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주 금융부 부국장] 금융감독체계 개편 논의가 하루아침에 멈췄다. 금융위원회의 정책·감독 기능 분리와 금융감독위원회 신설 방안이 정부조직 개편안에서 전격 제외되면서다. 국회 본회의 직전 철회 결정은 정치적 후퇴처럼 보이지만, 정책 연속성과 시장 안정 측면에서는 숨 고르기 기회로 해석할 수 있다. 다만 금융감독체계를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필요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이번 논의는 이재명 대통령의 대선 공약에서 출발했다. 금융위의 금융정책 기능을 기획재정부로 이관하고, 감독 기능은 신설되는 금감위가 맡도록 하겠다는 구상이다. 금융위 출범 이후 정책·감독·검사가 한 지붕 아래 얽히며 위기 대응이 늦고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진 구조적 문제를 해소하려는 취지였다. 하지만 패스트트랙을 거쳐도 본회의까지 6개월 이상 소요되고, 금감원 내부 반발까지 거세자 당정은 결국 한발 물러섰다.
겉으로는 후퇴처럼 보이지만, 이번 철회는 금융감독체계의 구조적 한계를 점검하고 정책 설계를 다시 조정할 시간을 확보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금융범죄와 불공정거래는 진화하지만 금융당국의 대응은 여전히 더딘 탓이다. 김동원 전 고려대 경제학과 초빙교수는 과거(2012년) "금감원은 증권 범죄보다 생색나는 곳에 관심이 많다"고 지적했는데, 13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하다. '전환사채(CB) 공장'으로 변질된 상장사 주가 조작, 중소 상장사 대상 부티크의 불법 거래가 반복되지만, 검찰·경찰·금감원 모두 복잡한 금융범죄 수사에 주저하거나 순환보직 구조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서울남부지검 금융·증권범죄수사단이 부활했지만, 금감원이 넘긴 사건 중 실제 기소로 이어지는 건은 10%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통계도 있다. 정책·감독 혼합 구조로는 금융범죄 대응과 시장 신뢰 회복에 한계가 명확하다는 의미다. 금융정책 기능을 경제 컨트롤타워인 기재부로 이관하고, 감독당국이 시장 감시에 전념하는 구조 개편 아이디어가 다시 거론되는 이유다.
시장 참여자들은 감독 독립성 강화라는 큰 방향에 공감한다. 기재부의 국제금융과 금융위의 국내금융을 일원화하고, 금감원은 시장 조사와 감독에 집중하게 하면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그러나 정치권이 이를 단순 조직 재배치로 다루는 동안, 자본시장은 불공정 거래와 정보 비대칭으로 신뢰를 잃고 있다. 건전한 시장 기능 확립 없이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와 증시 밸류업도 공허하다.
거시건전성 정책과 통화정책 불일치도 문제다. 2024년 말 국내총생산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90.1%에 달했다. 금융감독당국이 건전성 수단을 독점하면 경기 부양 명분으로 규제를 완화하기 쉽다. 실제 2014년 정부는 내수 활성화를 이유로 LTV와 DTI를 완화했고, 가계부채는 GDP 대비 68.1%에서 90%까지 치솟았다. 반면 뉴질랜드나 영국은 중앙은행이 건전성 규제와 통화정책을 동시에 운용하며 시장 안정과 경기 대응을 동시에 달성했다.
이번 철회는 단순 후퇴가 아니다. 졸속 추진을 멈추고 근본 설계로 시선을 돌릴 기회다. 금융정책과 감독을 분리하고, 금융감독당국이 시장 감시에 전념하며, 소비자 보호와 자본시장 전문성 확보를 핵심 목표로 설정하는 장기 로드맵이 필요하다. 하루아침에 없던 일이 된 이번 논란은 금융시장의 목소리를 반영한 지속 가능한 개편 로드맵을 마련할 때 비로소 의미 있는 성과로 이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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