 낙관적 전망도 나온다.
업계에 따르면 한미반도체는 이번 주 3분기 실적 발표를 앞두고 있다. 올해 들어 고공행진을 이어오던 수익성은 다소 주춤할 것으로 예상된다. LS증권 추정치 기준 한미반도체의 3분기 매출은 1696억원, 영업이익은 853억원으로 각각 전년 동기 대비 6%가량 줄어들 전망이다. 엔비디아의 HBM4 최종 퀄테스트가 연말로 미뤄지면서,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의 양산 일정도 늦춰졌기 때문이다. 당초 하반기로 예상됐던 HBM4용 TC본더 발주도 요원해진 상황이다.
메모리 업체들의 내년도 TC본더 주문서에 이목이 쏠리는 이유다. 엔비디아로부터 HBM4 정식 발주(PO)가 나오면 곧바로 양산용 장비 주문을 검토해야 한다. 테스트 일정까지 고려하면 수주가 예상보다 이른 시기에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
한미반도체는 기존 고객사들과의 거래 관계를 이어가며 신규 발주에 대비하는 모양새다. 한때 갈등을 빚었던 SK하이닉스와의 관계도 최근 안정세를 되찾은 것으로 보인다. SK하이닉스는 당장은 장비를 배치할 만한 공간이 부족하지만, 청주 M15X와 M8을 후공정 라인으로 세팅하고 있어 내년부터는 여유가 생길 전망이다.
현재 SK하이닉스는 한미반도체·ASMPT·한화세미텍의 TC본더를 공정 특성에 따라 병행 사용하고 있다. HBM3E의 경우 8단 제품은 ASMPT, 12단 제품은 한미반도체 장비를 중심으로 생산이 이뤄지고 있다. 12단 제품이 현재 상용화된 HBM 가운데 최선단에 해당하는 만큼, 현장에서의 사후관리(AS)도 대부분 한미반도체 엔지니어가 전담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HBM4용 TC본더는 기존 HBM3E용 장비를 업그레이드하는 방식으로 대체할 수 있지만, 업그레이드 여부는 장비사의 의지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SK하이닉스도 기존 장비를 최대한 활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나 쉽지 않다는 평가다. 장비사 입장에서는 새로운 장비를 공급하는 편이 수익성 측면에서 유리해, 한미반도체 역시 업그레이드에 보수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한미반도체는 앞서 SK하이닉스에 납품한 HBM3E 8단용 TC본더를 12단용으로 업그레이드한 이후, 추가 작업은 진행하지 않았다.
반도체 업계 한 관계자는 "SK하이닉스가 한미반도체 TC본더를 업그레이드하는 데 드는 비용은 거의 없다고 해도 될 정도로 낮은 수준"이라며 "반면 HBM4용 TC본더는 기존 장비보다 약 40% 비쌀 것으로 예상돼 가격 차가 크긴 하다"고 말했다. 현재 HBM3E용 TC본더는 대당 30억원 수준에서 납품되고 있어, HBM4용은 40억원 안팎으로 가격이 책정될 것으로 보인다.
한미반도체와 마이크론의 관계도 한층 가까워지는 모습이다. 사안에 정통한 관계자는 "산제이 메흐로트라 마이크론 CEO는 매년 아시아 사업장을 점검하러 한국에 방문하지만, 자잘한 소부장 업체까지 찾는 경우는 없었다"며 "그런데 산자이 CEO가 지난해 한 차례, 올해 또 한 차례 곽동신 한미반도체 회장을 만나고 갔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마이크론은 한미반도체의 해외 매출을 견인하는 핵심 고객사다. 한미반도체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기준 전체 매출의 82.44%가 해외에서 발생했다. 전년 동기(22.37%)보다 4배가량 늘었다. 이는 마이크론의 HBM3E 적층 단수가 8단에서 12단으로 전환되면서, 기존에 쓰던 신카와 장비를 제외하고 한미반도체 TC본더를 상당수 도입한 영향으로 풀이된다. 현재 마이크론은 한미반도체와 ASMPT를 '듀얼 벤더'로 택해 TC본더 공급망을 꾸렸다. ASMPT는 한미반도체의 생산 차질이나 가격 급등에 대비해 공급 안정성을 확보하는 보완적 역할을 하고 있다.
한미반도체 역시 마이크론과의 협력 강화를 위해 세심하게 움직이고 있다. 최근에는 마이크론이 싱가포르에서 캐파(생산능력) 확대에 나서자, 이에 발맞춰 싱가포르 법인을 새로 설립하고 현지 인력 채용까지 마쳤다. 기존에 마이크론을 지원해온 대만 법인에는 AS 엔지니어를 포함해 총 70여명이 근무하고 있다. 여기에 싱가포르 인력까지 더해지면 규모가 상당하다. 한미반도체의 국내 HBM3E·HBM4 전담 AS팀 '실버피닉스' 인원이 50명 수준임을 고려하면 마이크론 지원에 상당히 공을 들이는 모습이다.
한미반도체가 삼성전자에 TC본더를 납품할 가능성에도 무게가 실린다. 공식적인 협력 발표는 없지만, 최근 양사는 차세대 HBM4 샘플용 TC본더를 놓고 기술적 교류를 진행한 것으로 파악된다. 삼성전자와 한미반도체는 지난 2011년 삼성전자 자회사 세메스와의 특허침해 소송 이후 거래가 끊긴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그동안 누적 300억원 규모의 후공정 장비를 꾸준히 공급해온 것으로 확인된다. TC본더가 아니었을 뿐 협력 관계는 지속돼왔다는 설명이다.
최근 한미반도체는 대외적인 행사 자리에서 삼성전자와 가까워진 듯한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했다. 한미반도체는 지난 22일부터 24일까지 강남 코엑스에서 열린 '반도체대전(SEDEX) 2025' 행사장에서 삼성전자와 가까운 위치에 부스를 차렸다. 회사 측은 "랜덤으로 배정된 결과"라는 입장이지만, 업계에서는 의도적인 배치였을 가능성이 제기된 바 있다. 실제로 현장에서는 "원하는 위치를 선점하기 위해 사전에 움직였다"는 기업들이 적잖이 눈에 띄었다.
소부장 업체 한 관계자는 "한미반도체는 이번에 처음으로 (SEDEX를 주관하는) 한국반도체산업협회에 회원사로 가입한 바 있다. 회원사들과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협력 기반을 확보하기 위한 차원"이라며 "협회 측이 한미반도체의 부스 배치 과정에서 어느 정도 편의를 봐준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한국반도체산업협회에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비롯해 300여개의 회원사가 소속돼 있다.
행사장에서는 한국반도체산업협회장을 겸임하고 있는 송재혁 삼성전자 CTO가 VIP 투어 중 여러 소부장 기업들의 부스를 둘러보다 한미반도체 부스도 찾았다. 이날 곽동신 한미반도체 회장은 거래 재개 가능성에 대해 "언제든 열려 있다"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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